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고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었다. 한참 인터넷에서 ‘소설가들이 추천하는 소설’이라며 눈에 많이 띄었던 미국 문학이었다. 내로라하는 소설가들도 『스토너』를 입 모아 추천했다고 하니, 대체 어떤 소설일지 궁금한 마음이 앞섰다.
존재를 잠깐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동생이 교환 독서를 하자고 했다. 나는 황정은 작가의 책을 읽었고, 동생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읽었다. 우리는 각자의 책에 메모를 남긴 뒤 바꾸어 다시 읽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복잡한 서술 없이 단정한 단어와 문장들로 구성된 소설이었다. 작가도 이 문장처럼 군더더기를 좋아하지 않는, 소탈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스토너도 이 소설의 문장과 비슷했다. 농가에서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며 사는, 커다란 꿈도 욕심도 없는 사람이었다.
스토너의 인생은 우연히 진학한 대학에서 영문학을 만나고부터 마치 순풍을 기다리던 돛단배처럼 넓은 대양을 향해 나아갔다. 항구에 고요히 정박해 있는 게 삶의 전부라고 여겼던 그는 영문학을 배우고, 대학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험난한 세계대전 속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진 대학을 겪어내며 어쩌면 부모를 이어 농부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자신의 과거와 빠르게 멀어졌다.
이 책은 아주 대단한 서사도 기막힌 반전도 없다. 소설은 지극히 스토너 한 명만을 따라가며,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작가가 독자에게 알려주는 건 스토너가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거쳐 가는 삶의 일반적인 과업들. 대학 교수라는 직업을 얻고, 어떤 여성을 사랑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자녀를 두고, 대학 내의 정치질에 휘말리고, 불륜을 저지르고, 자녀가 자라고, 점차 늙어가는 과정을 다룬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많은 이들의 극찬과 감동을 얻은 이유가 무엇일까. 나 역시, 어쩌면 클리셰로 가득 차서 스토리가 뻔하게 느껴질 이 소설책, 중간에 하차하지 못하고 깊게 몰입까지 해가며 읽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스토너는 스스로도 자기 성찰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영혼의 목소리를 모른 척하는 인물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이 진짜로 사랑하는 것, 진짜로 열망하는 것을 모른 척할 수 없는 영혼이었고, 그래서 때로 미숙함으로 인해 누군가를 상처 입히지만, 아프게 한 사실조차 외면할 수 없어 함께 삶으로 버틴 영혼이었다.
스토너가 단순히 쾌락이나 욕구, 자신의 결핍에 매달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이렇게까지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토너가 만들어내는 삶은 분명 서툴고, 어떤 부분에선 지혜롭지 못하고, 마냥 고집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도망치지 않고 삶을 이어갔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만나고, 그것들이 가르쳐주는 아픔을 배우면서. 그게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존 윌리엄스의 아름다운 문장에 담긴, 스토너가 삶 속에서 느낀 순간순간의 경이로움을 나도 같이 느꼈다. 때로는 내가 살아가면서 가볍게 지나친 감동들이 작가의 손을 거치면 이렇게 읽힐 수 있겠구나. 감탄하기도 했다.
마지막 챕터에 신형철 평론가가 남긴 말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서술형 수학 문제를 풀 듯이 인생을 살아나간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부분 정답을 맞아가면서. 그런데 스토너는 희귀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다가 정답까지 맞혀 버린 인생이었다며.
그는 알았을까? 자신이 죽음 앞에서 느낀 그 일련의 감상들이 삶의 정수에 가까웠다는 것을? 아마 몰랐을 것이다. 그는 정답을 살아내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영혼은 그저 늘 최선을 다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채로, 보이지 않는 게 너무 많은 채로 살아야 했지만, 영혼은 자신이 아는 만큼, 바라는 만큼 살았다.
AI가 모든 걸 알려주는 2026년에도 삶은 여전히 어려운 서술형 문제다. 내 인생에 정답이 뭔지 모르겠지만, 정답을 아는 것 같아 보이는 사람이 너무 많아 보인다. 그리고 정답을 틀리면 내 존재 전체가 부정당할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그래서 무언가를 자꾸 더 찾고, 더 해내려고 했다.
새해계획을 세우다 머리가 복잡 복잡했던 1월.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삶에서 놓지 않고 살았던 스토너를 만나서, 나는 내 영혼이 삶을 즐기고 싶어 했던 것만큼 느끼고 살고 있나. 되돌아보았다. 남은 11개월은 잘하려고 하기보다 마음껏 좋아하고, 잘 보이려고 하기보다 순수하게 사랑하고, 미워하기보다 보내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