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엉뚱이들을 찾아서
해적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려는 항해자들에게, 위기 상황에 마주했을 때 그 세상을 맞설지 혹은 피할지 잠시 숨을 고르며 생각을 다듬어낼 수 있는 마음을 가진 해적이 되어 바다에 나가길 바랐던 나의 파트너의 유연한 리드로, 우리는 안정호흡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모두 한 뼘 더 성장하는 여름을 보냈다.
나의 사랑스럽던 항해자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전하지 못한 “너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결국 초능력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 옴짝달싹 나의 입술이 내뱉어내고 싶어 안달 난 그 말이 입가에 맴돌고 있었기에 나는 사랑스러운 꼬마 해적들을 다시 만나야만 했다.
“초능력이요? 그건 특별한 사람들이나 갖는 거고요 저는 없어요”.라고 말했던 첫날과 달리, 회차가 진행되면서 슬-슬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눈치다. 그렇게 조금씩 소중한 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항해자들이 늘어났다.
우리 모두 고유한 개성과 특질을 갖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우리의 배에 함께 승선한 서로를 조금 더 다정한 눈빛으로 그리고 태도로 이해하며 함께할 수 있는 해적으로서의 업데이트가 필요할 지금, <엉뚱이 런웨이>의 미션들은 각자의 특질이 곧 나만의 초능력임을 알아차리게 한다.
함께 활동하는 시간들 속에서 서로는 점점 친해지며, 나의 동료가 무엇을 잘하는지 발견하고 따뜻한 온도로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들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서로의 능력을 찾아주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진 항해자들은, 초능력자로의 항로를 유연히 통과하는 항법을 함께 발견해 냈다.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항해자로 성장한 건, 덤.
초능력이라는 말은 무척 신비롭고도 특별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나만의 고유한 기질임을 알아챈 우리는 이를 아끼고 사랑해줘야 할, 살뜰한 보살핌이 필요한 씨앗임을 우리는 알아챈다. 각자의 마음속 씨앗들을 잘 보살펴 무성히, 푸르른 싹들을 틔워내길, 풍성히 자라난 잎들로 드리워내는 그림자 밑에서 가끔은 쉼을 찾는 누군가에게 기꺼이 마음 한켠을 내어낼 넉넉한 마음을 갖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는 모두 초능력자_
출항------ 항해!
<쭈뼛거리고픈 마음과 들썩거리는 몸짓 속 나만의 균형 잡기>
보물섬에 다시 승선한 항해자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공간과 사람들 속에서 자신들의 몸집을 드러낼지 숨겨낼지 고민하느라 여념이 없다. 꼬물꼬물, 손가락만 분주히 움직이며 제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내가 아는 사람이 있나 없나.. 부지런하고 재빠르게 교차하는 시선들이 미묘하다. 반가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퍼지는 미소와, 높아지는 목소리들이 점점 보물섬을 채워낸다.
승선한 항해자들과 안내자들이 같은 공간에 모두 모이자 더욱 바빠지는 생각들은 이내 파열음을 내며, 적극적으로 움직여낼지 점잖게 자리를 지켜낼지 스스로와의 타협점을 찾아내보려느라 여념이 없다. 신나는 음악 소리에 맞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움직임들 속에서 마지못해 엉거주춤 따라 하다 보니 조금은 느슨해진 마음결을 내게 들킨 몇몇의 항해자는, 결국 공간의 대열에 떠밀리듯 합류해선 어느새 신나게 몰입한다.
나만의 균형감을 잡으려 할 때,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등 떠밀기 요법이 꼭 필요한 법.
<능력과 초능력, 그 상관관계>
“너의 초능력을 보여줘!”라고 항해자들에게 물었고, “초능력이 없어요!”라고 누군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무척 곤란한데. 응당 쫘-잔 하며 잘하는 능력들을 누군가 슉! 자랑하면, 다른 아이들도 연이어 자신들의 능력들을 짜-란 하며 보여줘야 하는데. 하지만 이게 바로 실전이며 현실이라는 생각에, 아휴 큰일이다! 이번 시즌 쉽지 않겠구나.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항해를 하며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한다. 초능력은 슈퍼히어로가 만들어낸 그 허구의 캐릭터만 갖는 능력이라 믿는 그대들의 그 생각을 내가 꼭 바꿔주고야 말겠어. 너희의 그 작고 소중한 능력들이 곧 특별한 초능력이란 걸 믿어낼 수 있도록 그리고 능력이 곧 초능력임을, 마지막 항해에선 꼭 알아차릴 수 있게.
<망한 것 같은 수업 설계와 맞서는 나의 자세>
학교에서 만나거나 기관들에서 마주하는 학생들은 정돈된 공간이 주는 단정함 덕분인지 단발에 그치는 활동에 익숙해진 리듬 때문인지, 내가 미리 설계한 수업에 응당 상응하는 반응 또는 나아가 예상하지 못한 멋진 세계로 나를 안내하며 고심해 만들어낸 프로그램에 대한 자부심을 높여내 주는 편이다. 하지만 보물섬에서 만나는 우리의 항해자들은 내겐 매 회차 예측불가능한 반응과 행동들로 때때로는 당혹감과 절망을 맛보게 하며,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나의 유려한 문제해결능력을 뽐낼 수 있는 환경을 동시에 제공한다는 매력을 느꼈다.
망한 수업설계에 맞서내는 나의 담대한 마음은 조금은 뻔뻔해진 태도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진화 중이다. 어물쩡, 괜찮은 척하는 능력을 탑재 중.
<활동 사진을 참여자들과 공유하려는 진짜 이유>
모든 예술교육활동 환경이 담긴 사진을 기록하기란 혼자 진행하는 수업에서는 무척 번거로운 일이라 늘 놓쳐버리고 마는, 내게는 조금은 아쉬운 활동이다. 인터넷에 나의 수업을 보여주기 위해 올리기 위한 사진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수업하는 장면들을 사진으로 기록해 두면 어떤 지점에서 내가 길을 잃었는지 혹은 지름길을 발견했는지 기억을 더듬을 때 좋은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사진으로 수업을 기록할 수 있는 환경이 될 때마다 최대한 모아내며, 참여자들에게 모든 사진이 담긴 공유박스 QR코드를 제공해 모두가 접근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어준다. 다양한 경험들을 체험하는 것은 나를 만나는 학생들이지 부모님들은 아니기 때문에 어떤 활동들을 했었는지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활동 사진과 같은 시각자료들이 무척 유용하다는 걸 어린 시절의 나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어쩌면 나만큼 유별났을지도 모를 유치원 담임선생님 덕에 많은 활동 사진들을 그녀로부터 제공받았고 그 사진 속 상황에 대해 가족들과 조곤고곤 이야기를 나눠냈었다. 나의 여러 활동을 잘 기록해 전달해 준 선생님과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이끌어낸 부모님 덕분에, 나는 꽤 오랫동안 흐릿하지만 유년기의 어떤 기억들을 붙잡고 살았다. 그때 선물 받은 나의 드로잉이 담겨진 아트북(사진첨부)은 시각예술가로 내가 짚는 나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순간을 발견해 내는 집중과 예리한 눈빛을 무한히 보낼 수 있는 건, 예술가 그리고 예술교육가라는 직업이 가진 다정한 힘이라 나는 믿는다. 나를 예술교육가로 만나는 수많은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진심을 다해 응하려는 나의 목소리에는 누군가의 삶을, 생각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고 믿는다.
돌아와서. 예술교육이 기술예술교육과 다른 지점은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갈래로 생각을 해낼 수 있는 지점들이 꽤 많이 존재하며, 각자가 생각해 내는 중요 포인트들이 존재한다. 다인원을 마주해야 하는 예술교육가는 한 명 한 명의 그 소중한 이야기에 쫑긋한 귀를 기울여주다가도 금세 귀를 접은 채 또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신이 난 목소리들은 점점 작아지고 상심한 볼을 스치듯 바라볼 때면 귀엽다가도 미안한 현장 속 나의 마음들.
내게 여러 목소리를 다 들어낼 수 있는 초능력이 있다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