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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다 Feb 27. 2022

[영화가 뭐라고]

언젠가 한 획을 그을 한국영화 스태프 32명과의 대화

[영화가 뭐라고]

                             , 퇴근후작당모의


저 소제목이 이 책의 본질을 다 얘기해주는, 표지부터 영화스럽고 내용물은 영화 그 자체인, 영화 만드는 사람들 인터뷰집이다.

이 책 역시 구매는 해놓고 알라딘 택배박스에서 고이 잠들어 있다가 최근 며칠 쉬고 기력을 찾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영화를 동경한다. 내가 공연예술, 뮤지컬이나 연극을 동경하듯이.

하지만 뮤지컬은 정말 재미있어서 보는 반면, 영화는 글쎄… 동경하는 것 치고 내가 영화를 즐겨본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드라마 미술을 한다. 영화는 프리 프로덕션 및 더 오랜 시간 준비를 거치니까, 후반 작업 역시 공을 들이니까, 섬세하고 미장센이 가득하며 더 완성된 느낌이라는 동경이 나도 모르게 있는 것 같다. 내 일에 대한 비하는 아니다. 그냥 약간 특성이 다르다는 거지. 요즘은 많이 경계가 모호해지긴 했지만. 근데 뭐 꼭 그것보다도 그저 영화가 풍기는 그 분위기, 아우라가 좋다. 드라마보단 괜히 고고한 그 느낌이랄까(이렇게 말하자니 좀 웃기지만), 영화관에 가야만 2시간을 꼼짝없이 앉아서 봐야 하는 그 어쩌면 일방적인 불편한 방식까지도 몰입해서 보게 하는 힘, 혹은 장치가 있는 장르라고 생각된다. 물론 요즘은 다들 집에서 TV나 작은 아이패드 화면으로 보겠지만. 영화는 뭔가 극장에서 봐야 제맛인 그런 느낌이 있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있을 때, ‘나 몰입할 준비 됐어!’ 라고 느낄 때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주 못 보는 걸까.


영화 스텝으로 일한다는 것, 영화 미술 스텝으로 일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다고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에(공연도 마찬가지), 나는 영화 현장에 발도 들여보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잘 하는 사람이라 여겨서 지금 여기까지 왔지만, 따지고 보면 완전 좋아하는 거면 무대로 갔어야 맞다. 나도 평범한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이 온갖 경우의 수, 페이나 안정성을 따져볼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 나는 애초에 영화는 쳐다보지도 않고 안정적일 것 같은 방송국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좀 밖으로 나가 해봐야지 하는 용기와 기운이 생겨 박차고 나왔고 외부 시장에 나와 드라마를 하며 더욱 영화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이라 동경하는 것일까. 누가 들으면 웃을 일이다. 영화나 드라마나 다 똑같지 뭐 그래? 하지만 내겐 다르다. 그래서 영화 관련 책을 많이 충동구매하곤 했다. 영화를 많이 보면 될 걸, 알고 싶으면 영화를 보면 될 걸, 나는 뭘 알기 위해 책을 찾아봐야하는 옛날 사람이니까. 그보다 영화 자체보다도 영화 뒷이야기, 비하인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제작 과정 이런 걸 찾아 읽는 게 더 재밌으니까. 그래서 자꾸 사들였다. 정작 읽은 책은 몇 안되지만 그냥 영화 이론이나 영화인 인터뷰집 같은 걸 사서 쌓아놓으면 괜히 든든해졌다.

말이 길어졌다. 어쨌든 그런 책들 중 하나인 이 책은, 심상치 않은 표지 디자인으로 나를 사로잡았다. 만든 것도 영화 만드는 사람이 왠지 만들었을 것 같다 싶은 예쁜 표지. 홀로그램 제목과 검정 유광 바탕, 우주 느낌이 나는 그래픽, 만든이는 ‘퇴근 후 작당모의’ 라는 수상한 이름. 게다가 원체 인터뷰, 남의 이야기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심지어 동경하는 분야인 영화 관련 인터뷰집이라니,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좀 독특했던 건 ‘언젠가 한 획을 그을’ 스태프들의 인터뷰라는 것. 2년차부터 시작해서 15년차까지, 다양한 분야의 스태프들의 인터뷰였다. 그래서일까, 올해 10년차를 걷고 있는 나는 비슷한 공감을 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아 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기 반성이었다. 새 회사로 옮겨오고 이번 드라마를 하는 내내 나는 불평불만투성이었다. 물론 일은 늘 그렇듯 성실하게 열심히 했고, 좋은 결과물을 보고 뿌듯해하기도 했지만, 외부 시장에 나와 더 넓고 많은 영역을 떠맡았으니 잘 해내야만 한다는 불안감을 화와 불평불만으로 내뱉었던 것 같다. 더 솔직하게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늘 메인을 맡아서 하던 내가 스케쥴과 시기 상 어쩔 수 없이 나와 연차가 비슷한 선배와 같이 한 프로그램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내가 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화가 났던 것 같다. 만약 까마득하게 높은 경력의 선배와 함께였다면 그런 생각이 안들었겠지. 전 직장에서 10년 가까이 성장 과정을 서로 다 지켜본 입장에서, 외부에 더 소규모 회사로 나오게 되면 같이 합칠 수 밖에 없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실제로 맞닥뜨리니 화가 매일매일 났다.

내가 마음에 일말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드라마 촬영이 지속되는 동안 이 책을 조금이라도 펼쳐 읽었더라면 좀 화가 덜 났을 텐데.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저 수많은 영화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겸손과 기운을 얻었을텐데. 드라마 후반에 가까워오면서 그나마 화가 덜 나게 됐지만, 이미 전 직장에서 하던 드라마 준비를 시작하던 2020년 12월경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오면서 늘 화와 불평불만이 가득한 상태로 달려온 나는 만신창이였다. 어쩌면 내가 메인이 아닌 이 작품 이 상황에 화가 났다기보다, 전 작품 때부터, 아니 나는 일을 시작하던 어릴 때부터 그냥 화와 불평을 원동력으로 일을 해왔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인터뷰집이니까, 잘 정제되고 편집된 이야기들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긍정적이었다. 일에 있어 진심이고 열정적인 게 느껴졌다. 나는 역시 나와 같은 파트인 미술 스태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품 스태프의 인터뷰를 재밌게 읽었는데, 미술 파트의 박은초님의 에피소드들이 너무 재밌었다. 나는 진심으로 일하면서 열불이 터지고 답답했던 에피소드들을 얼마전 설에 집에 온 동생에게 열을 올리며 털어놓았더니 ‘언니 미안한데 웃으면 안되는데 너무 웃겨, 시트콤 같아.’ 라고 한 게 생각났다. 어쩌면 우리는 만화같고 우습고 쓸데 없는 일을 진심으로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 아닐까. ‘되게 쓸모없는 일인데 진지하게 하는 일이야, 우리 일이.’ 라고 말씀하시던 전 회사 같은 팀 국장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우리 다 하는 일은 똑같구나 싶다가도 저 영화에서 추구하는 엄청난 디테일, 그걸 열정적으로 즐겁게 해내는 마음을 읽으며 많이 반성했다. 결과물은 같을 지라도,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마음을 속인 게 아닐까. 이건 화가 나는 일이고,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많은 걸 해야하는 지 불만이라는 생각으로 내 즐거움을 가둔 게 아닐까? 솔직히 내 마음 깊은 곳에 일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왜 츤데레처럼 계속 틱틱거리며 내 솔직한 일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지 못하는가. 사실 난 일 중독자이고 일이 즐겁고 하지만 말도 안되게 쉼 없이 흘러가는 일 특성 때문에 그저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사람이 아닐지.


인터뷰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것은, 저렇게 열정적으로 일을 해도, 꼭 이 일로 평생 가겠다는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신기하게 특히 내가 유심히 읽은 미술, 소품 파트 스태프의 인터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했는데, 물론 일이 너무 힘들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열정을 다해 일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었다. 소품 8년 차 윤한나님이 그토록 소품 디테일을 위해 발로 뛴 이야기를 하다가도 어느날 안면인식장애가 와서 미련없이 유럽여행을 떠나갔다 왔다는 얘기를 하는 게… 너무 공감이었고 내게 필요한 이야기였다. 여행을 통해 이 일을 좋아서 하면 그걸로 됐다고 깨닫고 그간 세보이려 실패하지 않으려 애쓰고 마음을 닫고 날을 세웠던 시간들을 버리고 변화할 수 있었다는 얘기가 너무 공감됐다. 지금은 일 틈틈이 차에 우쿨렐레를 싣고 다니며 연주한다는 이야기도. 나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이야기인 것 같다. 그간 전 회사인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나름대로 짬짬이 휴가를 짧게나마 내서 휴식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제대로 못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더욱 그렇게 휴식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역설적으로 그럴 수록 더 휴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내가 살려면, 내가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이제 이놈의 일에 너무 울고 불고 집착하지 말고 일은 일대로 열의를 다해 하되, 인간 나를 좀 돌보며 좀 너그럽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느낀다. 그것은 어쩌면 며칠간의 휴가로 해결 될 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나를 돌아보고 다독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몸과 정신을 건강히 하려는 부단한 노력에서 올 것이다.

그리고 그간 나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촬영, 조명, 연출 파트나 CG, DI 등의 파트도 인터뷰를 읽다보니 다 각자의 고충이 있구나 싶었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간 잘 몰랐구나 싶은.


그리고 인터뷰 말미에 다음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하고, 다음 인터뷰이는  5글자로만 대답하는 페이지를 달아놓은 것도 센스 넘쳤다. 영화 하는 사람들, 그리고  같이 방송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만한 그런 문답인데  시덥지 않으면서도 제한된 5글자 때문에 웃음 터지는 답변들이 많았다.  그걸 보면서 , 영화 한다고 모인 사람들도 나처럼 정말 다른 파트에 대해서 서로  모를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그렇게 릴레이 식으로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으니,  파트별로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서로 연결이 되는 느낌, 마치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책내부에 사진들이나  뒷표지에 엔딩 크레딧처럼 ‘나오는 사람들이라는 말로 인터뷰이 이름을 적어놓은  , 영화를 하나 완성하듯 책을 완성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퇴근후작당모의 도대체 뭐지?  그룹이 만들어낼 다음 책이나 행보가 궁금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나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화내지 말고 불평불만 하지 말아야지. 내 스트레스는 내가 잘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지. 하루하루 일상을 건강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데 집중해야지. 라고 쉬느라 마음의 넓이가 태평양 같이 넓어진 내가 되뇌어 본다. 일을 시작하면 또 도루묵 되겠지만, 그래도, 백번 다짐하고 백번 내딛다 보면, 뭐… 무라도 썰지 않을까. 어디 얕은 언덕이라도 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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