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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Jan 22. 2022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품고 간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사람들이 품고 간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제주 4·3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유명한 작가의 신작이고, 출판사에서도 홍보를 많이 해서, 나는 책의 이름을 외우기도 전에 이 책이 제주 4·3 사건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있었던 일이다. 반백년이 넘게 지난 사건이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 줄을 차지 하고 있는 끔찍한 학살에 대해 나는 깊은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눈이 내리는 제주도를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제주도라곤 수학여행 때 한 번, 가족여행으로 한 번 다녀온 게 전부인 나는 제주도에 눈이 그렇게 많이 내리는 줄 몰랐다. 해마다 태풍으로 몸살을 앓고,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고, 어딜 가든 귤을 먹을 수 있다는 것 정도가 내가 가진 제주도의 인상이었다. 하지만 책 속의 제주도에는 매일 눈이 내린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눈이 가득 쌓인 도로를 헤집고 다니는 제주의 버스를 처음 떠올렸다. 나는 정말 제주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제주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수년간 민간인을 대상으로 발생했던 학살 속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가족들이 있고, 가족들의 후손이 있다. 그리고 몇몇 후손은 제주를 떠나 살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제주 바깥에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 중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


경하는 인선을 오래 알고 지냈다. 인선이 제주에서 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 경하는 인선의 어떤 점을 무척 사랑하고, 사랑하는 만큼 인선의 일상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 치매 증상이 심해진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인선이 제주로 떠나고, 인선은 조용히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경하와 별다른 연락 없이 지낸다. 경하는 경하대로 고통 속에서 살다가 인선의 연락을 받고 제주로 가게 되는데, 그날은 눈이 무척 많이 왔다.


인선은 무척 고통스러운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인선은 집에 두고 온 앵무새 한 마리가 무척 걱정이 되어 경하에게 앵무새를 살펴달라는 부탁을 전한다. 경하는 인선의 집으로 알음알음 기억을 더듬어 가며 찾아가지만 인선의 앵무새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인선에게 전화를 해보아도, 간병인의 급박한 목소리를 끝으로 인선의 안부를 들을 수 없고, 바깥은 성긴 눈발로, 안은 정전으로 캄캄한 상태였다. 경하는 생을 마감한 앵무새를 박스에 담고 흙 속에 묻는다.


살아있는 것들이 죽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죽은 것들이 살아나는 건 이야기에서만 가능하다. 애증 어린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인선은 그의 생을 되돌아보았다.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로서 평생에 걸쳐 기록했던 증거들이 쌓여있다. 인선은 그제야 어머니라는 사람을 조금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경하는 어쩌면 생명이 끊겼을지 모를 인선의 이야기를 듣는다. 분명 직접 손으로 묻었던 그 앵무새가 살아 날아다니는 인선의 집에서.


경하로서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죽은 줄 알았던 인선의 앵무새가 살아있고, 병원에 있을 인선이 멀쩡하게 집안을 돌아다닌다. 인선이 전해주는 인선의 어머니와, 인선의 어머니의 가족들과, 인선에 대한 이야기는 경하가 제주도의 눈 속에 갇혔을 때, 차가운 집 속에 고립되었을 때, 어쩌면 자기도 한 번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전까지 경하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글을 작업하느라 제주 4·3 사건에 대한 자료를 그저 넘기곤 했다.


나는 경하가 꿈같은 일이 일어난 곳에서 인선의 이야기를 잠자코 전부 들을 수 있었던 건, 인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선 또한 이해할 수 없고 자신을 괴롭게 만든 어머니일지라도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토록 신중하게 그의 발자취를 따랐을 것이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을 품고 살아왔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까?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는 동안, 평등한 눈높이에서 그 답을 찾으려는 작가의 애씀이 느껴졌다. 우리는 내가 죽을 만큼 아프고 고통스러울 정도는 되어야, 고통이 너무 커서 조용히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고, 그 죽었던 사람이 돌아올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일 정도는 벌어져야 그 사람의 아픔을 그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트라우마에 대해 나는 죽을 때까지 다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렇게 쉽게 이해를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이해받지 못하고 남겨진 사람들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작가만의 방식으로 이 글을 썼다. 어떻게든 언어로 만들었다. 나는 그 부분에서 울컥했다.


이 이야기를 정말 좋아하게 된 이유는 마지막 부분에 있다. 새하얀 눈밭에서 눈을 감고 있는 인선 옆에서 경하는 인선이 잠들지 않기를 바란다.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글을 읽는 동안 나 또한 간절히 바랐다. 경하는 손에 든 초에 불을 붙이려고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 때문인지 불은 쉽게 붙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일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곤 했으니까 당연히 인선도 사라지지 않을까 읽으면서 조마조마했다. 경하가 추위 속에서 고통받는 동안 우리도 고통스러웠고,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의 삶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경하가 사랑하는 인선을, 인선이 사랑했던 인선의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경하는 마지막 성냥의 불을 붙인다. 이야기는 활활 타오르면서 끝이 났다.


나는 결국 그들이 살아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처럼 이로써 모든 기억들과 작별하지 않고, 생명과 작별하지 않고 생명의 불꽃을 계속 피우면서 살아갔을 것 같다. 이건 내 바람일 뿐이고, 작가가 특정한 결말을 결정짓지 않았더라도, 마지막 눈발 위에서 피어난 불꽃은 글을 읽는 우리의 마음속에서도 똑같이 피어났으니 우리가 이 책과 작별하지 않는 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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