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異世界) 적응기
본가에 있을 때, ‘서울병’에 걸렸다. 아무것도 없는 촌구석에서 시간을 보내니 너무나 답답하고 떠나고 싶었다. 정말 논밭 투성이 시골은 아니지만, 막상 일거리도 없고, 볼 것도 없고, 할 것도 없는 도시에 지루함을 느꼈다. 태어나서 대학까지 한 도시에서 생활했지만, 여행은 많이 갔었다. 결정적으로 환상을 좇아 간 에버랜드에서 내가 사는 도시가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 알았고, 기회가 있는 넓고 다채로운 도시로 떠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돈도 없고 부모님에게서 떨어지는 것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꿈이란 미명으로 돈을 모아서 결국 서울로 왔다. 과정은 복잡했지만, 세상에 도전하고 싶고 새로운 경험을 위해 서울로 가고 싶었다. 설사 실패하더라도 젊고, 내 돈을 사용하니 괜찮지 않냐는 식으로 설명했다. 어른들의 끊임없는 걱정과 친구들의 응원을 안고 자취방을 구했다. 자취생들이 가장 많은 관악구에 집을 구했고, 발품을 팔며 평균 시세보다 보증금과 월세가 저렴한 곳을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에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서울에 오니 다른 ‘서울병’에 걸렸다.
분명히 사람들과 같은 말을 쓰지만 경상도 사투리가 심한 나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재미교포가 어색하게 한국어를 배워 말하는 느낌이었다. 사람들도 내가 말하는 걸 보면 재중교포가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성조가 있고 강하게 말하니까. 어디든 길을 헤맨 적은 없었는데, 넓은 도시와 처음 보는 커다란 빌딩들 사이를 걸으니 방향감각이 사라져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헤맸고, 없는 데이터를 억지로 쥐어짜며 지도에 의지했다. 또, 곳곳에 수없이 사람과 가게들이 있었으며 조금만 걸어가도 사람들이 밀집한 장소가 나와 정말로 새로운 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문화도 달랐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당연히 해야 하지만, 우리 지역 원룸에선 주먹구구로 봉투에 담아서 버리기만 하면 됐고, 자전거 주차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백화점도 처음 봐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입장해도 되는지, 자전거 도로를 처음 봐 신호를 무시하고 가도 되는지 궁금했다. 그야 짧은 거리는 보통 암묵적으로 차 없을 때 건너지만 서울 사람들도 과연 그럴지 몰랐으니까. 눈치를 보아하니 건널 사람은 건너고,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서 아직 헷갈린다.
전입신고, 수도 전기 가스 명의 이전, 일자리 구하기 등 분명 해봐서 아는 것들인데 서울에서 하려니 FM으로 진행되는 것이 많았고, 광고로만 보던 유명 브랜드들이 길거리에 즐비했다. 익숙함 속에서 보이는 낯섦.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異世界) 장르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말은 통하고 서로 이해는 되지만 조금씩 다른 사회문화에서 느껴지는 불편감. 1기 서울병이 ‘서울에 대한 환상’이었다면 2기 서울병은 ‘서울에서 느끼는 불편감’ 일 것이다.
서울에서의 첫날, 자취방에 들어섰을 때의 설렘과 불안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은 방이지만 나만의 공간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밀려왔다. 길을 헤매며 느꼈던 불안감, 새로운 사람들과의 어색한 대화,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도시의 풍경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상하게 다음 날이 되자마자 많이 호전됐지만 완전히 나은 건 아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자 한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아직 낯설고 불편한 것들이 많지만, 이것저것 해보면서 병을 치료할 생각이다. 앞으로 서울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계획도 세워놨지만, 시끄럽게 떠드는 건 부끄러워서 구태여 쓰진 않겠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서울의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 이 모든 경험들이 나를 더 성장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