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철학

by 머쓱

오늘의 철학/김경미


친구는 내게 노출 드레스를 입힌 뒤

허리 안쪽을 옷핀으로 여며주고

겨드랑이 제모 상태를 확인한 뒤

뉴욕 뒷골목 클럽에 데려갔다

가는 내내 드레스 속 옷핀이 살갗에 차가웠으니


귀를 찢는 연주 소리와 춤과 술

나도 퇴폐와 환락을 좋아하지만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하지만


나는 슬픔 속에서 더 안전할 것이며

초라함이 일상의 무대의상일 것이며

발은 주로 한 박자 늦을 것이며

심장은 소규모를 떠나지 못할 것이며


이것은 내 옷이 아니며

이 사람은 내가 아니며

이 생은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라고


허리 속에서 풀려버린 차가운 황금색 옷핀이

자꾸 살을 찌른다


-시집 <밤의 입국심사> 중, 문학과지성사, 2014






며칠 동안 이 시가 목에 걸려 있는 기분입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욱신거리며 존재감을 표합니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닌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나 답지 않게 행동을 합니다. 스스로를 파괴하며 제 발로 수렁으로 들어갑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내가 원하지 않는 나의 모습으로 포장합니다. 저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때에 그렇습니다. 과도하게 밝아지며 얼굴 근육에 경련이 날 정도로 웃습니다.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는 술을 열심히 마시면서 활기찬 사람 흉내를 냅니다. 꼭 ‘이 무리에 소속되어 있어!’라고 증명을 받으려는 듯 아등바등 애를 씁니다.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가 그랬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건 만우절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입학하고 겨우 한 달이 지났을 무렵입니다. 낮에 중앙 광장 잔디밭에서 1차로 술을 마시고, 2차로 술집에서 저녁과 밤을 보내고,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밝은 얼굴로 놀았습니다. 그런 다음 샤워만 하고 아침 9시에 1교시 수업을 들어갔습니다. 사실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없는 데에서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것이 싫었을 뿐입니다.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할 때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저는 신입생이 아니라 선배였습니다. 연극팀에서 기획을 맡아서 사람들이 친해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을 때입니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 자리가 재미없었을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저 또한 즐겁지 않았기에 후회가 큽니다. 이때는 소속감을 주고 싶었습니다.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처음 갔을 때도 그랬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 노는 사람인 척, 그러니까 ‘인싸’인 척을 하면서 사람들과 어울렸습니다. 국제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리며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다!”라고 온몸으로 말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즐겁지 않았습니다. 결국 한 달도 못 가서 지쳐버렸고 남은 11개월은 제 방에서 혼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이렇게 알면서도 나 답지 않게 행동하는 것은 특히 누군가와 처음 만날 때, 혹은 무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걸 ‘첫 단추 잘못 끼우기 병’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억지로 꾸며낸 모습을 보이다가 결국 실패하는 것이죠. 저에게만 있는 병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모르는 사람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는 어렵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자리는 더더욱 어렵죠. 그래서 원래의 나보다 무리하게 되는 겁니다.


그럴 때에 김경미 시인의 말대로 자꾸만 차가운 옷핀이 살에 닿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옷핀의 차가운 금속이 살을 찔러서 따끔따끔한 기분입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니 결국 ‘이 생은 내가 원하던 모습이 아니게’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의 저는 제가 되고 싶었던 모습은 아닙니다. 한번 잘못되니 돌이킬 수 없어집니다.


최근에 또 이 병이 도졌습니다. 이번 주에 회사에서 전 직원 세미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스페인, 체코, 그리스 등 세계 각지에서 일을 하고 있던 회사의 직원들이 로마에서 모였습니다. 일 년 동안 있었던 일을 공유하고, 앞으로 회사의 발전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입니다. 저는 올해에 입사를 했기 때문에 이런 자리가 처음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직원들 말고는 모두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렸습니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친화력을 발휘하며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를 썼습니다. 좋은 인상을 남기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미련하게도 자꾸만 다른 사람인 척을 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결국 친한 동기에게 "너는 오늘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았던 거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게요. 왜 그랬을까요.

누군지도 모르겠는 제 자신이 싫어집니다.

옷핀이 따끔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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