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낯선 이름이 휴대전화 화면에 떴을 때 심장은 아주 잠깐 기분 좋은 미끄러짐을 경험했다.
아주 오랜만에 온 연락. 시간의 물결 속에서 서로의 좌표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면서도 단지 그 이름 석 자만으로 과거의 모든 페이지가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망설임 끝에 답장을 보냈고 곧 짧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잘 지내?”
이 평범한 세 글자는 친구가 내게 던질 수 있는 가장 광범위하면서도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동안 아프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꿈을 좇고 있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등 수많은 염려와 궁금증을 함축하고 있었다.
나의 대답은 더 짧고 더 단호하게
“응. 잘 살아 ”
'잘 지낸다'는 것은 어쩌면 순간의 감정이나 안녕에 대한 대답이지만 '잘 산다'는 것은 살아남았고 고난을 겪었으며 결국 스스로의 삶을 안정적으로 구축했다는 지나온 시간에 대한 최종 보고서와 같은 말이다. 거기에는 긴 설명이나 감정의 공유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나는 당신의 걱정을 덜어줄 만큼 잘 정착했고 이제는 당신 없이도 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은근한 거리감의 확인이기도 했다.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했다. 서로의 긴 이야기를 꺼내어 놓기에는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은 두세 마디의 문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무언의 동의로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서로의 안부를 물을 정도의 따뜻한 마음은 남아있으나 이제는 그 마음을 풀어놓을 시간과 공간이 없음을 확인하는 짧고, 정중하며, 조금은 쓸쓸한 인사
하지만 그 두 마디의 공백 속에서 나는 친구가 여전히 내 세상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친구 역시 내가 그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그 짧은 교신은 우리가 완전히 잊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는 작지만 확실한 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