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이영주
각자의 말들로 서로를 물들일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어둠과 다른 색
오래전 이동해 온 고통이 여기에 와서 쉬고 있다
어떤 불행도 가끔은 쉬었다 간다
옆에 앉는다
노인이 지팡이를 내려놓고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
흰 이를 드러내며 나는 웃고
우리의 혼혈은 어떤 언어일지 생각한다
-시집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문학과지성사, 2019
갑자기 오랜 친구 J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무늬야, 살아있지?
J는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유일한 소꿉친구입니다. 11살에 만나서 질풍노도의 초등학교 4학년을 함께 보내고, 17살에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그 뒤로는 늘 붙어 다녔어요. 사는 곳이 가까우니 등하교를 같이 하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대학교에 진학하며 저는 서울에서, J는 천안에서 자취를 하면서도 계속 연락을 하고 지냈고, 방학 때 안산 집에 돌아올 때마다 만났습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는 J가 일주일 동안 여행 겸 저희 집에 와서 그때 당시 제가 사귀던 사람에게 우설(소 혀) 고기를 얻어먹고 갔습니다. 그 이후로 J는 저의 성적 취향마저 알아버려서 우리 사이에는 숨기는 것이 정말 없어졌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둘 다 다시 안산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J의 막내 동생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면서 용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짧은 취업을 했을 때에는 한낮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J가 축하 파티를 해줬고, 언니와 함께 카페를 여니 돈 많이 벌라면서 화분을 사 왔습니다.
이 사이사이에도 많은 장면들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둘이 함께 친하던 친구가 전학을 갔을 때 강한 척하던 제 모습과 솔직하게 슬퍼하던 친구의 모습, 서로에게 더 친한 친구가 생기는 것을 서운해하던 열일곱 살의 우리, 수능을 보고 나서 복잡한 마음에 늦은 밤에 만나 학교 운동장에서 핫초코를 마시며 미래를 걱정하며 울던 우리들의 모습… 아, 맞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에는 J의 사촌오빠가 갈매기살을 사줬던 것도 떠오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은근히 잘 얻어먹고 다녔던 것 같네요. 처음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 투썸플레이스에서 초코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먹으며 그이들의 불행을 바라던 치졸한 우리, 제가 우울증을 겪으며 사람을 멀리 할 때 자신이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울던 J의 표정, 그리고 최근에는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며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불평을 하던 모습들까지…
이 친구와 함께 한 순간들이 제 인생이고 이 친구의 삶에도 제가 깊은 자국일 것입니다.
그럼, 살아있어. 너는?
스무 살 즈음에, 대학교에 가서도 여전히 자주 만나는 우리를 보면서 아버지는 신기하다고 하셨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멀어질 거라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때 저는 “이 친구랑 저는 진짜 비슷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너희는 서로 아주 달라. 그런데 그만큼을 많이 좋아하는 거야.”
그때는 그 말뜻을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저와 J는 정말 다릅니다. 같은 부분을 찾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J는 뚝배기 같은 여자입니다. 오랜 시간 열을 받아서 그 열이 한참을 남아있습니다. 반면에 저는 양은냄비 같습니다. 빠르게 끓고, 빨리 식어요. J는 고등학생 때도 스킨-로션-선크림까지 꼭 챙겨 바르는 아이였습니다. 저는 하나도 제대로 바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J는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J는 고기를 좋아하는데 저는 해물을 좋아합니다. 사실 J는 야채와 해산물을 잘 먹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다르고 싫어하는 것도 다릅니다. 하지만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같습니다. 자주 만나던 스무 살 적에는 좋아하는 마음으로 모든 차이를 이겨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만 있었다면 오래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가 처한 상황은 계속 변하는데 그 현실에서 공통점이 없다면 추억 속의 소꿉친구가 돼버립니다. 현재가 아니라 과거가 되는 거죠. 저와 J 사이에는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불행을 앓는 것이 비슷합니다. 스스로가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쉽게 열등감에 휩싸입니다. 종종 찌질하고, 자주 재수가 없으며, 줄곧 화를 냅니다. 불평도 많고 비관적입니다. 남 욕을 잘하고, 그만큼 내 욕도 잘합니다. 열한 살 때부터 삶과 사람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반 남자아이를 함께 저주하며(기껏해야 빨간 펜으로 이름 쓰기 같은) 친해졌으니까요.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의 속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삶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지질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다른 것을 변하게 하더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를 떠나 사회에 나가면서 우리가 동시에 깨달은 것은 남들 앞에서 이런 속마음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들 어느 정도는 비관적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부정적인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과는 가벼운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저는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약한 모습은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보여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은 부담스러워집니다. 제가 뭐 세상을 뒤엎어서 혁명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돈을 빌려 달라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고이고이 모아둡니다. 그리고 이 친구를 만나면 털어놓습니다. 우리는 만나면 남 욕을 하기 바쁩니다. 멀리는 대통령부터 동창들, 그리고 정말 부끄럽지만 서로의 가족들까지도. 마지막에는 스스로를 욕합니다. 내 인생은 이미 망했다고 좌절합니다. 그러면 서로 '맞아, 우리는 망했어' 라며 맞장구칩니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집에 가며 남은 생을 살아냅니다. 남을 저주하는 부끄러운 마음을 이 친구 앞에서는 터놓을 수 있습니다. 삶을 한탄한다고 내가 얕보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멋진 모습을 보일 필요 없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실패한 이야기를 아무리 해도 '루저'가 되지 않습니다.
이 친구는 나의 불행입니다. 한동안 서로 연락이 없다는 건 불행하지 않은 것이겠죠. 열심히, 제모습을 숨기며,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형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연락을 할 때에는 또 잠깐 어둠이 온 것입니다. 어둠은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합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셨나요? 하루 종일 울상인 ‘슬픔’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짜증이 납니다. 하지만 슬픔이 없다면 기쁨도 의미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을 겁니다.
제가 로마에 올 때와 비슷한 날짜에 친구는 취업을 했습니다. 한동안 둘 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습니다.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잠깐 서로를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에게 연락이 오자, 불행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안녕, 나의 불행아. 나는 잠시 쉬고 있어. 너는 어떻게 지내니?
나도 살아는 있어. 한국 언제 들어오니?
“내년 2월에 들어가.”
“그래? 그럼 겨울에 보자”
짧은 대화이지만, 숨통을 조이고 있던 것이 잠깐 홀가분해지는 기분입니다. 겨울에 휴가에 가면, 그동안 쌓아 둔 불행을 쏟아내야겠습니다. 상록수역 앞 투썸플레이스에 앉아서 초코케이크와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요. 두세 시간을 그렇게 입에 불행을 담고 나서 잠잠해진 마음으로 각자의 생활로 돌아가겠죠. 아직도 우리는 운동장에서 미래를 걱정하며 울던 열아홉 살의 마음 그대로입니다. 걱정과 불안을 억누르며 살고 있을 뿐이에요. 이 친구를 만나서 그 고통을 직면하다 보면, 언젠가 지팡이를 짚는 노인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도 서로의 옆에 앉아서 함께 태양을 바라보고 싶네요.
어떤 불행도 잠시 쉬었다 갑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을 것도 압니다.
그걸 함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