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MoCA와의 문화예술교육 교류
# MoCA와 협업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상상하며
예술가 그리고 예술교육가로서의 균형감 있는 삶을 살아가려 노력하는 내게는, 매 해 나만의 키워드를 선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해를 살아가려는 습관이 있다. 지난해의 나의 키워드는 “다정함”이었고, 다소 지나치게 느낄 만큼 이 “다정함”을 작업과 교육환경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녹여내려 애썼다.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드러내는 작업이 곧 예술이라는 것을 지난 “다정함” 프로젝트를 통해 느꼈다. 분명한 나만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작업과 교육프로그램들은 그 어떤 직업보다도 선명히 그 흔적을 남기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아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신중해진다.
올해의 키워드는 지난 2022년 겨울, 어린이 연극을 위한 포스터 작업을 위해 읽었던 한 권의 어린이 책에서 시작된 단어 “엉뚱이”였다. 우리 모두 한때는 엉뚱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나만의 특질을 모두에게 드러내도 사랑받는 삶을 살았지만 어떤 순간, 누군가의 서늘한 시선 혹은 분명한 제지를 받아가며 내가 가진 이 사랑스럽고 엉뚱한 나만의 고유한 그 기질을 서서히 잃어간다. “엉뚱이”는 문제를 일으키거나,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특징을 여전히 유지하고 자신의 그 기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엉뚱이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실해지자 이를 좀 더 지지해 낼 수 있을 여러 자료들을 찾아 정리하고, 가벼운 스케치를 남기며 엉뚱이 프로그램을 위한 작업을 준비하면서 조금은 다정한 시선과 마음결로, 나와 타인의 닮고 다름을 틀림이라는 단어가 아닌, 구분 짓기를 통해 나와 다른 편으로 나누기보다는 모두는 나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그저 도드라지고 싶은 마음에 엉뚱한 척 행동하는 것을 독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예술교육으로 짚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나의 파트너인 연극단 “코랄시어터”와 함께 연극 후 시각 체험활동을 통한 오감체험형 예술교육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회의를 진행하려는 그 찰나, 어린이극으로 각색한 연극가님이 “소피의 못 말리는 패션”이라는 책에서 대다수의 문장을 차용한 극본을 만들다 보니 저작권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저자와 출판사에 각각 문의를 남겼으나 답변을 듣지 못해 저작권을 해결할 수 없어 이 프로그램에 대한 전체적인 구상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진전 없이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의 평면작업은 글을 읽고 떠오른 나의 영감을 바탕으로 하는 순수 창작물이었기에, 보다 유연히 활용할 수 있었다.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을 상황일 경우를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구상하며 다양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내용의 예술 교육프로그램으로 다듬어냈다. 조금 더 분명한 키워드 수집을 마무리하고 있을 시기, 지난가을에 협업했었던 대만 MoCA와의 2024년 해외교류를 위한 교육프로그램 제안을 하는 기회가 내게 생겼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엉뚱이를 찾아서>라는 제목의 교육프로그램이, 아이들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대만 타이베이 현대미술관 MoCA 1층, 수업 안내문 :Photo provided by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Taipei (MoCA Taipei)>
# MoCA와의 사전 소통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경험
대만에서의 일정이 대략적으로 구성되어 갈 즈음, 교육 프로그램 또한 MoCA의 교육담당자 Monica 선생님과 공유 문서로 실시간 공유하며 프로그램의 방향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Monica 선생님은 꼼꼼하게 이메일과 공유 문서함 속의 모든 파일들을 검토해 주셨는데,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을 하지만 그녀가 무척 다정하고, 섬세하며 이해심 깊은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모든 협의 과정 속 소통은 이메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모든 과정들에서 얻었던 소중한 경험은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들이 바탕이 되었을 때 다른 언어와 문화 그리고 시차가 있는 양국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더라도 어려움이 없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MoCA와의 소통이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는 점은 분명 핸디캡일 수도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오히려 다른 언어로 서면으로 소통을 했기 때문에 더욱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분명하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영어로 내가 하고 싶은 핵심 문장을 잘 전달해야만 했기에, 텍스트는 늘 흔적이 남기에 신중하게 작성할 수밖에 없었으며, 여러 번 영어-한국어로 바꿔서 생각하고 작문을 하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오히려 내가 작성한 교육안에 대한 다소 불편한 지점들을 빠르게 발견하고 변경할 수 있기도 했고, 핵심키워드가 무엇이었는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생각하고 짚어낼 수 있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전체 구성이 온라인 미팅에서 수정/확정된 이후 필요한 재료들이나 공간 구성에 대한 협의들을 진행했다. 공간을 가기 전, 사진들로 상상하기란 참 쉽지 않았지만 Monica 선생님의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들과 온라인에 MoCA에 방문한 관람객들이 찍어 올려둔 여러 사진들을 검색해 보면서 공간의 크기와 분위기를 유추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가야만 할 재료들과 미술관이 가지고 있고, 공유해 줄 수 있는 재료들에 대한 공유는 서로가 재료리스트를 작성해서 체크하며 그 범주를 좁혀나갔고 한국과 달리 110v를 사용하는 대만에서는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글루건과 같은 재료들을 사용하려면 변압기를 챙겨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미술관이 갖고 있는 글루건을 사용하는 것으로 협의를 했지만, 이번 교류전을 진행하면서 나라별 전압이 그리고 플러그의 모양이 다를 수 있기에 평소 사용하는 디바이스나 재료들을 현지사정에 맞춰 사용하는 전체 과정을 상상해내야만 했다.
# 협력 아티스트와의 협업 과정
MoCA에서는 교육프로그램을 검토하시고 함께하면 좋을 협력 작가님을 추천해 주셨는데, 대만의 드라마 예술교육가와 나의 교육안을 바탕으로 협업할 수 있게 되어서 무척 감사했다. 사전에 작성해 공유했던 <사랑스러운 엉뚱이를 찾아서> 교육안은 특히 드라마 장르의 예술교육가와 협업으로 진행할 때 보다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드러내려는 ‘다양성’ 키워드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한국에서 이 프로그램을 현장에서 실연할 때 함께할 나의 협업 파트너들 모두 연극 교육가들이기에 그들과의 협업을 염두하며 작성한 프로그램 플롯이기도 했다.
온라인 미팅을 통해 Monica선생님과 협력 아티스트 I-Chi 작가님은 나의 교육안에 대한 검토를 충실히 하셨기에 미팅을 시작함과 동시에, 글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지점들이나 교안 속 사용한 미술용어에 대한 정의를 함께 정리해 나갔다. 수업을 총 7개의 단계로 나눈 이유와 그 과정들 사이의 연결 지점에 대한 질문/답변을 나누며 더 나은 방향을 제언을 아낌없이 주시고 또 구성한 교안의 전반적인 취지를 전적으로 지지해 주셨다. 한 시간이라는 짧은 온라인 미팅 시간이었지만, 교육안에 대한 세부 내용을 협의하기에는 좋은 시간이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은 협업 작가님이 수업 당일 미술관에 오셔야 하는 일정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동선이나 현장에서 사용할 매체들에 대한 협의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온라인 미팅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웜업과 아이템 제작으로 들어가기 전 움직임으로 아이들이 좀 더 엉뚱한 몸짓을 해 보는 과정, 아이템을 장착한 후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퍼레이드를 하는 과정에 대한 협력 작가님의 세부 설명에 대한 질문을 남겼지만 대만에 도착해서도 그 대답은 듣지 못했는데 언어적인 불편함 때문인지 즉흥성을 바탕으로 진행하려는 협력 작가님의 의도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전적으로 작가님의 그 즉흥성을 믿었다. 사전에 소통되지 못한 부분은 현장 속 리듬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으며, 아이들이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어색함을 느끼지 않았으면 했기에 현장에서 만나자마자 협업작가님께 순차통역을을 도와주실 통역사님을 통해 아이들에게 꼭 전달되어야 하는 지점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눈 뒤, 전체 리허설을 함께 시작했다.
조금 촉박하게-아이들이 공간에 들어와서, 준비된 바닥 위 방석에 앉거나 공간을 돌아다니는 동안- 전체 리허설을 진행하면서, 협업 작가님이 구상해 오신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기에 조금은 아쉬운 소통이었지만 수업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한 편의 연극이 시작된 것처럼 굉장한 몰입감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눈빛과 목소리, 움직임을 바꿔내는 것을 보고 바로 안심했다. 누군가는 글로, 자신의 예술 교육안을 설명하는 것에 익숙하지만 또 누군가는 큰 틀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현장감 있는 교육활동으로 그 과정을 대신하기도 한다. 이번 협업에서, 나는 좀 더 섬세한 교안을 작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이 유는 순차통역이 갖고 있는 단점을 다른 해외교류를 통해 이미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순차 통역으로 워크숍,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은 많은 제약과 촘촘히 구성된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 다른 언어를, 나의 언어로 바꿔서 전달되는 그 순간 언어의 온도감이나 그 맛은 달라지기 때문에 몰입감이 떨어지고 느슨해지는 집중력은 어쩔 수 없을 단점이다. 다행히, 대부분의 움직임 과정에서의 설명이나 리액션들을 협력 작가님이 순발력 있게 대처해 주시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몸짓이나 이야기로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진행 중에서도, 협의했던 것보다 더 나은 방향을 서로 제안하거나 변경하거나 삭제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도 무척 자연스럽게 협의를 주고받으며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상황을 만들어갔는데 우리 모두 각자의 현장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왔기에 가능했던 지점들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몰입해서 작업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틈을 발견한 협력 작가님은 한국의 교육현장에 대한 궁금증이나 대만 교육현장이 갖고 있는 장, 단점에 대한 이야기도 편하게 나눠주셨고 그 내용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대만의 아이들도 한국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부모님의 선택과 조언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워크숍에는 부모님 참여가 필수이며 한 공간 속에서 머무르면서 활동을 살펴보거나 함께 참여하며 작품을 “잘”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하는 학부모님들이 많은 편이라서 가끔은 워크숍을 할 때, 신청 단계에서 부모님은 공간에 머무를 수 없다는 문구를 넣기도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독려하는 학부모님들도 계셨지만 적극적으로 아이를 대신해서 만들기를 하는 학부모님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현장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면 제안하는 주제를 해석하는 아이의 활동의 “과정”을 그 자체를 지지하는 학부모님들 보다는, 그저 그럴싸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결과”에 집중하는 학부모님들이 더 많았었지만 지금은 바뀌고 있는 그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는 나의 의견에 무척 공감하며 요즘 대만은, 결과론적인 예술 교육에서 벗어나 보다 과정 중심적인 예술교육이 갖고 있는 긍정적인 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예술 교육가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고, 무척 반가운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엇을 그저 만드는 것은 예술 교육이 아닌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며,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통한 결과가 예술 교육이 가진 순기능이자 지향점이라는 것에서 우리는 공통된 의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꽤 많은 각자의 현장에서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하는 워크숍 과정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작은 이야기들의 책갈피들은 서로 나눈 셈이었고,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인사를 나눴다.
협업 작가님과의 협업을 통해 양국이 갖고 있는 현재 문화예술교육의 지점과 나아갈 방향, 학생들이 예술 교육을 통해 얻기를 바라는 것과 예술 교육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들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예술 교육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협력 아티스트, 통역사, 미술관 에듀케이터와의 현장 협업 과정 중 :Photo provided by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Taipei (MoCA Taipei)>
# 재료 준비 과정에서의 에피소드
프로그램의 특성상, 좀 더 다양한 소재의 재료들을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마주하기를 바랐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대부분의 소재들을 찾고 각각의 꾸러미를 만들어서 대만으로 가지고 가야만 했는데, 엉뚱함을 상징하는 아이템을 만들 때 보다 우리의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구들을 보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새로운 용도로 창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는 다소 위험할 수 있을 나사못, 거친 사포도 포함되어 있었고 헤어롤과 파마롯트, 탁구공과 헤어캡과 같은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못했던 재료들 그리고 여러 겹이 한 묶음으로 되어있는 냅킨과 단추, 고무장갑, 비닐장갑과 포크 등 일상생활에서 자주 보던 재료들이 하나의 패키지에 담길 수 있게 구성했다.
아이들이 패키지를 보고 고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한국어가 쓰인 다양한 쇼핑백들을 한국에서 구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꽤 즐거운 여정이었다. 가능하면 한국의 브랜드, 한국어가 포함되어 있는 쇼핑백들을 모으려고 노력했고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20개의 다양한 디자인의 종이 쇼핑백을 구할 수 있었다.
대만 MoCA에 도착해서 비닐팩에 담긴 엉뚱한 재료 패키지를 각각의 쇼핑백에 담고 보이지 않게 한번 접어낸 후 숫자가 쓰인 텍을 스테이플러로 고정시켰다. 아이들은 웜업이 끝나고 아이템 제작을 시작할 때 계란판 위, 알 모양의 플라스틱 통을 랜덤으로 하나씩 고르고 그 알에 쓰인 숫자와 같은 쇼핑백을 찾아가는 것으로 개인 재료를 나눠냈는데 처음에 제안했던 아이디어는 이 쇼핑백을 미술관 공간 속에 숨겨서 보물을 찾듯, 자신의 알의 숫자와 같은 쇼핑백을 찾아가며 그 흥미를 높이는 것이었지만 공간의 제약상 이 과정은 생략되었다.
< 수업 재료 체크 :Photo provided by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Taipei (MoCA Taipei)>
아이들에게 엉뚱이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무언가를 나눠주고 싶어서 처음에는 종이인쇄물을 제공할 계획을 구상했다가, 엉뚱 성을 찾아내는 과정을 실컷 하고선 “증명서” 종이로 그 엉뚱성을 인정한다니.. 너무나도 수업 주제와 맞지 않은 것 같아서, 적어도 종이증명서만큼은 나눠주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엉뚱이로서의 삶을 독려하는 예술가가, 대만의 아이들에게 조금 엉뚱해도 괜찮다는 격려를 나눠주는, 그리고 엉뚱한 아이가 맞음을 인정해 주는 표식으로 줄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길에서 줍깅한 여러 오브제를 붙여낸 작은 펜던트를 랜덤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줄까, 하는 구상을 하던 어떤 순간 장난감처럼 생긴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아이들이 보여주는 그 찰나의 순간의 엉뚱성을 담아내고 그 뒷면에 나의 싸인으로 그 사진이 엉뚱이 멤버임을 증명하는 표식이 되면 좋을 것 같았다. 가능하면 사진의 인쇄 형태도 동그란 모양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양성이라는 그 단어의 이미지를 시각화시켰을 때 동그란 모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장난감스러운 80년대에 만들어진 폴라로이드를 구해서, 조금 더 장난감스럽게 바꾸기 위해 카메라의 스트랩도 그 분위기에 맞게 꾸몄다. 그리고 동그란 프레임으로 출력되는 폴라로이드 필름까지 확보했다.
# MoCA 의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환경
처음 Monica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들의 예술체험을 위한 공간이 따로 준비되어 있어, 그 공간에서 예술교육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셔서 무척 기대가 되었다. 지난 2021년 부산에서 세계문화예술교육주간 속 포럼에서 소개된 MoCA 의 어린이 공간은 무척 사랑스럽고, 편안하며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여러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인테리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걸 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공간은 길고 좁은 직사각형태의 공간이고, 공간 속에는 조형물을 포함한 여러 설치물들이 있고 MoCA에서 진행하는 여러 어린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셋업이 모든 공간에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정리를 해서 수업을 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나의 워크숍의 경우 참여하는 아이가 20명, 부모님이 한분 이상 오신다고 하셨을 때, 최소 40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있기에도 불편한 공간이었기에 1층의 액티비티홀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최종 회의를 거쳐 공간 확정이 되었다.
공간이 바뀌고 난 후, 넓어진 환경은 무척 좋았지만 그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다정한 분위기가 물씬 나던 공간이 그립기는 했다. 액티비티홀은 일반적인 나무 바닥과 빔 프로젝트, 네모난 책상과 네모난 창문이 가득한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충분한 여유 공간이 있고, 구조물이 없기에 활동에서 안전하며 모든 인원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큰 창문들 앞에는 접이식 의자들을 한 줄로 쭉 나열해 두었는데, 참여자들의 부모님들이 앉아서 수업을 참관할 수 있는 지정석을 구성해 두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어서 Monica 선생님께 질문을 했더니 대만의 워크숍에서 영유아가 참여하는 경우 신청할 때부터 부모 중 한 명 이상은 수업이 시작하고 끝날 때까지의 모든 시간에는 배석하여 아이들의 활동을 참관하거나 혹은 책을 읽거나 핸드폰 확인을 하는 등 개인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며 아이들만 참여하는 워크숍은 수업을 준비한 예술 강사가 특별히 요청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들을 보육원에 맡기듯 공간에 둔 채로, 수업 환경을 벗어나는 일은 없다는 답변을 해 주셨다. 워크숍에 아이들을 참여시켜 두고선 삼삼오오 모여서 자리를 떠나는 한국의 학부모님들을 자주 봐왔기에, 이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물론, 예술교육의 의미가 이제는 기술예술교육에서 창의예술의 경험으로 바뀌고 있기에 한 공간에서 학부모님과 아이가 동반하여 수업을 진행하나,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함께 만들어내는 예술교육프로그램이 아닌 수동적으로 아이들의 뒤에서 그저 참관하는 형태로서는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예술 체험에서 아이들에게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질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남아있다. 하지만,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이 참여하는 예술교육프로그램이 이루어지는 공간에 함께 함으로써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으며, 활동들을 통해 아이들이 어떤 창의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학부모도 함께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여러 장점들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수업을 위한 공간 세팅을 마치고 :Photo provided by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Taipei (MoCA Taipei)>
# 교육프로그램을 실행하며 만난 참여자들
부모님과 함께, 수업이 시작하기 15분 전이 되자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 아이들은 호기심 있는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작년 이맘때쯤 마스크 쓰기가 해지된 한국과는 달리 아직 대만은 마스크를 벗는 것에 대해 소극적인 편이라는 이야기를 미술관의 직원을 통해 오전에 전해 들었는데, 실제로도 꽤 많은 참여자들과 학부모님들은 마스크를 쓰고 오셨다. 마스크를 낀 참여자들을 바라보니,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대만의 국민성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한 경계가 강하다고 들었는데 이해가 되기도 했다. 계속해서 수업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눈빛은 궁금증과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낯섦이 함께했다.
아이들을 관찰하며 리허설을 마무리했는데, 대다수의 참여자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들이지만 무척 조용하고 얌전하게 바닥에 준비해 둔 방석 위에 차분히 앉아 수업을 기다리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님과 대화할 때에도 그 공간 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도, 공간을 지날 때 다른 친구와 동선이 겹칠 경우 양보하거나 피해 가는 태도도 무척 흥미로웠다. 학부모님들도 무척 차분한 태도로 아이들이 입고 온 겉옷을 받아주고, 가방 등을 정리해 주시고선 마련해 둔 학부모석으로 이동해 준비해 온 책을 꺼내거나, 휴대폰으로 자신의 일을 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물론, 아이의 곁에 앉아서 모든 걸 다 챙겨주는 학부모도 있었고 아이의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은 학부모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척 조용하고 타인에게 방해를 끼치지 않으며, 나름의 질서들이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또 새로웠다.
Monica선생님의 수업 소개하는 동안에도 다섯 살의 어린 참여자뿐만 아니라, 6-8살의 아이들 또한 조용히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는 모습도 무척 대견하면서도 신기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원데이 워크숍을 진행할 때를 상기해 보면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했던 시작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는 생각이 든다. 경직되고, 긴장된 아이들의 조용함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아이들의 태도는 무척 차분했다.
한국어로 이야기를 하고, 중국어로 다시 순차 통역을 하고 또다시 한국어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수업은 성인들에게도 집중력을 떨어뜨리기 충분하다. 다시 한번, 대만의 침착하고 배려심 높은 아이들을 만난 것에 감사한데 대다수의 아이들이 모든 불편했을 통역의 시간들을 잘 참아냈고 상황을 이해하는 듯했다. 수업의 중간중간, 너무 얌전하고 조용해서 함께 수업을 이끌고 있던 I-chi 작가님께 물어봤더니 이 미술관에 참여 중인 아이들은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고 예의범절에 대한 훈육을 받아온 아이들이라서 더욱 바른 태도를 갖추고 있는 편이라고 답변해 주셨다. 학교가 아닌 미술관이라서 낯선 공간이기도 하고, 외국에서 온 아티스트 앞에서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 공간에 참석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좀 더 태도를 조심해하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만의 아이들을 만난다면 크게 다르지 않은 수업 참여 태도를 볼 수 있을 텐데, 마치 서양권의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하거나, 선생님과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은 어떤 현장에서도 사실 쉽지 않다고 말씀 주셨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I-chi 작가님이 이끄는 상황이 재밌고, 그 이야기 속 즐거운 장면들이 아이들에게 스치기 시작하자 조금씩 몸을 그리고 미소를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나의 목소리를 줄이고, I-Chi 작가님의 설명이 중심이 된 몸 움직임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은 조금씩 크게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만큼은 편하게, 그리고 다양하게 몸을 사용할 순 없었는데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아주 중요한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어떤 아이들일지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엉뚱함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럽다는 것. 나의 행동들을 관찰하는 나의 부모님과 내 옆의 참여자들의 부모님들, 외국에서 온 아티스트와 미술관의 스태프들이 모두 한 곳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자신의 엉뚱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아이는, 아니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며 나의 학습계획안에서의 결점이 드러났다. 3시간이라는 길고 짧은 시간 속에서 아이들에게 라포를 형성하고, 자신의 어떤 소중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까지 연결되기엔 다소 부족한 시간들이었다고. 혹은, 같은 언어를 쓰고 여러 번 예술수업에서 만난 사이라면 가능할 수 있을 프로그램을, 너무나도 턱없이 짧은 시간과 낮은 친분을 갖춘 내가 아이들에게 제안했던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진행과정 속 분절될 수 있었던 지점들은, 즉흥성에 능한 I-Chi 작가님 덕에 잘 넘겨낼 수 있었다. 협업의 순기능, 유연한 상황 대처가 빛났던 순간들이었다.
<수업의 한켠 : Photo provided by the Museum of Contemporary Art, Taipei (MoCA Taipei)>
# 현장에서 마주한 어려움
아이들에게 엉뚱함을 상징하는 폴라로이드사진을 찍어주는 그 활동은 분명 상징성이 있었고,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경험-사진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즉석으로 나온다는 점-이 되었고, 사진 뒷면에는 한국에서 온 엉뚱이 예술가가 사인을 해 준다는 것 또한 기억에 남을 엉뚱이들 사이의 지표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체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카메라가 말썽을 부린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사진을 잘 찍어주다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필름이 나오지 않은 채 카메라 안에서 딱 맞물려 버렸다. 다행히, 몇 번의 버튼 조작으로 다시 카메라는 작동했지만 그때의 그 오싹한 감정은 잊어지지 않는다. 동그란 눈을 뜬 아이들이, 설마 안 되는 걸까요?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의 그, 상실감을 꽤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폴라로이드를 사용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봤는데 이 기계가 8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그런 것인지 필름이 나오지 않은 채 필름케이스 안에서 걸린 채 덜컹거리는 소리만 요란히 냈다. 상징적이고, 의미 있는 매체로서 이 재료가 아이들에게 매력 있지만 비교적 단가가 높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문제점이 될 수밖에 없다.
# 부산과 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정해지는 이야기
작년 가을, 부산을 찾아왔던 예술가 Liao, Chao-Hao님과 MoCA의 담당자였던 Hsin Yi와의 인연도 여전하듯 새로운 인연들과도 깊고 두터운 인연을 지속적으로 맺어 나갈 것이다. 해외교류워크숍을 참여할 때마다 늘, 참여하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프로젝트를 참여하면서 내가 성찰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생각하려 애쓴다.
지난가을에는, Chao-Hao 작가님의 작가관에 매료되어 그와의 온라인 소통을 하는 것이 무척 신났었으며 실제로 부산에서 만나보니 작가의 작업관과 태도가 분명하게 연결되었으며 이를 교육으로 연결하려는 지점에서 내게 질문을 하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면서 나 또한 새로운 지점에서 교육프로그램을 열어내는 것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되며 보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작가님과는 충분히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아쉽게도 없었지만, 대만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온라인 메신저를 통해 자신의 근황과 새로운 그룹전/개인전에 대한 정보를 편히 나눠주는 사이가 되었다. 작가님께 특별한 부탁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 MoCA에서의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가 나오자마자 자신의 개인 페이지에 나의 수업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업로드하고 홍보를 도왔다.
Hsin Yi 또한 이직할 즈음, 자신의 상황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며 내가 대만에서 할 프로그램을 미술관 안에서는 도와줄 수 없지만 모든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으니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돕겠다는 연락을 남겼다. 프로그램의 중국어 제목을 정할 때 큰 도움을 받았고(이후 MoCA와의 협의로 수정되었지만), 가능하다면 자신이 근무하는 THAV로 나를 초청하고 싶어 했고 무척 감사했다. 그녀의 초대로 방문한 THAV에서는 디렉터 “Han"님의 친절한 배려로 공간의 숙박공간을 비롯한 온라인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공간들에 대한 소개를 받을 수 있었고, 레지던시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는 다정한 끝인사로 다음을 기약했다. 해외교류프로그램들을 참여할 때마다 내게는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결을 지닌 동료들이 새롭게 생기며 그들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위한 네트워크를 지속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나도 그리고 그들도 꾸준하고 성실히 노력하는데 그 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호감과 믿음이 짧은 순간이지만 생겨났기 때문이며 그 마음은 결국은 진실함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번 봄, 대만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MoCA와의 모든 공식적인 이야기는 끝났지만 미술관에서 인연을 맺은 여러 동료들 중에서도 Monica 선생님과 Yushun(곽옥선)님과는 지금까지도 일상의 이야기를, 예술교육가로서 나의 활동들에 대한 공유를 지속해서 나누고 있다. 특히, Monica 선생님과는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그중에서 흥미로운 프로젝트는 부산에서 진행하는 미술관 속 어린이 프로그램에 대한 리플릿을 모아서 Monica 선생님과 연말에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미술관에서 함께 하는 동안 여러 이야기들도 주고받았다. 특히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내가 사용하고 있는 수업 매체들과, 그것들을 어떤 프로그램에 왜 쓰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로 나눴는데 무척 흥미롭게 들어주셨으며 피드백을 아끼지 않고 나눠주셨다. 한국과 대만의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미술교과서를 함께 살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Monica 선생님과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의 바다가 보이는 갤러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다음번 부산에서의 만남에서 함께 갈 공간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하고 조카와 함께 여행으로 찾았던 부산의 좋았던 추억들을 내게 나눠주시기도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꽤 편한 사이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이해하는 동료로 함께하는 요즘, 어떤 프로젝트만을 위한 단기간의 교류는 결국은 지속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나의 믿음에 힘을 실어준다. 지난가을에 이어, 이번 봄까지의 대만과의 해외교류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가장 크게 얻은 것은 MoCA에서 나의 프로그램을 실연해 보는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타인을 따뜻하게 배려할 수 있는 마음씨를 가진 소중한 사람들을 나의 동료로 만났고, 그들과 연결된 네트워크를 지속해 나가고 있으며 서로가 다음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