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처럼 간단한 규칙을 요하는 곳도 없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임무를. 잘하면 된다. 훈련도 식사도 심지어 잠자는 것까지.
내 주력은 '군기'로, 쩌렁한 복창을 해야 한다기에 전역 전까지 소리를 질러대는 추태를 유지했다. 시키는 대로 했으니 재수 따위는 개나 줘버리고 칭찬일색 하지 않음이 못마땅할 따름이었다. 어지간하면 인정했겠지만 간부들 또한 이건 정도가 심한 건 아니냐며 가식의 진위를 논하곤 했으니 'FM'이라는 별명을 유지하고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군기든 척'이 되어 있었다.
시작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각오가 대단했고 목표 또한 대담했다. 확실한 목표가 군생활의 지루함을 덮을 거라 확신했다. 원스타부터 포스타까지 직접 마주 보며 악수하는 것을 큰 목표로, 각종 포상 휴가를 얻어 휴가만으로 100일 채우는 걸 작은 목표로 정하고 사기를 높여갔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그때 총 휴가 100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따져 묻는다면 모르는 척하겠다.
논산훈련소 소장상을 시작으로 후반기 교육 학교장상을 비롯 각종 포상과 수상으로 투스타까지의 악수와 포상 휴가 40여 일을 채워가고 있었다. 정기 휴가를 합하면 90여 일에 근접한 수치다. 최선을 다했고 결실은 뚜렷했다. 어딜 가나 칭찬이었고 잘한다는 소문이 함께 따라다녔다. 여러 조교 활동과 교육 파견도 도맡아 하게 되면서 직업 군인으로 장기 복무 권유도 제법 받곤 했다.
그럼, 군기든 척은 왜?
군대는 단체 생활이고 집단이 하나가 되어야 하루하루가 스스럼없이 지나간다. 누구 한 명이 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튀는 놈이 자꾸 빠져버리는 게 문제인 거다. 내가 빠지면 내 자리를 누군가는 메워야 하고 전투 계획이나 방어 전술 등의 동선들을 다시 짜야한다. 사회생활과 같다. 공교롭게도 힘든 훈련 등으로 모두가 진을 빼야 할 때 우연찮게 가게 되는 휴가라면 괜찮지만 돌아보건대 답답하지 않은 척 위장하며 절실하지 않은 척 때를 봐 필연적인휴가를 노리고 있었다. 눈치도 없었고 적당하지도 않을 만큼.
주로 계급이 낮을 때여서 간부들도 탐탁지 않았으나 명분 없는 갈굼은 없었다. 불편한 기류만 겉돌고 있을 뿐. 한 달도 안돼 나가길 반복하지만 나갈 때도 복귀할 때도 시들시들한 군기든 척그뿐이었다. 나름대단했던 목표는 이제 재미없는 이따위 것으로 탈바꿈된 채.
시작이 어긋났다.
나는 괜찮은 척 떠밀려 군에 가서 좋은 척 사기 치며 버틴 거다. 돌아보면 어디에서 잠들 건 지금 이 순간을 제대 후 내 방에서 호기롭게 복기할 거라 다짐했었다. 다짐의 상상이 꿈까지 이어지길 또 매번 바랐었다. 군생활의 목표가 확실했듯 버팀의 목표 또한 확실했다. 착각에서 빠져나오니 매사에 지루함과 따분함 뿐이었고 군기든 척하는 군인이 되어버렸다.
노력의 대가가 냉랭한 시선임이 못마땅했다. 그리곤 아등바등 거리며 열심인 척을 시작으로 하는 척하며 각종 척을 끄집어냈다. 의지 따위는 쓸모없으니 죄다 가리며 생활하고 싶었고, 제 버릇은 그새 돌아와 복창소리만을 군기든 척으로 유지한 채 못마땅한 척으로 일관하기 시작했다.
기상나팔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하루는 적당량의 지루함을 변함없이 담고 있었다. 거기에다 군기든 척이라는 재미없는 지루함까지 함께 담아야 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늘어져 갔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여전히 소리를 질러댔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쩌렁한 복창 소리는 어떤 면에서는 반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후임들은 당연히 나보다 더 크게, 선임들은 나 때문에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야 했다. 사소하면서 껄끄러운 상황들이 생겨났지만 난 그런 상황들을 이용하는 추잡한 모습마저 서슴지 않았다.
군생활이 쌓여갈수록 나름의 여유와 노련함도 쌓여간다. 게으름이나 요령과는 확실히 다른 경험에서 오는 생활의 유연함 같은 거다. 나는 그걸 무시했다. 모든 훈련과 교육은 FM으로, 각 잡힌 제식동작 후엔 전력 질주를 일삼았다. 선임들은 노련함 따윈 버리고 뭣같이 뛰어야 했다. 교육 자료는 글자 하나까지 달달 외워 훈련에 임했다. 숙달된 선임들 또한 예정에 없는 복사암기에 이를 갈아야 했다. 관등성명은 제대 전까지 우렁차게 외쳐댔다. 선임들의 여유 있는 관등성명은 간부들의 비교를 비껴가지 못했다. 물론 후임병들은 신병교육대 수준의 긴장을 안고 생활해야만 했다.
한편으론 온전히 제모습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만 군생활이라는 게 매사 이래야 되는 건 아니다. 군인도 사람이고 어느 정도 숨통은 터주고 살아야 한다. 고맙게도 부대를 빈틈없게 만들어 버린 나는 누구나 씹어대기 좋은 고마운 존재가 되어갔다. 동기들 또한 이런 나를 멀리했으나 명분은 확실했고 꼴 보기 싫게도 난 전혀 바꿀 생각이 없었다.
군생활은 특히나 꼴 보기 싫은 내 모습을 비추고 있다. 간부들 역시 답답했을 것이고 질러대는 복창 소리가 거슬리게 불편했을 수도, 군기 빠진 뭐라도 흘리길 바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건, 천천히 곱씹어 보면 금세 상황이 제대로 드러난다. 그건 내가 완벽한 척 군생활을 이어가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그냥 혼자 놀게 내버려 둔 거였다는 걸. 재수 없는 저 모습 그대로 혼자 놀게 방치해 버렸다는 걸. 애먼 군동료들만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가 사라진 나로선 혼자 놀기만 잔뜩 하고 왔다는 걸.
제대 후 난 군기든 척 쌓아 온 이런저런 성과를 어쭙잖게 자랑하고 다녔다. 늘 해오던 잘난 척을 입혀가며 꼴사나운 으스댐을 한가득 안고서. 눈치란 게 사라지고 없으니 꼴 보기 싫은 자랑거리가 꼴값이 되어가는 줄도 몰랐을 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새로운 변화와 미래에 대한 대비는 고사하고 얻어온 것이라곤 '여전한 잘난 척'에 덤으로 '재수 빠진 군기든 척'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걸 떡하니 붙여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