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녀 할망과 노을 그리고 돌고래
제주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는 장소가 대정읍 신도리에서 일과리까지의 노을 해안이다. 수족관에 여유 있게 자태를 뽐내는 돌고래가 아닌 바다에서 떼 지어 쏟아 오르는 돌고래를 보고 싶었다.
신도리 해안도로에는 파아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파도가 바위에 철썩철썩 부딪쳐 쉼 없이 하얀 물보라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해안도로 주변에 CU편의점이 나온다. 돌고래를 잘 볼 수 있는 곳이라는 광고도 있다. 무작정 들어가서 아이스크림 한 개를 사서 주인에게 돌고래를 정말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오후 서너 시가 되면 돌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편의점을 지나쳐 돌고래가 솟구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 계속 나아갔다. 아침에 여유를 부리고 늦게 출발했더니 벌써 배가 고파진다. 주변 맛집으로 '도구리3083' 브런치 카페에 들어갔다. 사장님도 카페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돈가스를 주문하고 돌고래를 볼 수 있는 핫플레이스도 추천받았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니 '우영우 돌고래 촬영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정말 재미있게 보았던 드라마 우영우에서 돌고래가 나온다. 여기서 촬영한 모양이다.
'이곳에서 돌고래를 관찰할까?' 생각하다가 수월봉이 보이는 해안도로 끝이어서 유턴하여 신도 2리 해안도로에서 관찰하기로 작정했다.
신도 2리 마을에 도착하니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있다. 정자에서 돌고래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정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먼저 인사를 건네며 말을 했다.
"할머니, 이곳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나요?"
"응. 서너 시쯤이면 돌고래 떼가 무리 지어 휘익 나타나기도 해. 그때까지 기다리게?"
철이 없다는 듯이 나를 보고 웃으며 묻는다.
"아줌마는 어디서 왔어?"
제주 할망과 대화는 이어지고 평생 물질로 자식들을 가르친 해녀의 삶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해녀였고, 지금은 9월이라 물질을 않지만, 10월 1일부터 시작한다. 그런데 내일은 어촌계장이 아침에 나와 소라를 잡는다고 했으니 12시경 오면 소라를 살 수 있다고 한다. 소라 1kg에 7-8마리가 올라가고 가격은 6-7천 원 정도이다. 요즘은 소라도 안 잡히고 전복, 해삼도 안 잡힌다. 이 동네 사람 대부분 바다 일보다는 밭일을 주로 하고 산다고 푸념을 한다.
삼 형제를 두었는데 첫째 아들은 서울에서 대학 나와 서울에 살고, 둘째, 셋째는 제주시에 사는데, 서귀포에는 시골이라 잘 내려오지 않는다. 곧 추석인데도 아들이 내려오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 명절에는 가끔은 서귀포까지 아들네로 가기도 하는데 올 추석에는 혼자 지내야 한다.
"할머니, 몇 시쯤 해가 질까요?"
"이따 저녁 6시 넘으면 해가 떨어질튼디, 그때까지 있을랑가?"
4시간이나 남았는데 여기서 해 넘어가는 것을 기다릴 거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놀란다.
"여기서는 날마다 해가 바닷속에 떨어져. 글구 붉게 물들지도 않고 구름 속으로 그냥 떨어지는데, 뭐 볼 게 있겠어."라며 혀를 끌끌 찬다. 매일 해가 넘어가는 바닷가 마을에서 사는 할머니는 노을을 보고 싶어 하는 육지에서 온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참을 지나 할머니가 먼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셨다. 혼자 남아서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바닷바람은 습하고 너무 세차서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흩날리게 했다. 앉은자리에 햇볕이 들어오면 그늘진 자리로 옮겨가면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하염없이 온몸을 맡겼다.
두어 시간 넘게 바닷바람을 맞았더니 따갑기도 하고 실내에서 쉬고 싶었다. 근처에 한옥 카페인 '미쁜제과'가 있다. 정자에서 철수하여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카페 창가 자리에서도 돌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돌고래를 카페 안에서도 여유 있게 보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감귤주스로 더위를 식혔다.
카페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노을을 보려고 해안도로로 나섰다. 처음에 할머니를 만났던 신도리 정자로 갔다. 아직은 햇볕은 작열하여 쉽사리 바다로 떨어질 것 같지 않다. 6시 20분쯤 되자 바다 주변이 노랗게 물들었다.
'이대로 해가 진다면 노을을 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서서히 떨어지는 해는 바다를 발갛게 물들이고 있다. 이제 10분만 있으면 해는 바다로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바다를 경계로 약 1M의 구름이 띠를 형성하여 해를 삼켜 버렸다. 노을은 구름 속으로 서서히 하얗게 사라지고 말았다. 기대하던 붉은 노을은 아니었지만, 바닷속으로 떨어지는 해는 감동이었다.
아침부터 작정하고 신도리까지 왔는데 돌고래는 보지 못했다. 이곳이 돌고래가 나타나는 장소는 맞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돌고래를 관찰하는 유람선이 있고, 유람선에서 돌고래를 유인하는 먹이를 주면 돌고래가 유람선 주변에서 쏟구쳐 오른다. 자연적인 돌고래 관찰 장소라기보다는 돌고래 유람선 관광지였다. 하필 내가 간 날은 파도가 너무 세서 유람선이 운행을 안 했다.
제주 한달살이 동안에 신도리 해안가에서 돌고래를 볼 수 있었다. 제주 공항에서 땡자매를 픽업하면서 일과 해안도로로 운전하다가 돌고래를 보았다. 바다에서 쏟구치는 돌고래 떼를 보았고, 역시 유람선 주변이었다. 돌고래 유람선을 타는 것은 수족관에서 돌고래를 보는 것 같아 포기하였다. 하루 종일 기다린 날에는 돌고래를 못 보고, 다른 날에 우연히 지나가다가 돌고래를 볼 수 있었다. 감동은 뜻밖에 일어나고 오랜 기다림 끝에 주는 선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