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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Feb 06. 2022

가짜 글쓰기

솔직한 말을 하는 것보다 가짜를 쓰는 게 더 쉬운 사람도 있다.



솔직한 말을 하는 것보다 가짜를 쓰는 게 더 쉬운 사람도 있다.

나는 글쓰기를 그렇게 배웠다.

생각해보면 솔직한 마음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글을 쓸 때도 거짓말을 많이 했다.

좋게 말하면 상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짓말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문예반에 들어가서였다.

그 전까지 글쓰기에 관심이 없었는데 담임선생님이 내게 문예반을 권유했다.

아마 태도가 좋아서 성실하게 글을 쓸 거라는 기대가 있으셨던 것 같다.

자기주장보다 인정욕구가 대단했던 나는 아는 것 없이 문예반에 들어갔다.

원고지에 산문을 쓰는데, 매 주마다 선생님이 주제를 주셨다.

주로 가족이나 친구들과 있었던 경험을 글로 쓰고 마지막에 느낀 점을 서술하면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경험이랄 게 없었다.

가족이 화목한 것도 아니고, 친척들은 무뚝뚝하고, 집에선 티브이로 애니메이션 보고 컴퓨터로 게임한 것 밖에 없으니

남이 쓴 글을 보면서 대충 감을 잡았다.


그리고 마치 내가 겪었던 것 마냥 지어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 이렇게 글을 쓰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해 문예반 애들은 매주 글을 한 편씩 써내는데 그게 다 자기 경험일 리는 없으니까.

글을 지어내는 건 쉬웠다. 상상하면서 이런 일이 있으면 참 행복하겠다 싶은 것들.

대회에서 상을 받아 교내 신문에 내 글이 실렸고, 엄마와 이모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모가 "우리 엄마(외할머니)가 이런 말을 했던가?" 하고 말했던 것 같은데 다들 그냥 잘했다고 칭찬만 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글을 못 쓰는 편은 아니다. 어딜 가든 독후감이나 자기소개서 같은 글은 써야하니까.

거짓말을 지어내는 일이나 사실을 부풀리고 포장하는 일은 잘하는 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근데 살다보니 남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을 길만 찾느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방황하게 됐다.

뭘 원하는 지, 지금 어떤 마음인지. 발견하기 어려워서 상담도 오래 받았다.

나는 생각보다 솔직했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내가 초라한 사람이면 어떡하지? 이런 날 보고 다른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나는 생각보다 정의롭지 못하고, 모순적이고, 잘나지 않았다는 걸 받아들여야겠다고 깨달았을 때

내가 뭘 원하는 지, 나에게 솔직해지고 싶어서 선택한 게 글쓰기였다.

모순적이게도 거짓말로 키운 글쓰기가 지금은 내가 솔직해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솔직한 글쓰기는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도 행복하다.

포장된 이야기로 칭찬 받을 때보다 후련하다.


앞으로는 기회가 되는 대로 흐릿한 나의 어린시절을 다시금 적어보려고 한다.

과거를 진짜 내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엔 행복한 추억보다 아프고 슬픈 기억이 많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산문 주제로 쓸만한 경험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의 나는 찾지 못 했지만 무럭무럭 자란 어른이 된 나는 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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