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뭘까?
무용한 것을 하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가 그림을 그리던 최초의 기억은 국민학교 1학년 때다.
(그렇다! 나는 ‘국민학교’를 1년 경험한 세대다. 2학년부터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뀌었다.)
하지만 실은 그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그렸나 보다. 최초의 기억만 저럴 뿐이지, 그냥 어쩐지 어려서부터 쭉 손에 연필을 쥐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그렸던 것만 같다. 엄마가 예전에 보여준 종이조각이 그걸 증명한다. 내가 서너 살 때쯤 그렸다는데, 그림이라기엔 낙서에 가까운 것이 그려져 있었다. 삐뚤빼뚤 빵떡 같은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엄마, 아빠랍시고 그렸다나. 그렇다면 나는 지금껏 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그림 그리며 커 온 셈이다.
거실 한가운데 밥상을 펴고 정물처럼 고요하게 앉아 슥슥 그림을 그리던 어릴 적 모습이 떠오른다. 일고 여덟 살 때쯤이다. 베란다 창으로 햇살이 따사롭게 비추고 평화로운 오후. 학원도, 공부도 없던 시절이었다. 삐딱하게 왼쪽 얼굴을 상 위에 얹고 상체를 엎드리고 기대어 앉아서 그림을 그렸었다. 순수한 행복, 평화의 시간!
미숙아로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진 나는, 선천적으로 왼쪽 시력이 거의 없다. 엄마가 내가 갓난아기 때 왼쪽 눈동자를 모아서 보는 걸 이상하게 여겨 병원에 데려가 알 게 되었다고. 딱히 치료법은 없었고 수술도 크고 나서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오른쪽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그리고 낙서했다. 세일러문을 그리고, 피카츄를 그렸다. 만화 속에 나올 법한 소녀들을 그렸다. ‘짝눈’이어서 불편함은 없었다. 늘 해왔듯 비스듬히 얼굴의 왼쪽을 책상에 얹고서 그림을 그릴 뿐이었다.
그림에 어떤 목적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고3 때부터였다. 입시에 맞춘 형식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 그림이지만 실은 내 그림이 아니었다. 입시를 위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하여 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줄었다. 대학에 가서 수업을 듣다 보니 디자인 과정에서 스케치를 하게 되었다. 당연히 입시 미술과는 달랐고, 내가 어릴 적 그리던 그림과도 또 달랐다. 한 번은 동아리방에 앉아 있다가 무심코 앞에 놓인 종이에 도형을 잔뜩 낙서해놓았다. 내게 한 후배가 말했다. ‘선배 왜 그렇게 도형을 많이 그려요?’ 깜짝 놀랐다. 현실에 적응해버린 것이다. 난 정말 현재에 필요한 그림만 그리게 되었다. 내 것은 다 잊어버리고.
그림 그리기의 마지막 기억은 2012년 경에 멈춰져 있다. 정확히 대학 졸업 후 일을 시작한 시점이다. 일을 하면서 그림을 많이 그릴 줄 알았지만, 디자인을 시작할 때 선 몇 번 그으며 좀 끄적이다 말 뿐이다. 어떤 선배는 손으로 먼저 자세히 그려야 한다고 했다. 과거 선배들은 다 손도면을 그렸다. 하지만 지금은 손도면을 들고 가면 세트팀에서 난감해하며 컴퓨터로 명확하게 정리한 도면을 달라고 부탁한다. 나는 손도면을 그려본 적이 없다. 이제는 손도면을 그리는 분이 거의 없다. 연출부와의 협의는 대부분 3d 이미지로 이루어진다.
그림을 아예 그리지 않게 됐다. 돈이 되지 않으니까. 내 한 몸뚱이를 책임지는 직장인의 삶이다. 하루의 대부분을 돈벌이에 치중하고 나면, 콩알만큼 남는 시간을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한다. 방전된 배터리를 충전해야 한다. 기운을 비축했다가 다음날 또다시 일터로 나가 일해야 한다. 돈과 거리가 먼 것은 우선순위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돈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지금은 잊혀진 사랑처럼 모른척하고 하루하루를 다른 것들로 채워 나가지만, 그림을 그리는 내 모습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운명 같다.
잊고 지내다가 가끔씩 내 왼쪽 눈에 대해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짝눈'인 것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것이 원을 그리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그 원이 올가미인지 보호막인지, 필요하면 붙들 수 있는 튼튼한 밧줄인지는 잘 모르겠다. 오른쪽 눈으로만 세상을 본다는 결핍이 더욱 그림 그리기를 갈망하게 하는 것만 같다. 결핍과 갈망이 서로 벗어나겠다고 반대방향으로 제각기 달린다. 서로가 묶여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달린다. 벗어나지 못하고 빙빙 원을 그린다. 서로를 팽팽하게 당기며 돌아간다.
삶의 아이러니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눈을 혹사시키면 안 되는 내가 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게 태어난 것일까?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냥 그리고 싶어서 그리게 되었다. 운명처럼.
평소엔 내 짝눈을 의식조차 못하지만 가끔씩 자각한다. 외모적으로 상처를 받거나, 정직원이 되던 순간 내가 장애등급을 받아야 하는지 정밀검사를 하러 가서 깨닫는다. 수술을 해야 하나 싶다가도, 내게 주어진 것이 이만큼이어서, 고치려 들다가 눈을 더 못쓰게 될까 봐 두려워지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다. 결국 안과 문턱조차 못 넘고 안경을 쓰고 다니는 내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마다 깨닫는다. 그래, 내 왼쪽 눈은 내가 보듬어야 할 조금 약한 아이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런 내 상태가 운명일지도 모르겠다고. 그저 얘를 잘 데리고 살아야겠다고.
언젠가는 다시 그림을 그릴 날이 올 것 같다.
그간 그림 위에 얹어진 온갖 복잡하고 불편한 의미들을 다 벗어던지고, 저 멀리 한적한 섬이든 작은 내 방 한 칸에 틀어박혀서 그리고 싶다. 아니, 어릴 적 혼자만 그리던, 반 아이들이 둘러싸고 구경하면 더 못 그리고 숨기던 나에서 벗어나, 함께 이야기하고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고 싶다. 비스듬히 앉아 그리며 이야기하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어릴 적 모습과 똑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