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개의 트라우마
천둥이 치면 새벽 4시가 되어가는 깊은 밤일지라도 컹컹 짖어댄다.
집에서 개를 두 마리나 키우지만 내 개나 남의 개나 짖는 소리는 좋아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두 마리 다 잘 짖지 않는 착하고 예쁜 개들이다.
나는 소리에 잘 놀라는 스타일이라
둥이가 갑자기 짖으면 깜짝깜짝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개가 짖는 소리에 내가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뿐 아니라
공동주택에서 개가 짖는 것은 큰 민폐이기 때문에
각별히 주의를 주는 편이다.
하지만 요즘 연일 계속되는 잔인한 장마와 천둥 때문에
기분이 나쁜 사람들도 많겠지만
우리 둥이만큼 괴로운 생명체는 또 없을 것 같다.
천둥과 번개가 몹시 치던날
우리 둥이는 사람 아기처럼 울며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아보기 위해 한참을 관찰을 했다.
둥이는 명백히 천둥과 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천둥이 치는 소릴들으면 둥이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불안해했다. 아기가 엄마를 찾아 안기듯이 자꾸만 내 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쓰다듬어주고 달래줘도 잠시뿐이었다.
또다시 천둥이 치면 다시 일어나 왔다 갔다 돌아다니고
짖거나 울부짖었다.
거의 새벽 4시에서 5시가 되어가는 시간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천둥소리에 우는 개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된 것이다.
짖지 말라 고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줘도 듣지 않는다.
둥이는 몸을 떨고 있었다.
둥이는 엄살이 아니었다.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둥이는 패닉 상태였다.
그 모습이 애처로웠고 무엇보다 둥이가 보여주는 행동이 마치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서
내가 은연중에 개는 사람보다 하등 한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단 둥이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자신의 기억 중에서 좋지 않았던 생각들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좀 충격을 받았다.
사람보다 감각이 무디거나 생각이 짧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천둥이 치진 않지만 엄청난 비가 내리고 있는 지금도
둥이는 누워있지만 빗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다.
둥이는 골든 리트리버와 진돗개의 믹스견으로 소위 말하는 잡종개다.
시골 동네에서 많이 키우고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진돗개 흰둥이인 것이다.
둥이는 성격이 온순하고 착해서 이름도 '순둥이'에서 '순'자를 빼고 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둥이는 지금처럼 집안으로 들어와 살기 전까지는 집 밖에서 키우던 개였다.
해외직구로 멋들어진 개집도 사주고 주인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어쩐 일인지 집에 들어가길 싫어했다.
지붕을 싫어했고 노천 땅바닥에 누워 자는 걸 좋아했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개였다.
목줄을 빼고 도망을 쳤다가 극적으로 다시 찾기도 했었다.
그런 둥이는 비 오는 날 집에 들어가지 않고 비를 맞았고
눈이 오는 날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눈을 맞았다.
그걸 보다 못해 집안에 들여놨는데
밖에서 지내며 맞았던 비와 무서운 천둥소리는 나쁜 기억으로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둥이와 대화할 수 없으니 자세한 그 이유를 들을 수 없는 것이 너무 답답하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어쨌든 나는 둥이의 불쌍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되었고
동물이나 사람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신적인 문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가질 수 있다는 것,
삶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정신의 문제는 육체보다 우위에 있다는 생각,
불안과 걱정이 우리 삶을 얼마나 패닉 상태로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나 또한 불안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과 걱정의 실체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 속에 있는 자신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