숨겨진 순환계, 사물의 흐름과 도시의 신진대사

by 문지훈 Jihun Mun

현대 도시의 기능은 사람들의 이동뿐만 아니라,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자원과 상품의 끊임없는 순환에 의존합니다. 이러한 사물의 흐름은 최근 물류 시스템의 급격한 발전과 함께 도시 공간을 재편하는 강력한 동인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어젯밤 주문한 상품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도착하는 일상화된 편리함 뒤에는 도시의 경제적 효율성부터 일상적인 풍경의 변화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거대하고 복잡한 네트워크가 존재합니다.


사물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바라보는 ‘도시 신진대사(Urban Metabolism)’의 관점을 빌려올 수 있습니다. 도시는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고 물질을 변형시킨 후 다시 배출하며 생명을 유지합니다. 사물의 흐름은 단순히 소비재의 배송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신선한 식재료가 도매시장을 거쳐 각 가정과 식당으로 공급되는 과정, 산업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가 운송되는 과정, 건물을 짓기 위해 건설 자재가 이동하는 과정 모두 도시의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흐름입니다. 또한, 전기, 가스, 상하수도와 같은 필수 자원의 흐름은 도시의 지상과 지하에 빽빽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생명 유지 장치 역할을 합니다. 이 흐름들은 저마다 다른 주기와 경로를 가지며 도시 기반 시설의 용량과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최근 가장 극적인 변화는 단연코 소비 물류의 폭증입니다. 도시 공간의 조직 원리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소비자가 상품이 있는 상점으로 이동(사람의 흐름)했다면, 이제는 상품이 소비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사물의 흐름)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물류 시설의 입지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도시 외곽의 대규모 물류센터(Fulfillment Center)는 상품의 보관과 분류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허브 역할을 하며, 고속도로 주변의 토지 이용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도시의 경계부는 이제 새로운 ‘물류 경관’이 형성되는 최전선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배송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물류 기능은 점차 도시 중심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퀵커머스(Quick Commerce)’의 등장은 도심 내 소규모 물류 거점의 확산을 가져왔습니다. 과거 상점이나 식당이 있던 자리에 창고형 매장이나 배달 전문 ‘다크스토어(Dark Store)’가 들어서는 현상이 그 예입니다. 이는 도시 공간의 쓰임새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 사람들의 사회적 교류와 경험을 위한 공간이었던 상업 시설이, 순수한 물류 처리를 위한 기능적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 경험의 질에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기능적 효율성이 극대화된 물류 공간은 거리를 향한 개방성이 낮아 보행 환경의 활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창문이 가려진 다크스토어는 이웃과 소통하던 동네 가게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사물의 흐름 밀도가 높아지는 과정에서 도시의 사회적, 경험적 밀도가 낮아지는 상충 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편리함을 얻는 대가로 거리의 인간적인 활력을 잃을 수 있다는 딜레마입니다.


사물의 흐름은 도시의 거리 풍경과 활동 리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배달 라이더와 택배 기사는 도시의 미세한 도로망을 끊임없이 오가며 마지막 배송 단계를 책임지는 새로운 도시의 행위자로 등장했습니다. 이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현대 도시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도로 안전 문제나 열악한 노동 환경과 같은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합니다. 또한, 물류 차량의 증가는 도심의 교통 혼잡과 환경오염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결국 사물의 흐름을 효율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외부 비용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담하고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나아가 이 거대한 소비의 흐름은 필연적으로 막대한 양의 폐기물을 만들어냅니다. 특히 일회용 포장재의 증가는 심각한 환경 문제입니다. 따라서 소비 이후 발생하는 폐기물과 재활용품의 ‘역물류(Reverse Logistics)’ 역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관리되어야 할 중요한 흐름입니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선형적인 흐름(생산-소비-폐기)에서 벗어나 자원의 재사용과 재활용을 촉진하는 순환적인 흐름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는 미래 도시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 글은 도시관측 챌린지 활동을 통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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