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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오 May 12. 2023

감사일기, 감사를 위한 작은 여정

감사일기를 쓰고부터 4년, 무엇이 변했을까



나는 2019년 처음 감사일기를 접했다.

당시 나는 대학을 다니며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치열하게 탐구할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고 어느 누구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이도 물음을 구할 곳도 없어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람이 무력감을 마주하면 극심한 우울을 경험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우울은 늪지대와 같아서 한 번 빠져들면 점점 더 강하게 그것을 빨아들인다. 이전보다 더 강한 힘을 주면 더 강한 힘으로 가라앉게 만들고 결국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본디 내향적이지만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무력감에 낙담할 순 없었다. 이상하게 버겁고 인생이 힘들어지는 순간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책과 영상을 찾았고 방법 중 하나로 감사일기를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2019년 감사일기를 처음 쓰기 시작하고 그만두었다가 '감사'라는 감정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감사일기를 쓰게 된 4년 간의 변화를 기록하고자 작성한 글이다.


요즘 감사일기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는다. 저마다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얼마 전 유퀴즈에는 김우빈 배우가 출연해 꾸준히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는 이야길 전했다.

사람들은 이제 더 많은 것을 꿈꾸고 욕심내기보다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소중한 것들에 대한 성찰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전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전염병을 겪었고,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으며,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걸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여러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찾을 수 있는 행복은 무엇일까. 그런 고민의 결과가 감사일기라고 생각한다.

감사일기는 간단하다. 그냥 감사한 것들을 쓰면 된다. 일기니까 오늘 하루 감사했던 일들을 쓰면 된다.


그래서 감사일기를 쓰면 대체 뭐가 좋다는 것일까?

감사일기는 정신건강적으로도 좋고,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도 좋고, 영혼의 성숙함을 일깨우는 데에도 좋다. 많은 전문가들이 여러 방면으로 긍정적인 면들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매일 감사한 일 3가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하나도 감사하지 않는데 이걸 하면 뭔가 좋아진다니까 꾸역꾸역 감사한 일들을 찾아 썼다. 앞을 볼 수 있어 감사하고, 튼튼한 두 다리로 걸어 다닐 수 있어 감사하고, 더운 여름 에어컨 바람을 쐴 수 있어 감사하다고 썼다. 정말 없는 것보단 있어서 정말 감사한 것들이긴 했는데, 감사일기를 쓰는 1년 반 남짓 동안 나는 '감사'의 느낌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왜냐하면 감사하기엔 내게 너무 힘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1000의 데미지를 입어가는 상황에서 내가 써 내려간 감사한 일들은 +50이나 +100 정도의 회복을 도와주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1년 반 동안 감사일기를 쓸 수 있었던 이유는 감사일기가 마법처럼 내 인생을 풀어주기를, 내게 어떤 정신적 성장을 안겨주기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좋은 일은커녕 점점 더 힘들어져서 언제부턴가 감사일기의 존재는 잊게 되었다.

아마 당시 나와 같은 심정으로 감사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일기가 안 맞는 사람도 있다는 뜻인가? 싶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변화는 2021년 찾아오기 시작했다.


감사일기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던 어느 날, 나는 극심한 우울로 정신건강의 밑바닥을 찍다가, 심리상담도 받고 명상도 하고 요가도 하고 산책도 하고 독서도 하며 나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성실한 한국인들이 그렇듯, 나 역시 나를 돌보는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자라서, 성취를 위해 내 몸을 혹사시켰다. 그러다 2021년 여름, 극심한 고열로 입원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 며칠 동안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엠뷸런스를 타게 되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아프게 되었는지 분명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챙겨가며 산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의식이 들었을 때 나는 대학병원의 응급실이었고, 간수치가 500 가까이 올라 있었으며, 보름이 넘는 시간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때 안도감과 감사함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공존하는 감정임을 깨달았다. 고열로 인해 뇌가 손상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나의 뇌는 멀쩡했다. 간수치가 오랫동안 내려가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 나의 간은 하루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입맛이 없고 잠을 못 잘 수도 있었는데 나는 밥도 잘 먹었고 잠도 잘 잤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은 매일매일 나의 건강을 살피고 입원실에서 나와 함께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병원에서 많이 웃을 수 있었다. 그때 그 안도감. 그리고 내가 더 나빠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감사함.

분명 좌절과 슬픔이 존재했으나 나는 그저 살아있어서, 퇴원 후에 일상생활을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정말로 큰 감사함을 느꼈다. 앞이 보여 감사하고, 내 다리가 온전해서 감사하고, 더운 여름 에어컨이 나오는 병실에 누워있어 감사했다.


내가 너무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향유해야 한다 생각하는 것들을 하루아침에 감사하다고 하기 껄끄럽겠지만 그것은 그 요소들이 감사할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다. 우리는 왜 꼭 잃고 나서야 그것들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함을 알까? 잃기 전에 먼저 현명하게 감사할 수는 없는 걸까? 하루종일 누워 병원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다 아프고 나서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된 걸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난 원래 그냥 위기에 강한 사람이었던 것뿐일까?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 시기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억지로 쓴 감사일기와 명상과 요가, 심리상담 등등 덕분이었다. 몸이 어느 날 갑자기 아픈 게 아니고, 나의 생활습관과 정서상태로 인해 건강이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던 것처럼, 반대로 나의 감사일기는 허공에 삽질을 하고 있던 게 아니었고, 매일매일 내 마음에 근육을 만들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삶이 흔들리는 위기가 왔을 때 그는 나를 튼튼하게 받쳐주었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매사에 순순히 감사하고 사는 게 쉽지 않았다. 퇴원하고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는 와중에도 몇 번씩 억울하고 속상해 밤마다 눈물을 훔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 감사함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했다. 명상을 하며 감사함을 경험하고 나면 마음이 개운하고 힘이 생겼다. 그건 내가 그간 살면서 잘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매일 무언가를 '받고 있다'는 감각과 같았다. 지금까지 내가 받아서 기쁜 건 다 내가 노력한 결과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난 노력하지 않아도 받고 있는 게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감사함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살면서 잘 느껴볼 일이 없다. 타인과의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한국사회에서 '감사'는 '안주'와 '도태'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일기를 쓰고, 무언가에 감사해하는 순간이 내가 이러다 영원히 모자란 상태에 멈춰버릴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영원히 도태된 채 살고 있는지 묻는다면, 아니다. 나는 전문상담교사를 준비하기 위해 교육대학원도 다니고 있고, 지금처럼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도 쓰고 있다. 최근엔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 위해 악기도 배우고 있고, 꾸준한 요가를 통해 몸도 많이 좋아졌다. 분명 아프기 이전과는 다른 계획을 세웠고 인생은 다른 방향대로 가고 있지만 오히려 감사함을 일상 속에서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좀 더 긍정적으로 사건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더 새로운 꿈을 꾸게 되었고 그 꿈에 대한 여유로운 확신을 갖게 되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게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 억지로 쓰기 시작한 감사일기가 감사함이라는 감정의 깨달음으로 연결되었고 매일 잠들기 전 진심으로 감사한 것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매일 SNS를 들여다보는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인정욕구를 매일 같이 느낀다. 때론 타인의 질타와 비하에 큰 상처를 받고 괴로워한다. 하지만 다수의 인정을 받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지구를 살아가는 인류의 절대적인 목표는 아니다. 그건 21세기에 떠오른 세상을 바라보는 수많은 프레임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 우리의 뇌는 '감사함'의 감정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오히려 반긴다. 인간은 투쟁과 경쟁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감사함과 사랑을 느끼기 위해 살아간다고 말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사하다 보면 나를 타인과의 비교 선상에서 떼어내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고 사랑해 주는 마음이 따라온다. 그 두 가지는 늘 함께한다. 그러다 보면 오늘 하루 내 할 일을 하려고 애쓰는 내게 감사하고, 내 몸에 감사하고, 내게 협조해 주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종종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하늘과 꽃과 강아지와 핸드폰에게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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