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4: 가파른 산 위에 소원을 막는 사원
루나가 눈을 뜬 곳은 별빛이 쏟아져 내리는 산이었다. 아름답게 수놓은 은하수에서 튀어나온 별똥별이 다채로움을 더했다. 약간 서늘한 바람이 온몸의 감각을 일깨운다. 약간 살을 애리는 바람에 루나 역시 훗훗해지고 감각적으로 바람을 느낀다. 서늘함이 별을 더욱 빛나 보이게 만든다. 그곳에 위치한 사찰에선 사람들이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고 있다.
"무슨 소원을 빌고 있나요?"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길 바란다고 소원을 빌고 있어."
루나는 놀라 물었다.
"왜 소원을 이뤄지지 못하게 비는 건가요?"
사람들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이 와서 말한다.
"우리는 사람들의 소망을 들으며 커왔지. 어떤 이들은 권력을 탐하며 누군가를 몰락시키기를 원했고, 또 다른 이들은 무한한 부를 소유하기를 꿈꿨다. 심지어 누군가는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의 불행을 바라기도 했다. 또, 소원 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소원도 가득해. 모든 이들의 소원이 이뤄진다면 결국 남는 건 혼돈만 남을 뿐이야. 우리가 비는 소원은 세상의 혼돈을 막기 위한 것이란다. 사람들의 욕망이 끝없이 커지고, 그로 인해 세상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마을은 하나의 소원을 빌어야만 한다."
루나는 말했다.
"하지만 정말 간절한 사람들도 있는걸요. 가족이 안전하길 바라거나, 아픈 게 낫길 바라고, 세상이 좀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소원도 있잖아요!"
노인 옆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런 소원도 헛된 이기심일 뿐이지.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욕망이 세상을 망치는 것을 막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사사로운 소원을 다 들어줄 순 없어. 가족이 안전하길 바라는 욕심도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피해가 갈 수 있고, 아픈 게 나으니 최악의 독재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알 수 없지 않아? 애초에 불가능한 소원으로 보이는데, 우리가 상상하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사람들이 약에 취한 모습이거나, 아무도 남지 않는 세상일 수도 있지. 그런 가능성을 방지하고자 하는 거야.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게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야."
루나는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는 언제나 사람들이 자신만을 위한 소원, 혹은 누군가를 망하게 하는 소원을 빌고 있었다. 사랑을 바라는 소원도 가끔 있었지만, 그것조차도 결국엔 자신만의 욕심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별똥별이 쏟아지는 밤이 찾아왔다. 산 아래 마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별똥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저 사람에게 벌이 내려주길." "나에게 무한한 부와 권력을." "그가 불행에 빠지기를." 온갖 탐욕과 악의가 깃든 소원들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를 지켜보던 루나는 이기적인 욕망이 빚어낼 혼란을 상상하며 두려움을 느꼈다.
결국 루나는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발, 이 소원들이 이루어지지 않게 해 주세요." 그녀의 소원은 그녀가 사찰에서 들은 것과 같은, 그러나 자신의 진심을 담은 것이었다. 그 순간, 별똥별이 그녀의 소원과 함께 흩어졌다.
그날 이후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을 위한, 혹은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소원들을 빌었지만, 그 소원들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루나는 사찰에서 정의를 지키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