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공벌레

by 머쓱

밤의 공벌레/ 이제니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꽃이 지는 것을 보고 알았다. 기절하지 않으려고 눈동자를 깜빡였다. 한 번으로 부족해 두 번 깜빡였다. 너는 긴 인생을 틀린 맞춤법으로 살았고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 삶이 시계라면 나는 바늘을 부러뜨릴 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하염없이 얼음을 지칠 테다. 지칠 때까지 지치고 밥을 먹을 테다. 한 그릇이 부족하면 두 그릇을 먹는다. 해가 떠오른다. 꽃이 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울고 싶은 기분이 든다. 누구에게도 말 못하고 주기도문을 외우는 음독의 시간. 지금이 몇 시일까. 왕만두 찐빵이 먹고 싶다. 나발을 불며 지나가는 밤의 공벌레야. 여전히 너도 그늘이구나.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했다.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는 것을 보고 알았다. 틀린 맞춤법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부끄러움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 시집 <아마도 아프리카>, 이제니, 창비, 2010






지치다

: (사람이 얼음을) 몸이 미끄러지도록 손발이나 도구로 젖히다.

(출처: 네이버 고려대 한국어사전)



언젠가 ‘살다’라는 단어가 아니라 ‘살아내다’라는 단어가 삶에는 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진다’는 것도 아니고 ‘살아내다’. 내가 원해서 받은 것은 아닌데, 갑자기 삶이 주어졌고, 이것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뿌리칠 수도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하지만 한 번도 그러지 못했다. 나는 손에 이물감을 느끼며 계속해서 살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아주 바빴다. 나는 온 힘을 다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소원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사람과 일, 사랑과 책임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자꾸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쥐고 있던 나의 삶이 너무나 무거워졌다. 삶에 짓눌려 나를 잃는 것 같았다.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질문만 입안에서 맴돈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할까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는다. 심지어 그것이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면 그 충격은 엄청나다. 그때의 부끄러움을 모면하기 위해 누군가는 성을 내고, 누군가는 붉은 얼굴을 감추며 거짓을 말한다. 나는 옆사람들에게 우는 소리를 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틀려버렸다. 이건 너무 속상하다. 그러니까 나를 좀 위로해줘.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다. 성을 내는 것이나 거짓말을 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더 교활하고 유치하다. 그러나 시인은 부끄러움을 꺼내서 기록하기 시작한다.


시인도 어느 날 자신의 삶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기분. 손에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억울해서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분해서 발을 구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말한다. 그러면 그냥 얼음을 지치며 썰매를 타자. 그렇게 몸을 움직이며 놀다 보면 배가 고파질 것이다. 배가 부를 때까지 밥을 먹자.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살아내지 않기로 하자.


틀렸다는 걸 인정하고, 부끄러움을 꺼내자. 그리고 지칠 때까지 지쳤다가 밥을 먹자.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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