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by 머쓱

걸리버/김소연


창문 모서리에

은빛 서리가 끼는 아침과

목련이 녹아 흐르는 오후

사이를


도무지 묶이지 않는

너무 먼 차이를


맨 처음

일교차라 이름 붙인 사람을

사랑한다


(중략)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적어 놓은 채로 죽은 어떤 시인의 문장과

오래 살아 이런 꼴을 겪는다는 늙은 아버지의 푸념

사이를


달리기 선수처럼

아침저녁으로 왕복하는 한 사람을

사랑한다


내가 부친 편지가 돌아와

내 손에서 다시 읽히는

마음으로


출구 없는 삶에

문을 그려 넣는 마음이었을

도처의 소리 소문 없는 죽음들을


사랑한다


계절을 잃어버린 계절에 피는

느닷없는 꽃망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 월간 현대문학(2012년 5월호 -제57회 현대문학상 수상자 특집)








‘도무지 묶이지 않는 먼 차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도 우리는 다른 사람이기에 각자의 감상을 갖는다. 그것은 나의 투어를 들은 손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주는 나에게 힘든 시간이었다. 바빠서 힘들었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몸이 바쁜 것보다 마음을 쓸 일이 많았던 것이 힘들었다.


가장 마음이 들어갔던 것은 로마 시내 투어를 하는 중간에 손님들이 소매치기를 당한 일이다. 아침 일찍 시작해서 오후 늦게 끝나는 종일 투어였다. 열여덟 명의 손님이 함께 했는데, 그중에 한 가족이었다. 투어의 후반부에 포로 로마노의 전경을 바라보다 아들의 배낭 가방이 열려 있는 것을 안 것이다. 뻔하게도, 가방 안에는 네 가족의 하루 여행 경비를 담아두었던 지갑이 사라져 있었다. 아무리 뻔한 일이라도 나에게 일어나면 충격적이다.


나는 당황했고, 당사자인 가족들은 더 놀랐을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은 태양에 녹아버릴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반대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들의 얼굴 생김새는 잊어도 낯빛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주변에 있던 다른 손님들 중 한 명이 말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옷 안 쪽에 넣어뒀어요.” 그 말이 시작이었다. 또 다른 사람이 말을 했다. “그래서 가이드들이 뒤로 매면 남의 가방이라고 했어요.” 또 다른 입에서 “그러게 아까 가이드가 가방 조심하라고 했는데…”


순간, 머리가 하얗게 비어 버렸다. 목에 무엇인가 솜뭉치 같은 것이 막혀 있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하고,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말할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목이 막혀서 지금도 잠깐 냉수라도 마셔야 할 것 같다. 나는 사회적 공동체에 속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한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도 될까 망설여진다. 하지만 글을 쓸 때에 정직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들을 힐난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화가 났다. 싸운 적도 없는데 승패가 나뉘었다.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몰아세웠다. 동정하지 않았다. 함께 슬퍼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그 순간 앞에 있는 사람들이 싫어지고 말았다.


소매치기를 당한 손님들은 하차했고, 남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투어를 진행했다. 나는 마음속에 밀려오는 미움을 꾹꾹 눌러가며 끝까지 투어를 했다. 그리고 마무리하는 인사를 할 때 손님들에게 여행하는 중에 또 다른 투어를 듣게 된다면 오늘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최근에 내가 이렇게 화가 났던 적이 또 있었던가? 있었다. 쇠고기 파동이 일어났을 때 고기 가격이 떨어지니 많이 먹어야 한다, 테러가 발생한 곳은 안전할 테니 여행 가기에 좋다, … 이런 식의 발언이었다. 이때도 나는 화를 참지 못했다. 누군가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쉽게 말을 하는 사람을 참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말을 한 사람의 그 순간을 미워한다. 그리고 그날 손님들을 미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그날 투어에 참여했던 손님 중에 한 분이 연락을 하셨다.


그날의 투어가 참 좋았다고.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는데, 아주 기대를 했었다고. 투어 중간에 돌발상황이 있었지만 끝까지 프로페셔널하게 마무리해줘서 감사했다고.


이 말을 듣자, 그날 함께 했던 열여덟 사람들의 마음이 다 달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중한 자신들의 여행을 지키기 위해 아무 말하지 않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렇게 밖에 말을 할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동조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말들을 나는 미워한다. 또는 어떠한 위로도 해줄 수 없음에 체념하고 침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미워할 수가 없다. 안타까울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도무지 하나로 묶을 수 없이 다르다. 알고 있으면서도 매번 놀란다. 우리의 다름을. 그리고 다름이 주는 상처에 매번 아파한다.


차이가 나는 것과 틀린 것은 다르다. 옳고 그름은 분명히 있다. 어떤 반응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화가 난 상태다. 그런데 연락을 받고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두 달랐다고 생각하자 미워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들을 ‘틀린 사람들’이라고 하나로 묶어 버렸지만, 하나로 묶을 수 없어졌다.


틀림을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다름은 사랑하고 싶다. 시인이 써 놓은 시구 하나하나 틀린 것은 하나도 없다. 다른 것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구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게 될까.


걸리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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