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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an 12. 2021

제5장. 멈춤 없는 진행.

하루하루 증상들이 심해져가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신 뒤.. 6학년 여름방학은 정신없이 흘러 어느덧 가을 문턱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받던 중.. 무슨 수업을 받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선생님이 날 지목하셔서  발표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내 몸이 나도 모르게 사시나무 떨리듯이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떨리는 정도를 넘어선 나뭇가지가 바람에 날리듯 심하게 흔들리듯이 나의 몸 전체를 동반한 손과 팔이 마구 떨리는 것을 보며.. 반 친구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였고 내 귀에는 급기야 그 수군거림이 웅성거림으로 들리는 동시에 여린 마음에 큰 비수로 꽂히게 되었다.
("어머.. 재 왜 저렇게 떨어.. 어디 아픈가?")
("풍이라도 걸린 걸까?")
내가 너무 심하게 몸을 흔들어대니까 한 친구가("선생님.. 뭔 일 일어날 것 같아서 겁나니까 그만 자리에 앉히는 게 어떨까요?")
난 속으로('뭔 일?'그 뭔 일이라는 말의 의미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내가 무슨 입에 거품이라도 물고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겁이난 다는 소리인 걸까?')

난 너무 창피하고 속상해서 선생님이 원하시는 답변을 맞게 말했는지 틀린 답을 말했는지도 모른 체 그냥 대충 말하고 자리에 털썩 앉아 내 떨리는 몸을 진정시켜보려 양팔로 몸을 감싸듯이 팔짱을 껴 끌어안고 한참을 우울한 기분으로 풀이 죽어있는 상태로 앉아있었던 같다. 그 날 하루는 그 일로 인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럽게 목놓아 울었었던 것 같다. ('내 몸이 자꾸 내 몸 같지가 않고 왜 자꾸 떨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엄마가 직장 퇴근 후 피곤한 몸으로 집으로 귀가하자마자 난 울면서 그 날 학교에서 겪었던 일들을 전부 쏟아내며 엄마한테 울부짖듯이 고함을 질러댔던 거 같다. ("내가 여태껏 말해왔었잖아.. 내 떨림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고.. 왜 자꾸 내 말들을 별일 아닌 것처럼 취급하는 건데..;; 엄마 제발 부탁인데 나 병원에 좀 데리고 가 줘".) 그러나 엄마는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네가 이곳저곳 아픈 곳이 어디 한두 군데야? 지금 먹고 죽을 돈도 없어.. 그냥 나가죽어버리든지 네 마음대로 해".) 엄마의 그 말 한마디로 내 마음은 있는 대로 갈기갈기 찢어졌었고 내 평생에 그 어떠한 말보다 더 큰 상처로 다가왔어 던 말은 이때 들었었던 말이 가장 심한 말로 내 기억 내 마음속에 뿌리를 박고 았다.
지금도 문득 문득 엄마의 그 말이 떠올라 가끔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내 볼을 타고 흘러내릴 때가 있다.
('아픈 게 내 잘못도 아닌데ㅠ; 요즘 시대 같았으면 저렇게나 아프다고 하소연을 해댔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델 구 가지 않았으면 구속감이었을지도 몰라.. 어린이 학대죄에 방치 죄..;;)
그런 식으로 난 하루하루 학교에서 내 떨림으로 인해 상처 받고 아파하는 날보다 집에서 가족들에게 상처 받고 좌절하는 횟수가 더 많았었고 점점 심해져가는 증상들로 인해 웃는 날보단 우는 날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그때 당시엔 병원에 데려가 주지 않는 엄마가 너무 이해도 안됐었고 원망스럽기 그 지 없었으나.. 엄마를 원망하면 원망할수록 내 떨리는 증세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내 자존감 또한 밑바닥으로 곤두박질쳐 가다가다 아주 그냥 그 자리에서 땅속에 바로  묻혀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날 병원에 데리고 가지 않는 사정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만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 때 당시에 우리 엄마 심정으로는 엄마가 돈을 벌지 않으면 당장에 먹고 지낼 돈도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더 컸을 것이다.. 병원에 데려갈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그때 당시엔 복지가 지금처럼 잘 돼있지가 않아서 병원비.. 검사비며.. 나갈 돈도 많을 텐데.. 엄마 혼자 벌어 이 모든 걸 감당하기엔  부담감도 대단히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난 잔병치레도 많았었다.  
엄지손가락이 손톱 밑으로 사마귀 하나가 생기더니 날이 갈수록 점점 커지고 손톱 밑을 점점 파먹어가고 있었다. 손톱이 그 부분엔 자라지도 않았을뿐더러 엄지손가락 앞에도 뒤에도 사마귀가 두세 군데 더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마귀 없애는 약 중에 투명색 액체 약이 있었는데 사마귀에 난 부분에 바르게 되면 그 부위가 하얂게 변하면서 부풀어 오르며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그 위에 계속 덧발라주는 식의 약이었었는데 문제는 멀쩡한 살점도 다 뜯겨나가는 식이었었고 내 경우에만 국한된 걸 수도 있었겠지만 약바를때뿐.. 재발이 계속되었었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엄마와 난 동네를 벗어난 좀 더 큰 피부과를 찾아가 내 엄지손가락을 보여줬더니 치료하기가 좀 힘들어 보였었는지 그냥 집에서 바르는 약 계속 바르시라며 우리를 돌려보내기 급급해하는 모습이 확 티가 났다

그래서 엄마와 난 여기저기 전전하다 결국엔 할 수 없이 동네약국에 약사님께서 한의사 겸 약사 셨었는데  밑 저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한약 6개월치 넘게 지어먹었더니 사마귀가 말끔히 사라지고 엄지손가락의 손톱 또한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떨림의 증상들은 기가 허해서 떨리는 거 같다며 기 보강제 차원에서 개소주도 함께 넣어 달여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때 당시엔 개소주가 뭔지 잘 몰랐었는데..
좀 더 커서 개 한 마리가 나로 인해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떨림은 멈출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병들은 치료가 되어가는데 파병은 나의 몸을 계속 옥죄어 오고 있었지만 한약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아지겠지 분명 괜찮아질 거야라는 주문을 외우듯이 내 마음을 달래어본다

그렇지만 겉으로 눈에 보이는 다른 잔병들은 전부 차츰차츰 호전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떨림에는 별다른 차도가 보이질 않았다.
어느 날.. 외할머니께서 내 동생에게 할머니 일하는 곳으로 뭐 좀 갖다 달라는 심부름을 시켰었는데 동생이 그때 없어서 내가 대신 할머니 일하시는 곳으로 가져다 드리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일 끝나고 집에 오셔서는 엄마 한 노발대발 화를 내시며 하시는 소리를 내가 옆방에서 다 듣게 되었다. 안 그래도 밖에서도 어디 불편하냐며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물어봐서 창피하고 힘들어 죽겠는데 우리 집의 가족인 할머니마저
("아니.. 동생을 보내랬더니.. 다리 한쪽을 질질 끌고 몸동작도 둔해빠진 큰 애를 보내면 내 꼴이 뭐가 돼냐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저 몸 불편해 보이는 애는 도대체 누구냐고 다 한 마디씩 물어보잖아")라는 말을 해대며 화를 내시는 거였다.
할머니의 노발대발 하심이 그 때 당시에는 한편으로는 너무 서운했었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점점 가족들에게 또는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한 존재가 돼가고 있구나.. 이 떨림 증상이 그냥 단순한 병이 아님을 몸으로도 느끼게 됐지만  생각으로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앞으로 나의 몸 상태는 어떤 식으로 졈점 더 안 좋아지는 것일까?
이렇듯 고민의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커져만 갔었던 거 같다.


<제6장부터는 아직 제 어린 시절 기억들이 정리가 잘 안되고 복잡 미묘한 게 얽혀있다 보니 기억과 생각들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작성하게 되면 올려놓도록 하겠습니다. 그 점 양해 부탁드리며 대신 여태껏 제가 지내오면서 겪어왔었고 느껴왔으며 생각하고 있었던 들을 짧게 짧게 글로써 작성해놓은 게 있는데 그 글들을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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