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해서 더 넘기 힘든 문턱

by 문지훈 Jihun Mun

도심의 상업 공간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매끄럽고 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통유리창, 군더더기 없는 인테리어, 그리고 물리적인 문턱을 없앤 입구까지. 겉보기에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효율적이고 개방적인 공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매끄러운 투명함이 누군가에게는 물리적인 철문보다 넘기 힘든 또 다른 종류의 문턱이 되고 있습니다. 공간을 감싸고 있는 디지털 밀도가 높아지면서, 데이터의 흐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공간에 대한 접근성을 이야기할 때 휠체어가 넘을 수 없는 높은 계단이나 시각 장애인을 위한 유도 블록의 부재 같은 물리적 장애물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 공간을 이용하는 방식은 점차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두 발로 걸어가 문을 열면 그 공간의 손님이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많은 곳이 사전에 디지털 절차를 거쳐야만 비로소 입장과 점유가 허락됩니다. 물리적 접근성만큼이나 정보적 접근성이 공간 이용의 중요한 변수가 된 것입니다.


디지털 밀도가 높은 공간일수록 이러한 변화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인기 있는 식당이나 카페는 현장 대기 대신 앱을 통한 원격 줄 서기로 운영 효율을 높이고, 택시는 길거리가 아닌 플랫폼 안에서 더 빠르고 정확하게 호출됩니다. 공유 라운지나 무인 매장 역시 스마트폰 인증을 거쳐야 출입문이 열립니다. 이처럼 고밀도의 디지털 정보로 짜인 공간들은 물리적으로는 도시에 존재하지만, 데이터 네트워크 상에서는 접속 코드를 가진 이들에게만 온전히 열리는 새로운 층위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키오스크나 무인 단말기는 높아진 디지털 밀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에 불과합니다. 도시 공간을 운영하는 방식 자체가 로그인(Login)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 더 본질적인 변화입니다. 과거의 도시가 익명의 다수가 섞이는 개방된 광장이었다면, 디지털 기술이 고도화된 도시는 인증된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처럼 변모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거나 데이터 환경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은 공간의 입구에서 의도치 않은 마찰을 겪게 됩니다.


이것은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악의가 아니라,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구조적인 시차(Time lag)에 가깝습니다. 효율성을 위해 촘촘하게 설계된 디지털 밀도가, 역설적으로 도시의 다양성을 줄이고 기술 적응 속도가 느린 계층을 걸러내는 필터 역할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디지털에 능숙한 사람들에게 도시는 매끄럽고 편리한 고속도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가로막힌 미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변화의 과정에서 아쉬운 점은 공간 내의 인간적 완충 지대가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점이나 관공서에는 기계적인 절차로 해결되지 않는 예외 상황을 돕는 점원이나 안내자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효율성이 극대화된 공간에서는 이러한 인적 서비스가 비용 절감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기계 앞에서 곤란을 겪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것은 타인의 도움보다는, 뒤에 늘어선 대기 줄의 무언의 압박이나 시스템의 오류 메시지뿐입니다. 디지털 밀도가 빽빽해질수록, 그 사이를 메우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밀도는 오히려 헐거워지는 반비례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흐름은 도시 공간 경험의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는 프리미엄 공간에서는 여전히 사람에 의한 세심한 대면 서비스가 제공되는 반면, 대중적인 일상 공간은 빠르게 무인화, 자동화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온기가 닿는 서비스는 특별한 경험이 되고, 차가운 알고리즘과 터치스크린이 보편적인 도시 경험의 표준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는 도시 공간의 질적 경험이 기술적 적응력이나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물론 기술의 발전과 디지털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자영업자들에게 자동화 시스템은 인력난과 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생존의 도구이며, 데이터 기반의 공간 운영은 도시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문제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그 밀도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사회적, 공간적 배려가 충분히 마련될 시간이 부족했다는 데 있습니다. 도시의 성숙함은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의 과정에서 누구도 뒤처지지 않도록 살피는 균형 감각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지점은 단순히 키오스크의 버튼을 키우는 식의 미봉책이 아닙니다. 도시 공간을 채우는 디지털 밀도의 설계를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공간의 유일한 출입구가 되지 않도록 아날로그적인 우회로를 열어두고, 기술적 장벽 앞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적 자원을 배치하는 것은 비효율이 아니라 도시의 포용성을 높이는 필수적인 투자입니다.


진정으로 스마트한 도시는 최첨단 기술로 빈틈없이 채워진 도시가 아니라, 그 기술의 틈새로 사람의 시선과 온기가 흐를 수 있는 여백이 존재하는 도시입니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의 공간이 데이터로 무장한 누군가만의 점유물이 아니라, 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에게 공평하게 열린 장소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건강한 디지털 밀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문턱을 낮추는 세심한 배려야말로 미래 도시의 가장 시급한 설계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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