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야식에 익숙해지는 일

서점 일기

by 머쓱


서점 겸 카페에서 일을 한다는 건 야식에 익숙해지는 일이었습니다.


오전 11시에 문을 열고 오후 9시에 닫습니다.

아침에 기운이 많은 편이라 보통 10시 전에 출근해서 청소를 하고 할 일을 합니다.

커피를 마시며 빵을 하나 먹습니다.


사람이 먹는 건 당연한 건데, 책방을 열고 어려워졌습니다.


최근에 깨달았는데요,

저는 아주 까탈스러운 손님이었습니다.


카페에 갔을 때 화장실이 밖에 있거나, 더럽거나, 불편하면 안 가게 됩니다.

특히, 화장실 휴지통에 휴지가 가득 차 있으면 볼일을 안 보고 참고 나올 때도 있습니다.

또, 저번에도 말했지만 카페 배경음악으로 k-pop이 나오면 집중이 안 되어서 싫습니다.

테이크 아웃 컵이나 머그잔이 끈적거리면 설거지를 꼼꼼하게 안 하는 것 같아서 찝찝합니다.

그리고 손님이 없더라도 야구나 축구를 보고 있는 카페의 직원(혹은 주인)은 싫습니다.

제가 주문한 커피를 타는 일이 그 사람에게는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일이 될 것 같거든요.


무엇보다도 카페의 직원(혹은 주인)이 뭔가를 먹고 있으면, 크게 실망하고 다신 가지 않습니다.

음식 냄새가 커피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물오물거리면서 주문을 받는 것도 싫고요.


하지만 제가 책방 겸 카페의 주인이 되고 나니 이 모든 게 얼마나 수고로운 일인지 알았습니다.


깨끗한 '느낌'을 제공하기 위해서 저는 하루에 수십 번을 쓸고 닦아야 합니다.

그건 입에 들어가는 것을 파니까 당연합니다.

음악은 하루 종일 재즈만 들으면 하루키라도 질릴 것 같습니다


아니네요, 그 사람은 재즈바를 할 정도였으니까 안 질릴 것 같아요.

하지만 전 k-팝 처돌이라서 질립니다.


야구나 축구는 원래 안 보지만, 영화가 자꾸 보고 싶습니다.


그래도 이런 마음은 꾹 참을 수 있습니다.

재즈도 중간중간 팝을 넣어서 버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밥은?


아르바이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 혼자 일하기 때문에

카페 문을 닫고 나가서 밥을 먹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게다가 혹시라도 뭔가를 먹고 있을 때 손님이 온다면?

책방이든 카페든 밥 냄새가 나는 건 싫습니다.


그래서 밥과 면 종류는 일단 포기했습니다.


결국은 냄새가 덜 한 빵을 먹습니다.


부피가 큰 거 말고, 작은 걸로.

금방 씹어 삼킬 수 있는 것으로.

혹시나 빵 냄새가 날 수도 있으니까 커피 냄새로 덮기 위해 드립 커피도 탑니다.


점심으로 작은 빵 하나,

저녁으로 큰 빵 하나,

간식으로는 초콜릿.


빵을 좋아하는 편이라 만족감은 높습니다.

게다가 식사 메뉴를 매번 다르게 먹는 편도 아니라 매일 같은 빵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9시에 문을 닫고 집에 가면 매운 한식이 먹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월요일에 불족발을 배달시켰습니다.

그리고 3일 내내 퇴근하고 남은 불족발을 데워 먹었어요.


이번 주에는 3일째 퇴근하고 떡볶이를 먹고 있습니다.


책방을 시작하기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내 위장, 내 식도... 미안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통신판매업 신고가 너무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