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확진자라니
남의 일인 줄만 알다가, 최근의 확산세를 보고 이젠 정말 누가 걸려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결국 나에게도 코로나가 찾아왔다.
처음 몸이 좀 피곤하다는 느낌, 머리가 무거운 느낌이 있었고 약간의 근육통이 있었다. 요 며칠 야외 촬영 세팅한다고 추위에 물건 나르고 일해서, 아니면 거의 재작년부터 쉬지 못하고 일해서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자꾸 기침이 나고 콧물이 나고… 이것도 감기겠지 여겼다. 어느 날 밤 생전 없던 오한이 들어서 온몸이 덜덜 떨려 이불을 둘둘 감고 잤다. 자가 키트 사다 검사해보니 음성. 마음 푹 놓고 한 이틀을 다니는데 어째 기침과 콧물이 더 심해졌다. 다시금 검사했더니 양성. 선명한 두 줄이 내 머릿속을 몇 초간 정지하게 만들었다.
밤 열두 시였지만 급 지금 작품을 같이 하고 있는 회사 사람들에게 다 알리고 다음날 PCR 검사를 하러 갔다. 아침 9시에 갔는데도 이미 줄이 너무나 길었다. 이젠 걷잡을 수 없는 건가 싶었다.
다음날 오전 온 문자. 검사 결과는 역시나 양성.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니 평소보단 일 연락이 덜 와서 약간은 행복해졌다. 그래도 컴퓨터 작업이 필요하면 연락 오고, 카톡은 쉴 새 없으니까, 그냥 반 재택근무 느낌으로 격리를 시작했다. 시도 때도 오는 연락이야 일상이지만 그래도 강제로 못 나가게 됐으니 오히려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고 할까… 상태가 썩 좋은 건 아니었고 심한 독감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머리가 무거운 느낌, 무기력하고 피곤한 느낌, 약간의 근육통, 기침, 콧물, 가래는 여전했다. 그래도 며칠 후면 촬영 종료라 막 엄청나게 내가 정리할 일은 없으니 조금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안도했다.
재작년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중간에 이직도 있었는데도 쉬지 못했던 내게 쉬라는 뜻인 건가. 생전 감기도 안 걸리던 내가 걸린 걸 보면, 몸도 이제 못 견디겠어서 일부러 쉬려고 걸린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검사 결과 기다리던 하루와, 확진 문자 받고 하루 정도는 증상들이 계속됐다. 그저 일 간간이 하며 삼시세끼 밥 잘 챙겨 먹고 과일에 요거트에 열심히 먹어댔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니 확실히 몸이 좀 괜찮아진 느낌이 들었다. 놀라운 것은 한 이틀 좀 쉬었다고 드디어 근 1년 반 만에 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래서 쓴다.) 몇 달 전 택배로 시켜만 놓고 박스도 뜯지 않은 책이 궁금해졌고, 언제 읽다 말았는지 알 수 없는 [이세린 가이드]를 펼쳐 마저 다 읽었다. 하…. 그렇다. 사람은 휴식을 취해야만 무언가 할 기력이 생기는 것이었다.
요즘 난 일하며 늘 짜증만 내기 일쑤였다. 이직 후 일하는 영역이 넓어졌고 전 직장에선 다른 팀 이 하던 일 세세한 것 하나하나를 관여해서 해야 했다. 물론 이럴 줄 알고 왔다. 전 직장의 낮게 책정되어 있는 임금과 디자이너에 대한 낮은 대우, 그리고 전 직장에서 드라마 인력의 외주화로 인해 우리와 작업하는 양이 줄다 보니 정말 이제는 나가야 하는 걸까 하며 외부시장으로 뛰쳐나온 거라, 고생을 예상하고는 왔지만 화가 났다.
돌이켜보면 체력도 바닥났으니 더욱 화가 났던 것 같다. 전 회사에서 재작년 말 시작해서 작년 여름까지 한 작품 역시 지방 장기 출장에 너무 많은 것들을 정리해야 하고 관여해야 해서 벅차고 힘들었다. 그런데 쉬지도 않고 이직해 넘어와 새로 더욱 신경 쓸 게 많은 작품을 하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나 보다. 그 화가 어쩌면 내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났다는 증거이자 아우성이었을 텐데. 내가 나를 아끼지 못했고 내가 나를 다독이지 못하고 그저 일만 잘 해결하려 했고 밤마다 술로 내 화를 잠재웠다. 내가 다시 이직을 하게 되거든 무조건 한 달 넘게 쉬고 이직하리라.
어찌 됐든 이 격리 7일을 내게 몸과 마음을 챙기라는 휴식 시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혹여나 나중에 몇 주 지났는데 다시 부작용이 생긴다거나, 완치했는데도 무기력증과 피로감이 남아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은 있다. 하지만 확실히 예전 심각할 때에 비하면 독감 정도인 증상으로 많이 강도가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코로나 2년. 코로나라는 게 무섭고 이상하고 불편하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다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무사히 겪어나가기를.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간의 스트레스와 육체적, 정신적 피로,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해 늘 술로 풀어서 망가진 건강을 생각했을 때, 지금이 오히려 더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사람은 주기적으로 쉬어야 한다. 쉬어야 생각하게 되고, 나를 돌보게 되고, 생산적인 일, 발전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격리가 끝난 후에도 술은 줄이고 시간 없단 핑계 대지 말고 운동하고, 건강하게 먹고, 책 한 장이라도 읽고 글 한 줄이라도 쓰는 일상을 가져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