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호 Apr 14. 2017

안철수의 한계



박근혜 정권의 실패, 촛불시위를 거쳐 탄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야권의 대표주자는 문재인으로 굳어져 왔다.

결국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아니 스스로 무너진 것은 아니고 유권자 대중이 직접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끌어내렸다고 해야겠다. 그렇게 마무리된 박근혜 정권의 주인공, 삼성동 주민 박씨는 지금 미결수 신분으로 서울 구치소에서 도배를 해주네 안 해주네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실시되는 조기 대선의 승자는 누가 될까?


알 수 없다. 정치에 있어서만큼은 예측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과 같다는 말, 매우 정확한 표현이기도 하다. 그만큼 다수 대중의 심리를 양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그 추세만큼은 또 분석이 가능하며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이고 다양한 데이터를 해석할 줄 알면 흐릿하게나마 예측은 가능해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렇게 될 것이다, 하는 예측과 더불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가치와 당위, 희망이 섞이기 마련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대선을 지켜본다면, 가치가 개입된 판단을 배제하고 표현하자면 문재인의 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게 옳다 그르다 좋다 나쁘다의 얘기가 아니다. 판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른바 대세론이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런 지점이다.

사실 난 그 대세론이 무척 맘에 들지 않는다. 더욱이 문재인 진영이 보여주는 각종 문제점들을 생각한다면 과연 이 집단이 정권을 잡았을 때 무사히 임기를 마칠 정도로 무난하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까지 든다.

캠프는 무능하고 지지자들은 난폭하다. 메시지 관리는 엉망이며 지지자들은 오히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인기를 깎아 먹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관리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러한 디테일의 문제를 넘어서는 큰 흐름이 문재인에게로 가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입장에서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이다.

대세론이 무너질 가능성은 이미 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거의 소멸해 버렸다. 당시 나는 대세론이 붕괴한다면 어떤 형식으로 무너질 것인가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결선투표의 시행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분석을 진행했었다.

대세론 붕괴 시나리오 : https://brunch.co.kr/@murutukus/88

물론 결선투표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안희정, 이재명 두 후보는 탈락하고 말았다. 대세론은 붕괴하지 않았고,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은 한층 더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대목에서 당신의 예측은 이미 틀린 게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저 글을 다시 자세히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분명히 6-70%의 확률로 문재인 후보의 경선 승리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해 두자.

그러나 그 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안철수 후보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으로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경선이 끝나고 각 당의 후보가 확정되면 문-안 양자대결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며 안철수 후보의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고, 나는 그와는 전혀 다른 예측을 했던 셈이다.

현실적으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 존재했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론들은 앞다투어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이 높게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기에 바빴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과 국민의당 양쪽의 내부 경선이 끝나자마자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급상승했고, 실제로 대세론을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약진을 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거기까지다. 안철수 후보는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판도에서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후보였으며 그 지지율의 상승은 상한선이 뚜렷하게 보였고, 벽을 넘지 못할 것이며 결국 당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내 판단은 아직까지는 옳았던 걸로 보이고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시 한번 안철수 후보의 한계에 대해 정리를 해보기로 하자. 


정체성의 문제


민주당에 발을 디딘 정치인들은 사드 찬성 같은 소릴 해도 "전략적 선택"이라는 옹호를 받을 수 있다. 선거 때가 되었으니 저런 소릴 하는구나 하면서 무시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안철수는 그런 보수적인 발언을 하는 순간 정체성이 흔들린다.

안철수의 입장에서는 보수-진보 양 진영에 두루 존재하는 반문재인 입장의 유권자들에게 어필을 해야 하는데 이게 상반된 성향의 유권자들이라서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보수진영의 표를 얻기 위해 보수적인 발언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발언을 하는 순간 진보진영과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는 그런 아이러니가 있다.

그렇다고 보수진영의 유권자들이 전폭적으로 안철수를 지지하기에는 역시나 또 정체성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안철수를 둘러싸고 있는 국민의당 의원들의 면면을 보시라. 영남 보수 유권자들이 안철수를 마음 놓고 지지할 수가 없다. 거기다가 안철수는 원래 야권의 개혁을 요구하던 더 혁신적인 후보였다는 점도 기억을 해야 한다.

즉 반문재인 성향의 유권자들이 안철수를 중심으로 집결할 것이라는 예측은 반만 맞는, 아니 반 이상은 맞을 수가 없는 그런 혼자만의 장밋빛 예측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안의 부재


이런 상황에서 안철수 캠프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이 있을까?

보수진영에 어필하는 것이 효율적일까? 아니면 진보 진영 내부의 반문 세력을 규합하는 것이 더 좋을까?

문재인을 비난만 하고 있기에는 남은 기간이 길다. 그러나 무엇을 보여줘도 어느 한쪽은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유치원 관련 공약으로 인해 발생한 논란이 이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하자고 하면 보수적인 성향의 사립유치원 관련자들의 반발을 불러온다. 그렇다고 국공립 유치원을 제한하자고 하면 기존의 야권 성향 지지자들 사이에서 거센 비난이 발생한다. 


어찌해야 할까? 할 수 있는 선택이 없다.

그 와중에 본격적으로 후보자와 후보자 가족,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살벌한 검증 과정이 전개될 것이다. 문재인 역시 뭐 그닥 거센 검증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그 정도 수준의 검증에도 휘청거린 경우가 많았다. 이제 그만한 수준의 검증의 칼이 안철수에게 날아가 꽂힐 것이다.

본인에 관련된 검증도 문젯거리는 쌓여 있다. 남들이 선망하는 교수 자리에 손쉽게 올라갔고, 주식 가격 상승으로 거액을 번 경험도 있다. 거기에 현미경을 들이대기 시작하면 논란거리는 한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거기에 부인 관련, 자녀 관련, 수도 없이 튀어나올 것이다. 심지어 수십 년 전 동생 관련 문제까지 튀어나온다. 어떤 것은 쉽게 거짓으로 밝혀져 가라앉겠지만 어떤 것은 투표 당일까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것이다. 사실이건 아니건 소문의 위력은 매우 크며, 이로 인해 깎여 나가는 지지율은 일종의 세금 같은 것이다. 문재인은 그 세금을 상당 부분 치른 반면 안철수는 이제부터 치러야 된다.

표의 확장성을 가져올 정체성의 확립은 어렵고, 추가적인 지지세의 집결을 불러올 전략은 부재한 상황에서 이제 검증에 탈탈 털리면서 지지율이 떨어질 일만 남은 상황이다.

현재 스코어 시간은 절대 안철수 진영의 편이 아니다.


안철수와 호남


어쩌면 제일 심각한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안철수는 정치인, 그것도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가 거의 허물어진 상태였었다. 독자정당을 건설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민주당에 입당했을 때, 그것을 아무리 "합당"이라고 표현을 해 봐야 입당에 불과했었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밀려나 탈당했을 때 안철수의 정치생명은 거의 마감되는 걸로 보였다. 그러나 기사회생을 하게 된다. 문제는 그 기사회생이 공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안철수는 지난 총선을 기점으로 민주당에서 소위 "친문 패권"에 불만을 가지고 뛰쳐나온 호남 지역 의원들의 세를 규합해서 국민의당을 건설하고 호남의 지지를 모아 극적으로 기사회생을 하게 된다.

이는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었고, 대한민국 정치권의 판도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중요한 변화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가치 판단은 쉽지 않은 일이니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자. 다만, 그렇게 탄생한 호남 기반의 국민의당 세력과 정치인 안철수의 이미지가 과연 잘 융합되어 상호 보완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상태인가 하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홀로 견인해낸 광주 호남의 유권자들이 보여주는 호남의 이미지와 현재의 안철수가 보여주는 어정쩡한 이미지, 진보나 혁신도 아니고 보수도 아닌 그런 이미지와 어떻게 매치가 되는지 생각을 해 보시길 권한다.

영남에서의 안철수 지지율이 반문 감정으로 인해 높아진다 하더라도 과연 영남의 보수적인 유권자들이 최종적으로 안철수를 선택하게 될까? 과연 얼마나 그런 선택을 하게 될까? 차라리 정권 한 번 주더라도 "우리 아직 죽지 않았거든!"을 외치면서 홍준표를 선택할 비율은 얼마나 될까?

이런 복잡한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안철수는 호남정당의 후보"라는 사실이 어떤 영향을 주겠냐는 말이다.

이런 부담의 상징이 바로 박지원이다. 연일 안철수를 지원하며 문재인을 상대로 기관총을 연사 하고 있는 박지원은 영남 유권자들에게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까? 말이 필요 없다.

영남에서의 안철수의 지지율은 문재인이 너무 미워서 일시적으로 반짝 상승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표소 안에서의 선택은 그리 많이 몰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다.

----------

결국 상황은 종료되어 가는 중이다.

물론 상당한 시일이 남았고, 그 와중에 두세 번 더 격변의 시기가 올 것이다. 그러나 뒤집히지는 않는다. 이게 대략의 해석, 희미하고 해상도 높지 않은 해석으로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이번 선거의 판세인 셈이다.

이미 안철수의 지지율 상승세가 벽에 부딪히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앞으로 발생 가능한 악재의 돌출도 안철수 진영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예측 가능하다. 내려갈 길만 남은 셈이다.

밝은 쪽을 보자.

어차피 정권 교체는 확실하게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다들 걱정을 멈추고 각자 좋아하는 후보를 선택하시라. 다만 문재인 후보가 너무나 싫어서 안철수를 별로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안철수가 판을 뒤집어 문재인을 쫓아내길 원하던 유권자들은 실망을 좀 하시게 될 것 같다. 이해가 간다.

나 또한 문재인 정권이 이 시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들을 멋지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유능한 사람이라면 캠프를 그 따위로 운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또 그런 멍청하고 난폭한 "일부" 지지자들을 그렇게 한심하게 또는 교활하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더 급한 것은 차기 정권에게 주어진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다. 문재인이건 안철수건 누가 정권을 잡건, 그리고 정권을 잡은 뒤 정말로 열심히 일을 한다 하더라도 차기 정권은 실패할 가능성이 정말 높다. 이게 우리 앞에 닥친 가장 큰 불행이다.

그걸 생각하자. 이 위기의 시대에 과연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 우리가 속한 이 거대한 사회 공동체, 대한민국이 택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차기 정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거기에 관심을 두기를 권한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진짜 중요한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들의 두 얼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