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는 일터와 도심의 새로운 가능성

by 문지훈 Jihun Mun

지난 한 세기 동안 현대 도시를 지배해 온 가장 강력한 공간적 질서는 단연 중심업무지구(CBD, Central Business District)의 위상이었습니다. 서울의 테헤란로나 광화문, 뉴욕의 맨해튼, 런던의 금융 지구와 같이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며 스카이라인을 형성한 이곳은 자본과 정보, 그리고 인력이 고밀도로 집적되는 도시 경제의 심장이었습니다. 도시의 모든 교통 인프라와 주거 계획은 매일 아침 수백만 명의 노동자를 외곽에서 이 중심부로 효율적으로 실어 나르고, 저녁이면 다시 흩어지게 하는 거대한 순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이 견고한 시스템은 산업화 시대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는 정해진 시간에 한 곳에 모여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강력한 물리적 전제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전 지구적으로 경험한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확산된 원격 근무와 유연 근무제의 실험은 이 오래된 전제에 근본적인 균열을 일으켰습니다. 화상회의 시스템, 클라우드 기반의 실시간 협업 도구, 가상 오피스 등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물리적 접촉 없이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고밀도의 디지털 업무 환경이 구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단순히 근무 장소가 사무실에서 집으로 바뀌었다는 차원을 넘어, 일이라는 행위와 사무실이라는 물리적 공간 사이의 필연적이었던 연결고리가 끊어지거나 느슨해지는 거대한 분리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제 사무실은 생산을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유일한 목적지가 아니라, 필요와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공간을 소비하고 점유하는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재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기업들은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며 유지해 온 오피스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무실이 직원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관리 감독하기 위한 집약적 생산 공장과 유사했다면, 미래의 사무실은 창의적 협업과 사회적 교류를 위한 소셜 허브로 그 성격이 변모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집중이 필요한 업무는 집이나 거주지 인근의 분산 오피스에서 처리하고, 본사는 팀워크 형성, 아이디어 회의, 조직 문화의 공유와 같이 대면 접촉이 필수적인 활동을 위해 가끔 방문하는 거점이 되는 것입니다. 사무실의 기능적 밀도가 단순한 업무 처리의 기계적 반복에서, 고차원적인 상호작용과 관계 형성 중심으로 고도화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의 관점에서, 직장과 주거지의 분리로 인한 장거리 통근의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가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길 위에서 버려지던 왕복 두세 시간의 시간과 에너지는 개인의 여가, 자기 계발, 혹은 가족과 함께하는 돌봄의 시간으로 환원됩니다. 또한, 반드시 도심으로 매일 출근할 필요가 줄어들면서 주거지 선택의 폭이 획기적으로 넓어졌습니다. 이는 집이라는 공간의 위상 변화로도 이어집니다. 과거의 집이 단순히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휴식을 취하는 수동적인 공간이었다면, 지금의 집은 업무, 운동, 취미 생활 등 다양한 기능이 중첩되는 복합적인 생활 플랫폼으로 그 기능적 밀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업무 기능이 도심이라는 단일 중심에서 흩어지기 시작하자, 도심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도시 생태계 전체가 구조적인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곳은 중심업무지구의 배후 상권입니다. 도심의 식당, 카페, 서비스업은 그동안 직장인들의 규칙적인 통근 패턴과 점심시간의 거대한 유동 인구에 절대적으로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출근 인구가 감소하고 회식 문화가 변화하면서 이 공생의 고리는 약화되었고, 평일 점심시간의 북적임이나 저녁 상권의 활력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이는 도심 상업 공간의 공실률 증가와 임대료 조정이라는 실질적인 경제적 충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변화의 풍선 효과로 주거 지역의 가치는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주지 인근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 근처의 생활 편의 시설과 업무 지원 시설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카페, 도서관, 공유 오피스, 공원 등 도보 생활권 내에서 누릴 수 있는 인프라의 질이 주거지 선택의 핵심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도시의 활력이 거대한 하나의 중심에서 여러 개의 지역 거점으로 분산되는 다핵 구조로의 전환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소위 직주근접의 개념이 직장을 집 근처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업무 환경이 집 근처로 다가오는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는 셈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두고 도심의 쇠퇴나 공동화를 우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금의 변화는 기능적으로 편중되어 있던 도심을 더욱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재구성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낮에는 직장인들로 붐비다가 퇴근 시간 이후나 주말이면 유령 도시처럼 텅 비어버리는 과거의 도심은 토지 이용의 효율성이나 도시의 활력 측면에서 결코 바람직한 모델이 아니었습니다. 업무 공간의 수요 감소로 생긴 빈 오피스 공간을 주거, 문화, 숙박, 여가 등 다양한 용도로 전환한다면, 도심은 24시간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진정한 의미의 복합 용도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의 주요 도시들은 비어 가는 오피스 빌딩을 주거용으로 전환하거나, 상업 공간을 지역 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이나 문화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도심에 주거 기능이 보강되면 직주근접이 실현되고, 상주인구가 늘어나면서 야간과 주말의 상권도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이는 디지털 밀도가 물리적 업무 공간을 대체하면서 생긴 도시의 여백을, 더 인간적이고 다채로운 삶의 밀도로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흩어지는 일터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어디서 일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도시를 어떻게 점유하고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물리적 제약을 지워버린 자리에, 우리는 더 인간적이고 다채로운 삶의 밀도를 채워 넣어야 합니다. 효율성만을 위해 엄격하게 구획되었던 도시의 기능들이 다시 섞이고, 중심에 집중되었던 에너지가 도시 전체로 고르게 퍼져나갈 때, 도시는 위기를 넘어 새로운 차원의 회복탄력성을 획득하게 될 것입니다. 흩어지는 일터는 도시의 해체가 아니라, 도시 공간을 더 유연하고 입체적으로 재편하는 진화의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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