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의 가면을 벗긴 다섯 살의 폭로전

by 머머씨

다섯 살인지 여섯 살인지 모를 무렵, 우리 집은 마당 넓은 단독주택을 떠나 상가에 딸린 단칸방으로 이사를 했다. 집안 형편이 롤러코스터처럼 곤두박질치면서 엄마는 생계를 위해 '백양양품'이라는 옷가게를 열었다.


​여성복부터 알록달록한 속옷, 번쩍거리는 싸구려 액세서리까지 온갖 잡동사니가 진열된 그 좁은 가게가 우리 가족의 새 터전이었다. 가게 문을 열면 훅 끼쳐오던 새 옷 특유의 섬유 냄새와 먼지 냄새. 그건 가난하지만 치열했던 우리 집의 냄새였다.


​엄마가 새벽 공기를 가르는 봉고차 소리와 함께 물건을 떼러 동대문 시장으로 떠나는 날이면, 나는 '늘푸른유치원' 원장님 댁에 맡겨졌다. 유치원 건물 2층은 교실, 3층은 원장님 살림집이었는데 그곳이 내 임시 거처였다.


​사건은 크리스마스 재롱잔치를 코앞에 둔 어느 날 밤에 터졌다.


선생님들은 무대 장식을 만드느라 밤늦게까지 분주했고, 그 틈바구니에서 선생님들의 이쁨을 독차지하던 나는 가위질하는 선생님 등 뒤에 매달렸다, 색종이를 날렸다 하며 야근하는 어른들 사이의 유쾌한 훼방꾼 노릇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거실 문틈 사이로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낮에는 인자하게 "허허" 웃어주던 원장 아빠(원장님 남편)였다. 그런데 그가 주섬주섬 입고 있는 옷이 문제였다.


붉은색 상의, 펑퍼짐한 바지, 그리고 하얀 솜뭉치.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산타복을 껴입는 순간, 굴뚝을 타고 온다던 산타 할아버지의 환상은 유치원 3층 거실에서 와장창 깨져버렸다. 동화 속 세상이 현실의 날카로운 조각이 되어 내 가슴에 박힌 순간이었다.


​드디어 재롱잔치 당일
강당의 무대 조명은 눈이 부시게 화려했고, 땀과 피곤에 쩐 아이들의 볼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행사의 피날레는 역시 산타의 등장이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허허허!"


​조잡한 솜 수염을 덕지덕지 붙인 산타가 등장하자 아이들은 자지러지게 환호했다. 산타는 아이들을 일일이 무릎에 앉히고 선물을 나눠주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산타의 무릎에 올라앉았다. ​그는 세상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허허허, 우리 머머는 올 한 해 무슨 착한 일을 했느냐?"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를 낚아채듯 움켜쥐었다. 그리고 며칠간 가슴속에 품어왔던 배신감을 담아, 강당이 떠나가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원장 아빠!! 왜 할아버지인 척 거짓말해?!!"
​"......"


​순간, 윙- 하는 마이크 하울링 소리만 강당을 채웠다. 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엄마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산타 옷을 입은 원장 아빠는 솜 수염 뒤로 당황해서 벌어지는 입을 숨기지 못했다. 그 떨리는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의 짜릿함이란.


​동대문 시장으로 떠난 엄마를 기다리며 원장님 댁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수많은 밤들. 그 밤들이 내게 가르쳐준 건 눈치와 현실감각이었다.


​산타는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른들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꼬마의 생애 첫 번째 폭로전.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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