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가 보이는 아침/김소연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을 조용히 다한다
-시집 <수학자의 아침>, 문학과지성사, 2013
10월의 중순입니다. 이탈리아는 서머타임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서머타임이 끝나기 전이지만 가을은 이미 왔습니다. 제도는 실제를 조금 늦게 쫓아가기 마련입니다. 투어를 하는 날에는 보통 아침 7시에서 8시 사이에 손님들과 만납니다. 해가 뜨는 시간이 늦어져서 하늘이 어두울 때 첫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서머타임제도 : 일광 절약 시간제 또는 서머타임은 하절기에 표준시를 원래 시간보다 한 시간 앞당긴 시간을 쓰는 것을 말한다. 출처: 위키백과
오들도 아침 일찍 손님들이 오기 전에 모임 장소에 나와있었습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어두운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습니다. 로마에 막 왔을 때, 저런 하늘을 자주 봤었습니다. 4월에 로마에 왔으니, 딱 반년이 흘렀습니다. 그때는 봄의 새벽하늘을 봤었는데, 어느새 가을의 새벽입니다. 사실 일을 하는 날에는 아침에 먼지를 볼 틈이 없습니다. 일어나면 씻고 나갈 준비를 하기 바쁘죠. 오늘도 그런 소란스러운 아침을 보냈습니다. 쉬는 날에도 조용한 아침을 맞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해는 중천에 떠 있고 밖에서 소음이 들리면 그 소리에 눈이 떠지는 것이 쉬는 날 아침입니다.
그러면 이 시처럼 조용한 아침을 맞이한 날은 언제였을까요? 기억을 돌이켜 봅니다.
시차적응이 안 되어서 새벽 3시에 눈이 뜨였던 그 날, 로마에서 첫 시작을 한 날이었습니다. 눈은 떴지만 룸메이트가 깰까 봐 자리에서 일어날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침대에 가만히 앉아서 창틈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흰색의 달빛이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따뜻한 색이 되더니 붉게 타올랐습니다. 빛을 그렇게 오래 보고 있었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불면증이 있어서 잠을 못 이루던 날들에도 밝아지는 것은 오늘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낳을 뿐,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아침에 저는 숨을 죽이고 바라봤습니다. 한국과 로마에 걸쳐서 어중간한 모습으로 새벽을 지켜봤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저를 숨죽이게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움이나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렘을 느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빛과 빛의 사이를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해는 해대로, 나는 나대로, 조용은 조용히 우리는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시인은 자다 깨어났을 때 이런 아침을 맞이했던 걸까요? 아니면 잠을 못 이룬 밤을 보내고 먼지가 보이는 아침을 만났을까요? 이 시를 쓸 때, 시인이 어떤 아침을 보았을까 궁금합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아침의 풍경처럼, 시인이 보았던 아침도 깊은 곳에 혼자 담아두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오셨습니다. 아직 모임 시간은 한참 남아있습니다. 어머니와 딸입니다. 인사를 하고, “일찍 오셨네요? 아직 모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요, 혹시 아침 안 드셨으면 근처에 카페 다녀오셔도 되고, 여기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하고 안내를 드렸더니, 어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어제 도착했는데, 시차적응이 안 되어서요. 새벽 세 시에 눈이 떠졌어요. 그래서 일찍 나와버렸어요.”
그날의 저와 같은 새벽이었겠네요. 새벽 세 시에 눈을 떠서 무얼 하셨을까요. 잠이 든 딸을 깨우지는 못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셨을까요. 혹시 먼지가 보이는 아침을 느끼셨을까 궁금합니다.
먼지가 보이는 아침, 조용이 조용을 다하는 아침, 그 경계의 아침을 또 한 번 맞이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