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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다 몽골 고비 #01

달리고 또 달려도 푸르공은 땅도 하늘도 벗어나지 못했다

by MJXVI


DAY2 바가 가즈린 출루 [Baga gazriin chuluu]

길이 15km 너비 10km의 돌산이 머금은 작은 숲과 오래된 사원





투어 첫날 아침


설레는 투어 첫날 9월 11일 오전. 가이드 운드라, 기사 비얀바와의 어색한 첫인사 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게스트 하우스에서 100m 떨어져 있는 Market으로 장을 보러 간다.

아직은 울란바토르.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이 필요할지도 모른 채 큰 바구니가 부끄러울 정도로 최소한의 물, 술, 과자를 담는다.


TIP
몽골 대부분의 마켓에서 라면, 김치, 김, 한국 과자 등이 구입 가능하다. 하물며 한국보다 싸다. 가서 사세요.
말젖, 양젖, 염소젖, 낙타젖 등 다양한 젖을 먹을 수 있는 나라이지만.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는 예상 밖으로 한정적이다.





꽤나 괜찮은 출발



울란바토르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주유소 앞에 멈추는 푸르공. 그 한 시간 동안 차창 밖의 초원과 하늘에 감탄하던 우리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푸른 하늘·초원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붉은 주유소



저 멀리 보이는 초원 너머로 무엇이 있을까 크리스마스 날 아침 선물 꾸러미를 풀기 전처럼 두근거리고, 비로소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확신을 준다.



이 때 까지만 해도 저 초원 뒤로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날 기다릴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했다.







끊임없는 초원을 느끼다


저 언덕을 지나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타날 것 같다는 나의 기대를 처참하게 무시하는 고비로 가는 길. 하지만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희망 고문하고 정신승리를 하다 드디어 마주친 큰 무리의 염소 떼.



끊임 없는 초원을 달리다 보면 수 없이 만나게 될 몽골의 친구들



반가운 마음에 푸르공에서 내려 염소들을 향해 신나게 뛰어가 보지만, 고비의 뾰족한 풀들은 낯선 날 따갑게 찌른다. 그런 나를 비웃듯이 염소들과 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한 시간 전의 푸른 날씨만 기억하던 내 머리 위로 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비가 따갑게 내린다.


이미 젖어버린 옷. 느적느적 걸어가며 하늘을 보니, 저 멀리 비가 내리지 않는 밝은 하늘이 보인다. 넓은 초원 덕분일까 아니면 높은 빌딩이 없기 때문일까. 그만큼 몽골의 하늘은 넓고 멀리 보인다. 그래서 비가 내리는 곳과 비가 내리지 않는 곳을 눈으로도 선명히 확인할 수 있다.



TIP
시적 표현이 아니다. 정말 비가 목욕탕 폭포수 마냥 따갑다. 하지만 우산은 소용없다. 우산은 노상 방뇨할 때나 쓰는 것이다. 시력이 6.0이라는 몽골인들을 피해 열심히 걸어가 봤자다. 나의 소중한 엉덩이를 지켜 줄 우산(가리개)을 꼭 챙겨 가자.





푸르공은 달리고 또 달린다



1960년도 즈음에 소련에서 비포장 도로인 시베리아에서 병력을 수송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승합차(봉고) 푸르공. 오래된 외관에 불안하기도 했지만, 계기판은 60-90 사이를 가냘프게 흔들리면서 쉬지 않고 움직인다.



아직은 포장도로(Paved Road)를 달리고 있는 푸르공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더 달려서야 우리는 투어 첫 식사를 하게 될 식당 앞에 도착했다.






굴러다니는 쓰레기도 때론 좋은 피사체가 될 수 있다



고작 두세 시간 푸르공을 타고 달렸을 뿐인데, 이미 내 눈은 아무것도 없는 넓은 초원에 적응되어 길가에 굴러 다니는 쓰레기도 신선해한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보드카 쓰레기 병과 동행 오빠의 발



비단 쓰레기뿐만이 아니다. 땅과 풀이 아닌 모든 것이 내 눈에 선명히 들여다 보이고, 도대체 저건 무엇일까 확인하고 있는 날 발견한다.



식당 옆 개 팔자가 상팔자임을 눈으로 보여주는 검정 개



푸르공에서 내려 허리를 피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애교를 부리던 검정 개는 우리에게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확신한 후 저 멀리 돌아가 몸을 긁는다.



처음 본 몽골 초원의 화장실 옆 작은 그늘에서 낮잠을 자는 돼지 가족



돼지 가족은 내가 다가가는 것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화장실 옆 작은 그늘에 옹기종기 모여 낮잠을 즐긴다. 처음으로 화장실을 가볼까 도전하려던 난, 이내 이 곳은 돼지들의 쉼터로 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가 가즈린 출루 [Baga gazriin chuluu]



출발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초원에 지쳤을 때 즈음 저 멀리 바가 가즈린 출루가 보인다.



Baga gazriin chuluu



솔직하게 말하자면 기대치가 크지 않았었다. 몽골의 고비에 가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지 Baga gazriin chuluu를 보는 것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고, 사전에 정보를 찾아본 것도 없었다.



Baga gazriin chuluu



다행이었다. 멀리 서는 그냥 돌산 같아 보이던 그곳에서 그 날 처음으로 무성한 숲을 볼 때의 쾌감은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오랜 시간 전 불교 사원이 있었다는 그곳에는 터와 부서진 돌기둥만 가득하지만, 그 터에는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



주변 무수하게 많은 작은 돌탑들, 그리고 몽골인의 염원
돌탑이라고 하기엔 민망할만큼 작지만 언젠간 큰 돌탑이 되지 않을까



몽골인들은 염원을 모아 기도하며 돌탑을 쌓고, 보시를 위해 돈을 놓는다. 이 돈은 근처 스님들이 주기적으로 모아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쓴다고 한다. 몽골의 모든 돈은 지폐인데, 강한 몽골의 바람과 비에 찢기고 날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게르에서의 첫날밤


바가 가즈린 출루를 뒤로 하고 한 시간 정도를 더 달려 도착한 나의 첫 게르. 하늘은 충분히 괜찮았고, 초원 위에서 먹는 첫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첫 날의 석양
첫 게르, 첫 초원 위에서의 식사



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동행들은 아직 서먹한 관계를 탈피해 보고자 꽤 늦게까지 바깥에서 술을 마셨다.



해지기 전



하지만 몽골 밤하늘의 시작은 9시가 넘어서야 찾아왔고 기대했던 별은 오전의 비 때문인지 보기 힘들었다. 별을 기다리던 우리는 결국 게르 안에서 카드 게임을 하며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그렇게 원하던 몽골의 예쁜 별 하늘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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