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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문정 Jan 12. 2021

제4장. 안녕.. 그리고 또 안녕,

외 할아버지와의 영원한 작별.

13살.. 그 해 여름 장마는 참으로 변덕이 심했었던 걸로 기억된다. 하루에도 여러 번 비가 폭우처럼 쏟아지다가도 또 언제 그랬었냐는 듯이 맑게 개인 하늘을 들어내 놓고 ('우산 같은 건 장식품일 뿐이니 가지고 다니지 마라')이런 식으로 말하는 듯이 사람 간을 보고 있는 느낌마저 들었었던 6학년 여름방학..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고 엄마는 부랴부랴 외갓집으로 쏜살같이 날아가셨고 내 동생이랑 나는 할아버지보다 더 위독할 정도로 늦잠을 자다 깼었던 거 같다. 동생은 깨자마자 엄마 뒤를 이어 외할아버지 집으로 향했었고 나는 그 날 학교에서 운영하는 컴퓨터교실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학교로 가는 길에 외할아버지 집에 잠시 들러 큰 창문 너머로 할아버지 상태를 살펴본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여러 사람들과 식구들에 둘러싸여 내 쪽을 힘없고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런 할아버지와 난 눈이 딱 마주쳤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꼭 할아버지께서 내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시는 것 같아 보였다.
난 창문 쪽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외쳤지만 모두들 할아버지 병중에 정신이 팔려 내 인사는 들리지도 않았었나 보다. 아무도 대꾸를 해주지 않았다. 난 그 날이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었고 왠지 모를 두려움으로 인해 학교 컴퓨터 수업을 핑계 삼아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가버렸다.
그런데 자라 가면서 생각해보니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고 나 또한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할아버지의 마지막 곁을 지켜드려야 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어도 볼 수조차 없으니..('할아버지.. 저 너무 아프고 힘들어요')라는  하소연조차도 할 수 없고 목놓아 울고 싶어도 울 수도 없고 속으로 아픔과 고통들을  삭히고 참고 지내야 하니.. 지금 생각해보니 난 할아버지의 죽음이 왠지 모르게 무서웠었고 두려웠었다. 아버지를 잃게 된 것도 나름대로 겉으론 표현을 잘 못했을 뿐이었었지만 충격이 엄청 크게 다가왔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차사고로 돌아가실 당시 그 사고 목격담을 얼핏 들었었는데 아버지께서 운전하시는 도중 다리 밑으로 차가 빠져버렸었다는 소리에 한 달 넘게 사람들 다리 수백 개.. 수천 개 속에서 헤매는 악몽을 꿨었을 정도였었다.
 그때 내 나이 5 살 때였었던지라 어떤 다리인지 분간을 잘 못하고 차들이 지나다닐수 있는 그런 다리를 사람다리로 잘못 인식하는 바람에 사람다리 악몽에 시달렸었던 기억이 난다.
서둘러 학교로 도망치듯 바쁘게 걸음을 재촉해서 컴퓨터 앞에 앉긴 했지만 컴퓨터교실 수업을 듣는 내내 내가 컴퓨터 자판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건지 타자를 치고 있는 건지 정신줄을 놓아 버린 상태로 수업 내내 할아버지만 생각했었던 거 같다.
('앞으로 할아버지를 못 보게 될 거 같은데.. 그냥 지금이라도 컴퓨터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할아버지한테 가버릴까?')수없이 이런 생각으로 내 마음이 요동을 쳐대며 1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내 내 마음과 싸워 던 것 같다.
('할아버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아직 돌아가시면 안 돼요.. 정말 죄송해요.. 전 아직 할아버지를 떠나보낼 마음에 준비가 안돼서 학교로 도망쳐온 거였어요..')마음속으로 수십 번 이런 말을 되뇌며 할아버지 집으로 서둘러 달려가는도 중.. 잠시 그쳤었던 비가 또 다시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검은색 현관문 앞에 다 달았을 땐 이미 빨간색 등이 걸려있었고 문밖에까지 여러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한대 섞여서 들려오고 있었다. ('내가 한발 늦게 왔구나... 아니 아예 오늘은 학교를 가지 말았었어야 했었어.')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학교 수업 끝나 집으로 오기 몇 분도  안돼서 돌아가셨다고 나중에 듣게 되었다.
엄마가 목놓아 우시며 나를 붙잡고 ("문정아..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사니.. 앞으로 우린 누굴 믿고 살아가야 하는 거니?")하시며 우시는데 할아버지의 죽음이 실감 조 차안나 눈물조차 나오질 않았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외할아버지는 그때 당시 엄마의 정신적 지주였었던 거 같다.. 오로지 할아버지만 믿고 의지해오면서 여자 혼자 몸으로 우리 두 남매를 키워오시면서도 아무리 힘들고 어려웠어도 우리들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순간마다.. 할아버지의 위안과 호통의 말씀들로 인해 정신력으로 버텨내셨었던 같다.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었으리라.. 난 그때까지조차도 할아버지의 죽음이 실감이 안 나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니.. 이렇게나 젊으신데 벌써 돌아가셨다고')
할아버지의 밝게 웃고 계신 영정사진을 넋이 나간 채 바라보며 마음속으론 말도 안 된다고 수 번 외쳐보았지만.. 사실 말이 될 수 있는 현실이었던 것이다. 다만 내가 할아버지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할 뿐이었었고 우리 아버지도 젊은 나이에 아무도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신 걸 보면.. 같은 이치 아니겠는가.. ;;
슬쩍.. 외할머니의 동태를 살펴보았다.
외할머니를 바라보니 우리 엄마가 외할머니를 닮았나 보다는 걸 느끼게 된 한 순간이었다.
할머니께서도 할아버지 영정사진을 빤히 넋 놓고 바라보실 뿐 눈물 한 방울조차 흘리시지 않으셨.
내 동생은 조문으로 오시게 된 셋째 큰아버지 손에 잡혀 큰댁으로 끌려가게 돼버렸었고 난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가기 싫다고 억지와 고집을 부려대서 할아버지 집에 남아 할아버지 3일장 치르시는 모습.. 무덤가에 묻히시는 모습까지도 느지막한 자리 지킴이긴 했었지만 할아버지 곁에서 조용히 마지막 길을 지켜봐 드릴 수 있었다.
할아버지 묘로 향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본 밖에 풍경은 온종일 비가 내리고 있는 탓인지 하늘도 우울해 보였였었고 내 마음 또한 하늘과 같이 우울하고도 슬펐던 순간이었었다.
앞으론 할아버지를 내 기억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게 될것이겠고 몇 장 안 남은 사진 속에서나 우연찮게 볼 수 있게 될 것이며 그 때나 잠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할 정도가 될 것 같기에.. 내가 우리 아빠와 함께했었던 순간 순간을 내가 생각하기에도 점점 무심할정도로  잊혀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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