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서작업을 컴퓨터로 하면서부터, 글을 손쉽게 수정 및 삭제(Delete 버튼 & Backspace 버튼 누르기)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렇게 컴퓨터로 글을 쓰면서도 자필이 아닌 타이핑으로 대체할 수 있기에 효율성이 올라간 점은 인정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함께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손으로 글을 쓸 경우 글자 하나하나의 무게를 생각하게 되지만 컴퓨터로 작업할 경우 수정이 간단하다 보니 일단 써놓고 보는 경향이 강한데, 이 점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글자 하나 하나의 무게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신영복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신영복 교수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후 20년 동안 복역하면서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한 책이다. 오고가는 모든 서한이 검열되며 시간과 물품이 극도로 통제되는 감옥이라는 극단적 환경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기 위해 머리속에서 수없이 퇴고해서 쏟아놓은 정제된 글을 읽고 있으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20년간 긴 투옥기간을 마치고 강단에 다시 올라가신 이후에도 좋은 글과 말씀을 많이 남기셨지만, 개인적으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보다 좋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 글을 적에도 나에게는 없었다. 우리는 천재가 노력하면 얼마나 무서운지를 잘 알고 있는데, 노력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나온 철저한 글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헛으로 넘길 수 없을만큼의 무게감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없는 사람이 살기에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삽심칠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감옥이라는 극한 공간과 상황에서만 통찰할 수 있는 사실,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의 사념으로 통해 엿볼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2. 강의
신영복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내용을 모은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동양고전을 읽고 싶지만 왠지 어려울 것 같아서 주저했던 분들이거나,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 입문서 한 권을 추천한다. 신영복 교수의 '강의'는 교수님의 동양고전 강의내용을 엮은 책으로 논어를 비롯한 동양고전의 정수를 짧은 시간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책이다. 다만, '강의'를 읽고 동양고전을 다 이해하겠다는 섣부른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기수라는 극한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공부에 몰두했던 교수님의 사고의 깊이를 생각해보면, 동양고전에 대한 그의 통찰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 한비자, 묵가, 장자 등을 읽기 전에 유가/도가/묵가/법가의 기본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 정도로 생각하고 읽는 것이 편할 것이다. 즉, 책 내용을 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동양고전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읽어간다는 기분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수님은 자본주의 위기론에 대한 해법으로 동양고전의 '관계론'을 제안한다. 관계에 대한 책내용을 인용한다. "우리가 함께할 고전 강독의 전 과정은 화두話頭를 걸어놓고 진행하게 됩니다. 이 화두는 물론 21세기의 새로운 문명과 사회 구성 원리에 관한 것이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서보다는 오히려 현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두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걸어놓는 화두는 ‘관계론’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입니다.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의 운동 원리가 관철되는 체계입니다. 근대사회의 사회론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 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강독하게 될 예시 문안은 대체로 이러한 관계론적 사고를 재조명할 수 있는 것들로 구성한 것입니다. 고전 강독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3. 주저리주저리
나는, 과연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너무나 오랫동안 방치해온 나의 공간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정말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