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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Apr 20. 2017

심상정은 완주할 수 있을까?



대선에 출마한 후보를 두고, 그가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더욱이 그 후보가 거의 유일한 "진보계열"의 후보일 경우에는 더 그렇다. 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 이외에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정치적 다양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안타까워해야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매번 선거를 치를 때마다 진보진영의 후보에게 쏟아지는 중도 사퇴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하게 강력하다. 그 주된 논지는 언제나 "사표 논리"였다.

지금 수구 기득권층과 대결하여 싸워이겨 정권을 교체하고 사회를 좀 더 발전시켜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민주당의 후보를 지지해도 표가 부족한 판에 왜 진보 후보가 나와서 표를 분산시키고 적들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냐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언제나 힘이 부족한 야권 민주화 세력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정말로 절실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욱더 진보 후보들과 그의 지지자들은 막판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누가 봐도 이번에는 무조건 이회창이 당선되는 판이었던 2002년 선거에서 노무현 지지자들은 당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의 지지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또 거의 울면서 호소를 했었다. 이번만큼은 진보의 정신을 가슴에 접어두고 노무현을 밀어 달라고.

실제로 꽤 높은 비율의 권영길 후보 지지자들이 노무현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 사건은 끝내 엄청난 후회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겨두게 된다. 당시 "사표론"을 설파하며 권영길 지지자들을 설득했던 유시민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 사표론은 임시 응급처방이다. 원칙적으로는 누구나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맞다. 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따로 있는데 울며 겨자먹기로 차악의 후보를 택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 사회가 그렇게 치명적으로 위급한 상황인가? 그런 상황이 몇 번의 선거에 걸쳐 계속 지속되는 것이 정상인가? 이런 생각을 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 누구나 선거 때가 되면 마음이 급해지고 이번에 지면 세상 끝장 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4년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니고 정권은 영구 불변하는 것도 아니다. 응급 처방을 매번 반복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거기다가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소수파 후보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주는 행위가 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인가 하는 논리도 있다. 이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 부분을 설명했던 글이다.

https://brunch.co.kr/@murutukus/70

사표론은 매우 폭력적이다. 소수파 후보를 지지하는 행위가 당장의 승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선택을 바꿀 것을 강요하고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저열한 이론이며, 자꾸 쓸수록 부작용만 강해지는 잘못된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야권이 유리한 이번 선거에서조차 사표론은 또 등장하고 말았다. 그것도 스스로 대세라고 주장하는 야권의 제1후보 민주당의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말이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지금 문재인 후보의 상대는 안철수 후보다. 현재 스코어 문재인은 경선 막바지에 갑자기 상승세를 보이며 따라붙던 안철수 후보를 다시 앞서 나가며 격차를 점점 더 벌리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문재인은 대세 후보가 맞다. 이대로 큰 실수 없이 남은 선거운동 기간을 겪어 내면 8-90% 이상의 확률로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한다.

그런 상황에서 왜 심상정 후보에게 사퇴를 요구할까? 토론회에서 공격 좀 당했다고 배신감을 느끼나? 정치에서 상대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일이고 모든 세력이 자신들을 옹호하고 감싸길 바라는 것은 전제왕정 시대의 어리석은 군주나 할 생각인데 말이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문재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심상정의 사퇴를 요구하는가 말이다. 지지율 5%도 안 나오는 조무래기 후보의 표를 그렇게 빼앗아 먹고 싶은 건가?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 다만 감정적인 이유일 뿐이다. 눈앞에서 내가 지지하는 후보를 비판하는 인간이 대선 후보 입네 하고 떠들고 있는 꼴을 보기가 싫을 뿐이다. 단세포적이다.


심지어 심상정을 비난하는 문재인 지지자들이 심상정을 엔엘 운동권 출신 주사파라고 비난하는 것도 발견했다. 미안하지만 심상정에 대해 30초만 구글링을 해 봐도 그가 얼마나 전설적인 노동운동계의 핵심이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엔엘이 아니라 피디라고. 제발 1센티만이라도 더 똑똑해졌으면 좋겠다.


더욱 난감하고 서글픈 것은 사표론을 주장하며 심상정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세력이 민주당에 있는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록 숫자는 더 적을지 몰라도, 심상정이 대표하고 있는 정의당 내부에까지 사퇴론자들이 존재한다. 이는 정의당이라는 공당이 생겨나게 된 배경과 관련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민주당에서 갈라져 나온 구친노 참여당 계열과, 경기동부가 주도하던 전국연합 세력의 일원인 인천연합 세력, 그리고 진보신당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이 뭉쳐 만들어진 정의당에서 심상정의 사퇴를 주장하는 세력이 누구일지는 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거 자신이 어떤 그룹 출신이었건 간에, 현실의 내가 공당의 당원이라면 최소한 자당의 대표가 타당의 후보를 공격한다고 해서 자당의 대표 보고 후보를 사퇴하라는 주장 따위는 입에 담아서도 안되고 머릿속에 생각조차 해서도 안된다. 그러려면 탈당부터 하는 게 정상이다. 정당활동이 무슨 아이들 장난이란 말인가?

심상정의 완주를 반대하고 사표론을 주장하면서 중도 사퇴할 것은 이야기하는 두 가지 세력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어서 선거가 빨리 끝나야 이 사람들이 좀 제정신을 찾을 것 같기도 하다.

어찌 되었거나 심상정의 완주는 당연한 것이며, 중도 사퇴는 옳지 않은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사표론에 굴하지 말고, 끝까지 완주해서 이 땅의 진보가 과연 얼마나 표를 가지고 있는지를 법적으로 확정된 "숫자"로 보여주시길 바란다. 그게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또한 심상정을 지지하는 분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조금도 굴하지 말고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시길 권한다. 그게 민주주의이다. 이번만큼 그 선택이 마음 편하고 쉬운 판도 없을 것이다.


사표론 따위는 개나 줘 버리자.


난데없이 지나가다가 사표론을 받아 들고 어리둥절하실 강아지 여러분께 미안한 마음이 든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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