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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쓱 Feb 21. 2021

자괴감 따위 빠질 틈도 없다는 듯

어제는 조금 힘들었습니다. 

책방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자괴감에 빠졌어요. 

남과 비교하면서 제가 너무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해 온 인생의 여러 선택들에 대해 후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2시에 알바가 끝나고 나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9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했어요. 

날씨가 포근하길래 걸어 왔습니다 .


아이스 드립 커피를 마시며 다음 주 '수요일의 편지'에 쓸 말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처음 오신 분 같습니다. 혹은 제가 기억을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책방을 둘러보시고 <채링크로스 84번지>, <당신은 빙하 같지만 그래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서울에 내 방 하나>를 고르셨습니다. 평소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는지 궁금해졌어요. 커피는 아이스 드립 커피를 드셨습니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항상 커플로 오시던 단골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번에는 남자 분 혼자 오셔서 테이크아웃으로 두 잔을 주문하셨어요. 제가 정신 없었던 설날 연휴에도 책방에 다녀가주신 분들이라 감사한 마음이 한 가득입니다. 항상 새로운 메뉴를 주문하시는데, 오늘은 아인슈페너와 드립 커피였습니다. 다음에 두 분이 같이 오시면 언니가 만든 떡 메모지를 챙겨놓았어요. 


잠시 뒤에 또 단골 손님이 오셨어요. 이분도 찐 단골입니다. 처음에 혼자 오셨고, 그 다음에도 친구 선물을 사러 혼자 오셨고, 다음 번에는 어머니와 함께 오셨었습니다. 오늘은 친구 분과 함께 오셨어요. 아인슈페너와 레몬 홍차를 주문하셨습니다. 잠깐 앉아계시다 가셨어요. 


날씨가 정말 좋기는 좋은지 친언니가 왔습니다. 산책할 겸 걸어왔다고 해요. 잠시 수다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진주 작가님이 오셨습니다. 이번에 독립출판을 하셨는데, 입고를 부탁하니 직접 책을 들고 찾아주셨습니다. <단상에 단상 달기>로 글씨체를 얼굴처럼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 얼굴을 뵈니 신기했습니다. 사실 40일 동안 글쓰기를 함께 했더니 친근감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여러 이야기를 묻고 하고 말았습니다. 진주 작가님의 따스함에 반해서 책이 빨리 읽고 싶어졌습니다.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혼자 있을 때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다행히 진주 작가님은 그 혼자 있을 때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책으로 만드셨어요. <혼자라는 말>입니다. 


진주 작가님과 즐겁게 대화를 하고 마무리 할 때 쯤, 포춘쿠키 님이 오셨습니다. 제 첫 책을 읽어주신 독자 분이셨는데, 그 소중한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습니다. 주문해주신 책과 새로운 책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목사님 부부가 오셨습니다. 바로 어제 들르셨던 분들이세요. 이번에는 두 딸과 함께 오셨습니다. 커피를 주문하실 때 대화를 들었는데, 두 딸이 너무 똑똑하고 재치있었습니다. 책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만두 님이 오셨습니다. 하... 저희 책방 첫 주의 손님이에요.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오랜만에 방문을 해주셨는데, 머리 스타일이 바뀌셨더군요. 벌써 책방 오픈한 지 4개월이 되었다고 말씀드리자 깜짝 놀라셨습니다. 오픈했을 때의 첫 모습을 기억해주는 손님이 있다는 건 벅차오르는 행복입니다. 만두 님은 최근 바빠진 저의 일상을 알고 걱정의 말을 보내셨습니다. 가시는 마지막까지도 "사장님 건강 챙기세요"라며 따뜻한 말씀을 주셨어요. 게다가 안산 빵 맛집 '안부'의 빵까지 선물해주셨습니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를 고르셨어요. 정말 안 팔릴 것 같은 책도 다 주인을 찾아갑니다. 이 책과 주나 반스의 <나이트 우드>가 그런 책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참 많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 생일인 줄 알았어요. 진주 작가님의 케이크 선물, 포춘쿠키 님의 원두 드립백 선물, 게다가 만두 님의 빵 선물까지. 사실 손님들이 와 주신게 전부 선물 같은 일입니다.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떡하죠?


만두 님이 가시고 쉬면서 마감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커플이 들어오셨습니다. 첫 방문이세요. 조용히 책방을 둘러보다 "여기 커피 마셔도 돼요?"라고 물으셔서 그렇다고 대답을 드렸습니다. 아인슈페너 두 잔을 주문 하셨습니다. 오늘 아인슈페너가 핫하네요. 책도 한 권 고르셨습니다. <돌아오는 새벽은 아무런 답이 아니다>였습니다. 딱 두 권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오늘 두 권이 전부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두 분은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하시다 떠났습니다. 6시 40분이네요. 

7시에 마감을 하니 이제 슬슬 마감 청소를 해야겠습니다. 


새벽에 자괴감에 빠져 있던 것이 우스울 정도로 따스한 마음을 많이 받아버렸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추워진다는데 하나도 두렵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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