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여덟의 생일

아들들이 차려준 생일상

by 땡자랑

아흔여덟의 생일은

축하보다는 올해도 무사히 지났구나는 안도가 먼저이다.

생일상을 함께할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잘 살고 있다.


내 생일은 음력 동짓달 초나흘이었다. 큰아들은 주말에 동생이랑 식사를 하자고 했다. 내년이면 99세, 미수라며 그땐 온 동네 사람을 불러 성대하게 치르겠다고들 한다. 막내며느리는 올해도 외삼촌 모셔 함께 식사하자고 했다.


백 살 가까이 살다 보니, 내일 일을 미리 정해 두는 것은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정리에 사는 남동생네를 불러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큰아들, 막내네, 사정리 동생네, 군산 손자네까지 여덟 명, 생일상보다 보고 싶은 사람이 먼저 떠올랐다.


쇠고기를 먹으러 간다기에 점심은 홍시 한 개로 가볍게 했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남자, 문득 사정리에 가고 싶어졌다.

'일병아, 시간이 되면 사정리에 가서 놀다가 삼촌이랑 같이 식당으로 가.'

큰아들은 흔쾌히 대답하며 출발했다.


사정리로 가는 길은 늘 어머니가 계신 친정으로 향하는 길로 여겨진다. 마루에 앉아 있다가 반갑게 손짓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시복아, 어서 와라.'

이가 다 빠져 합죽해진 입으로 반갑게 나를 부르던 그 목소리. 어머니는 아흔둘에 돌아가셨다. 총기도 맑고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몸져누워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서 모두들 호상이라며 위로했지만, 엄마가 없는 세상은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 사정리에 갈 때마다 '어서 오라.'며 따뜻하게 잡아주던 엄마의 손길을 이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을 시리게 했다.


마당에 들어서자 동생은 놀라며 나왔다.

'누님, 어서 오세요.'

우리는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댁은 따뜻한 생강차를 내오면서 내 얼굴을 살핀다.

'형님은 큰 수술 한 번도 안 하시고 참 건강하세요.'

겨울바람은 매서웠지만, 방 안은 옛날이야기로 금세 따뜻해졌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줄어드는 줄 알았는데, 기억은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식당에는 막내아들이 먼저 와서 상을 차려 두었다. 삽삽한 손자며느리가 얼른 나와서 나를 부축한다. 지팡이를 세우고, 그 아이에게 몸을 맡겨 천천히 걸어서 자리에 앉았다.

큰아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니 생일은 화요일이에요.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드리려고요. 이 자리에 모인 식구들 감사합니다. 어머니, 한 말씀하세요.'

'무슨 말을 혀. 오래 살았으니 그만 살고 가고 싶은디, 맘대로 안되네.'

동생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누님, 그런 말씀 마시고요. 건강하게 살아서 자식들이 차려준 생일상을 받으니 고맙다고만 하세요. 백 살 넘게 오래오래 사셔야죠.'

'그려 바쁜데도 와줘서 참 고맙네.

아들들이 잘돼서 이날까지 맘 편히 살고 있으니, 그게 다 고맙지.'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다. 큰아들이 아침마다 밥상을 챙겨주고 잘 먹으니 속병 없이 건강히 지낸다. 주말에는 막네 아들이 와서 함께 밥을 먹는다. 이 나이에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동생이 다시 말했다.

'누님은 인생을 참 잘 사셨어요. 결혼할 때 가난한 집으로 간다고 다들 걱정했는데, 후일에는 자식들이 잘돼서 말년이 이렇게 편하잖아요. 누님이 인생을 잘 사신 덕분이에요.'

동생댁도 거든다.

'형님은 어쩜 그리도 기억력이 좋아요? 국민학교 때 배운 일본말도 다 기억하시잖아요.'

나는 국민학교 때 배운 일본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일본인 선생이 침 튀기며 외우게 했던 헌사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시 외워 보였다

'형님은 뇌가 맑아서 오래 사실 거예요.'

막내며느리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 활짝 웃으세요.'

막내아들이 묻었다.

'엄마, 나 국민학교 다닐 때 구구단 가르쳐 준 것 기억나세요?'

'그럼, 구구단 못 외우면 나가 놀지 못한다고 했더니 금세 외우더라. 산수 시험 보면 백점 맞아 오곤 했잖니.'


식구들과 마주 앉아서 옛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생일 저녁은 소리 없이 흘러갔다. 성대한 잔치는 아니었지만 , 밥상 위에는 지나온 세월 이야기로 풍성해졌다.


작년에는 둘째 아들이 생일 겸 식사를 대접했다. 마침 캐나다에 사는 동생네가 치과 치료로 한국에 와 있어서 함께 모였다. 꼭 필요한 돈만 쓰던 둘째가 그날은 회집에서 열명도 넘게 모이는 자리를 만들었다. 그 마음의 고마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앞으로 생일을 몇 번이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내년에는 미수라며 크게 잔치를 한다지만, 그때까지 내가 이 자리에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내년 생일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오늘 하루를 고맙게 지내온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아주 잘 살아왔다고

스스로에게 위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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