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4: 완벽한 나날은 없다
어느 날, 루나는 끝없는 들판을 지나는 중이었다. 들판은 황량하고 고요했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 구름이 피어오르곤 했다. 그러다 한 무리의 사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루나가 다가가자, 사슴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올해도 사정이 좋지 않아. 먹을 풀도 없고, 나무들도 점점 마르고 있어.”
루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슴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언제쯤 상황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니?”
사슴 무리 중 가장 나이든 사슴이 나서서 대답했다.
“글쎄, 언제나 그런 말을 듣고 살아왔어. 내가 어릴 적에도, 내 부모님 세대에도, 모두가 똑같이 말했지. ‘지금은 힘든 시기야. 올해는 특히 어려워.’”
루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면 도대체 언제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 거지?”
사슴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중 젊은 사슴이 나서서 말을 이었다.
“정말 좋았던 시절이 있었던 걸까? 어쩌면 우리는 매년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일지도 몰라. 올해가 나쁘다고 하면서도, 결국 우리는 매년 살아가고 있잖아. 하지만 계속해서 어려운 시기라고 말해왔지.”
루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질문했다.
“그렇다면 이 ‘나쁜 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우리가 끝없이 듣고, 믿어왔지만 실상은 똑같은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사슴 중 한 마리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언제나 올해가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사실 두려움과 불안 때문일지도 몰라. 매해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뭔가 조심하고 준비할 수 있을 거라 믿는 거야.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그거였어. 매번 조금씩 나쁜 것도 아니고, 매번 엄청 좋았던 것도 아니지.”
루나는 그들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길을 나섰다. 들판을 지나갈 때마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들이 한 말을 떠올렸다. '올해는 특히 안 좋다'는 말을 평생 동안 들으면서도, 정작 그들은 그 속에서 늘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말을 믿고 더 나쁜 일이 일어날까 걱정하면서도, 결국 그들은 매번 그 해를 버텨내고 있었다.
세상이 항상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 변화는 항상 눈에 띄게 좋거나 나쁘지 않았다. 그저 일상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두려워하고, 기대하며 만들어내는 무형의 시간이 흐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