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뭐 하나 부족해도 되는 인생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 사랑은 기술인가? 기술이라면 사랑에는 지식과 노력이 요구된다. 혹은 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경험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행운만 있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즐거운 감정인가? 이 작은 책은 ‘사랑은 기술이다’라는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물론 사랑은 즐거운 감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현대인이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사랑을 갈망하고, 행복한 사랑의 이야기, 불행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무수한 영화를 보며, 사랑을 노래한 시시한 수백 가지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사랑에 대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13쪽)
내 뼈아픈 자기반성의 시간 속에서 좋은 사람이 좋은 상대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하는 관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닌 '기술'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분명 '감정'을 쓰는 일이다.
서로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표현하고 나누는 일이다.
그래서 그만큼 '감정을 잘 조절하는 기술'이 중요한 영역이다.
아낌없이 표현하고 사랑하되,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게 말이다.
이별 후에 '사랑' '연애' '관계'에 대해 다시 배워나가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을 봐야 할지 몰라 솔직히 막막했다.
일단 이전의 연애를 복기하며, '나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래야 해!” 했던 순간들을
모조리 되짚어봤다. 그리고 나아가 그 명제가 좌절됐을 때까지 되짚어봤다.
화가 났던 순간부터 섭섭했던 순간, 이해받지 못하다고 느꼈던 순간, 더 큰 외로움과 슬픔을 느꼈던 순간 등
나를 취약하게 만들었던 감정과 기억들이었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도움이 됐다.
그때의 상황과 감정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새삼 내 연애는 감정으로 짙게 물들어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관계에 있어 매사 진지하고 누구보다 진심으로 상대를 대했다 생각했지만,
실제론 내가 느끼는 감정에만 진지했던 걸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 감정이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미처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정말 사랑을 통해 느꼈으면 하는 감정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세상이 규정한 사랑의 척도, 사랑의 기준 같은 게 없다면
정말 내가 상대 또는 연애를 통해 느끼고 싶은 감정과 마음은 무엇일까.
연애는 정말 소위 미러 전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사랑은 거침없이 당신의 취약함을 드러나게 한다.
그 안에서 당신도 지키고, 상대도 지키고, 이 관계를 지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결과적으로 연애를 잘하기 위해서 기술적으로
나의 감정, 나의 태도, 나의 마음을 다룰 줄 알면 된다.
여기서 그 기술을 터득하기 전, 먼저 깨달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아래 세 단계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길 바란다.
1단계. 연애할 때, 당신의 취약성은 무엇인가?
애착 유형 검사도 매우 도움이 된다. (혼돈형이 나와서 매우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지만, 중요한 건 애착 유형도 변한다는 것이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너무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는 이전 연애를 복기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당신이 연애할 때 스스로 참기 힘든 문제와 감정이 무엇인지를 노트에 적어보라.
2단계. 연애를 통해 당신이 궁극적으로 느끼고 싶은 감정은 무엇인가?
'사랑한다면 이래야 해, 나를 좋아한다면 이래야 해' 하는 사회적 통념을 다 버리고
정말로 연애를 통해 얻고 싶은 당신에게 필요한 감정과 상대와 나누고 싶은 단순한 일상을 생각해라.
여기서 단순한 일상은 당신의 일상에 들어올 수 있는 아주 일상적인 행위여야 하며,
상대와 함께 할 수 있는 행위여야 한다. 여러 가지를 꼽아도 된다.
예를 들어 '안정감'이란 단어를 뽑았다고 치자.
그리고 매일 출퇴근 길에 문자를 주고받는 일상, 같이 퇴근하고 영화나 술 한잔 하는 일상,
힘들 때 제일 먼저 전화 걸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일상,
서로 먹고 싶은 저녁 식사 메뉴가 다르면 두 개 다 시키는 일상 등을 상상했다고 쳐보자.
3단계. 그리고 다시 나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라.
그리고 연애를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느끼고 싶은 감정을 지금 혼자서는 못느끼는지 생각해 봐라.
1단계에서 당신이 적은 취약성은 실은 상대를 통해 발현되는 것뿐, 사실 당신의 내면에 항상 숨어있는 감정은 아닌건지 깨닫게 되는가?
그리고 당신이 상대와 함께하고자 했던 일상을 아주 가까운 친구와 가족과 함께 한다고 상상했을 때,
그때 느껴질 감정은 당신이 연애를 통해 느끼고 싶은 감정과 또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 봐라.
세 가지 질문 모두 대답이 저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잘 생각해야 한다.
가족관계 또는 친구관계와 연인관계는 서로 차원이 다른 영역일지라도 당신이란 사람은 늘 동일하다는 점이다.
모든 관계의 중심엔 당신이 있다.
특정한 관계없이는 당신이 원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 채, 스스로의 취약함을 잠재우며 살아가면 안 된다.
당신이 원하는 감정을 당신의 일상에서 소중한 이들과 채우면서 살아가야 한다.
당신이 연애를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동일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기술적으로 나의 감정, 나의 태도, 나의 마음을 다루는 방법
그 해답은 바로 당신의 일상에 있다.
당신이 왜 연애할 때마다 취약해지는지는 당신이 연애를 못해서가 아니라,
연애를 통해서만 채우고 싶은 마음과 감정을 일상에서는 채우고 있지 못해서는 아닌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포기하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기대심을 버려라 하는 말도 안 좋아한다.
왜 나면 나는 의지적인 사람이라 노력만 한다면 어떤 상황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마땅히 버려야 하는 것들도 쉽게 포기하고 버릴 수없이 지금의 최고와 최선을 기대하는 사람이라,
연애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기대심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참 버거웠다.
그래서 상대의 어떤 점은 꼭 개선해 줬으면 좋겠고, 내가 배려하는 만큼 상대도 배려했으면 좋겠고,
내가 기대하는 것도 알아서 채워줬으면 했다. 내 마음과 생각을 읽고 행동해줬으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혼자 섭섭하고 기분이 상했던 것 같고, 내 기분과 감정을 관계의 척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단순한 생각만 한다.
연애나 사랑은 모두 관계의 기술이다.
연애도 가까운 친구, 가족 관계로 치환해서 생각해 보려고 해야한다.
나란 사람이 변하지 않는 이상 연애도 관계유지에 필요한 기본적인 규범만 알면 된다.
서로 바라는 만남과 연락 패턴을 맞춰가고 충족해 줄 수 있어야 하고,
관계 유지에 필요한 대화, 힘들지만 꼭 해야 하는 이야기를 상대를 배려하며 이야기 해야하며,
지나치게 감정으로 관계를 바라보지 않고 편안하고 행복하고 기댈 수 있는 관계를 그려야 한다.
연애를 잘하려면 대단한 게 필요한 줄 알았는데, 대인관계에 원만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
당신이 이미 할 줄 아는 것들이다. 단지, 관점과 태도만 전환하면 된다.
연애는 과도한 몰입과 특별한 대우와 취급을 받을 게 아니라 일상의 작지만 큰 행운과 같은 거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길가다 동전을 줍는 행운이 매일 반복되는 것처럼.
이 글이 얼마나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연애란 인생의 과제 앞에서 긴 방황을 해온 내가 얻은 해답은 이 뿐이다. 재회를 기다리는 사람, 연애가 어려운 사람, 연애로 큰 상처를 받고 혼란 스러운 사람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당신의 사랑엔 아무 잘못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