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냥 쓰기 (2)

둘째 날

by 강문유

# 이놈의 자격지심은 없어지질 않네.


세는 나이 서른이란 건 꽤 비참할 때도 있다.


서른이 되면 동기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는 걸 보고, 주변 친구들이 20대를 어떻게 보냈는지 티가 나는 게 보이는 시기다.

내가 '자리를 잡아가는' 쪽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야속하게도 난 그쪽이 아니다.


동기 한 명이 인스타그램에 회사 신년회 관련 게시물을 올렸다. 경력 쌓고 이직한다더니 대기업으로 이직 잘했구나. 솔직하게 말하면, 축하보단 배가 아팠다.

'학교 때 나보다 성적도 안 좋았는데, 놀기만 좋아하던 애였는데,...' 생각할수록 나만 못나지는 생각으로 휩싸였다. 동기가 커리어 경력을 쌓으면서 스펙 쌓기를 꾸준히 한 결과를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



# 그동안 난 뭐 했나?


그 동기가 힘들게 경력 쌓고 커리어 관련 스펙을 쌓을 때 난 뭘 했을까?


도전했다.

경험했다.

실패했다.

다시 돌아왔다.


1)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글 쓰는 일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꿈꿔왔으니 꽤 오랜 꿈이다. 글을 쓰기 위해 이 전공을 선택했다. 빨리 돈을 벌어서 글 쓰는 데에 보태고 싶었다. 수단으로 선택한 직업치고는 꽤 좋은, 나라가 운영하는 병원의 정규직 간호사가 되었다. 꾸역꾸역 1년 4개월을 버틴 후 퇴사했다.

그리고 방송 막내 작가가 되었다.


2) 딱히 방송 작가를 꿈꿨던 건 아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기획을 한다니, 이 직업이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교양 프로그램에 가서 일찍 '입봉'하여 대본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예능 막내 작가가 되었다. 글 쓰기는커녕 일반인 전화번호 수배, 조연출 일인 것 같은 sd카드 관리, 밥과 커피 시키기 등의 일을 했다. 월급은 이전 직장의 반토막이 났다. 일하는 시간은 1.5배 늘었다. 갑작스러운 프로그램 폐지를 통보받아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불안했다. '나는 최소한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일을 해야 하는구나.', '월급이란 건 중요하구나.', '수직적인 집단은 맞지 않구나.'등을 느꼈다. 세 번째 프로그램이 끝나고 방송 작가 생활을 마무리했다.


3) 본업에 1년 이상의 공백 기간이 생겼다. 재취업이 힘들 거라 생각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이제 어떻게 커리어를 쌓을지 고민했다. 고민의 시간은 짧았고, 생각보다 빨리 취업에 성공했다. 대학병원의 계약직 자리였다. 갑작스레 백수가 되었으니 생활비가 끊긴 건 당연했고, 청년 적금도 내지 못할 위기에 있던 때라, 빠른 취업의 기회가 온 것을 기뻐했다.


4) 이곳에서 적당히 커리어를 쌓고 퇴사하려고 했지만, 큰 병원이 주는 안정성,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 쏠쏠한 복지 등에 편해져 버린 탓인지 재취업 후 3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이곳의 큰 장점인 워라밸을 살려 여전히 나의 꿈을 연장하고 싶었으나 편한 현실에 안주해 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맞는 결정은 없고, 그냥 내가 하는 결정만 있을 뿐. 결정을 하고 그걸 옳은 결정으로 만들려는 나의 최선이 있을 뿐'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듣게 된 말이다. 동기 부여가 되어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다. 꼭 나에게 필요한 말이라 느껴졌다. 내가 멀쩡한 정규직 직장을 퇴사하여 도전했던 것이, 현재 직장의 워라밸을 보고 다니는 것이, 그동안 내가 소소하게 또는 크게 벌렸던 일들이 사실 옳은 결정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건 나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도 쓴다. 그냥 일단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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