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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May 16. 2017

승리의 함정


이제는 모두가 슬슬 촛불에서 시작되어 탄핵으로 이어지고 정권교체까지 이루어 낸 새로운 시대의 개막에 대해 감동과 흥분으로 인한 얼떨떨한 느낌이 가라앉고 실감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럴만한 시간이 흘렀다.

이 정도면 이미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예측을 아무리 강조해도 설마설마 혹시나 혹시나 하면서 조마조마하던 사람들도 많았고, 저들이 어떤 놈들인데 순순히 정권을 내줄리가 없다고 부정선거를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다행히도 그런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모두가 다 고통스러운 경험 속에서 얻게 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그런 열정은 결코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권장되어야 하며 그 열정을 건전하게 배출할 수 있도록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큰 고비는 넘은 상태다. 대부분의 예상에 맞게 문재인 후보는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으며 정권 인수 기간도 주어지지 않은 당선 확정 직후 곧바로 취임이라는 전대미문의 압박 속에서도 예상을 몇백 퍼센트 상회하는 훌륭한 업무처리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세월호와 함께 세상을 떠난 두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처리 지시는 정말로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는 이렇게 쉬운 것을 도대체 왜 그렇게 안 해주고 버텼는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박근혜 정권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적으로 간주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 되었건 해 주지 말라는 태도를 보였다는 얘기가 사실이었던 것으로 재확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정권 초기에 가장 탈이 많은 인사 문제에 있어서도 문재인 정권은 매우 부드러운 연착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느낌이다. 크게 문제 되는 인사 없이 적절하게 진행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인수위라는 중재기간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돌입하는 정권이라 검증의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나, 당선 직후라 지지자들의 기세가 등등한 시점이라 언론의 비판이 다소 무뎌져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수는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국 신임 민정수석의 가족 세금 체납 문제나, 갑을오토텍 같은 악덕 기업 측을 변호했던 박형철 변호사의 기용 정도를 제외하고서는 그다지 문제 삼을 만한 인사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 결과 문재인 정권은 생각하던 것보다는 훨씬 더 준비가 많이 되어있던 것으로 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퍼지고 있다.

물론 정권은 이제 시작이다. 당선 및 취임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수많은 정책들은 대부분 국회의 협조 없이 대통령 독단으로 시행할 수 있는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사소한) 일들이었을 뿐, 진짜로 국가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손을 본다거나, 아니면 사법 기관의 개입이 필요한 "적폐 청산"이라거나 하는 본질적인 일들은 시작도 안된 상황이다.

120석에 불과한 민주당의 의석이나, 다시 꾸물꾸물 살아나고 있는 자유한국당, 절대 우호적이라고 보기 힘든 국민의당 등이 도사리고 있는 국회를 문재인 정권은 과연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그대로 살아 있다.

선거 때 공약한 수많은 정책들은 하나같이 돈이 필요한 일이며, 그 모든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에서건 실질적인 세금 부담은 늘어야 할 텐데 과연 이런 실질적 증세를 누구에게 부담을 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걱정 반 기대 반의 시선이 쏠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책들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도 증폭되기 시작할 것이다.

사안이 재벌 관련 정책에 이르게 되면 더욱 심해진다. 역대 정권 중에서 재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정권은 없었다. 재벌들이 자생력을 갖추게 된 전두환 정권 이래, 재벌은 정권 위에서 돈의 힘으로 권세를 쥐락펴락해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문재인 정권의 성패는 재벌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장애물들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누구나 안다. 그렇기에 정권은, 아니 대통령 문재인 본인은 더욱더 온갖 생각에 몰두하고 노심초사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부디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처음 생각했던 올바른 길"을 유지해 주시길 당부할 뿐이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또 다른 곳에 있다.

큰 싸움의 뒤에는 언제나 수많은 변화가 오기 마련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승리의 함정에서 시작된다.

패자는 언제나 고통 속에서 냉정해지기 마련이다. 월왕 구천에게 패한 오나라의 부차는 매일 장작더미에서 자면서 재기를 다짐하게 된다. 와신의 과정이다. 패자는 보통 완전히 절망해서 자멸해 버리거나, 아니면 이렇게 재기를 위해 냉정하고 합리적인 자기 극복의 과정을 밟게 된다.

우리는 왜 패배했을까? 우리의 무엇이 잘못되었던가?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하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들이다. 이런 고민들을 지금 누가 하고 있을까? 박근혜라는 간판이 사라진 자유한국당의 구성원들이 이런 고민을 하는 중이다.

반면에 승자는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그렇게 장작더미에 누워 고통스럽게 재기의 길을 이룩해 냈던 오의 부차마저도 자신의 승리 뒤에 긴장의 끈을 놓아 버렸고, 부차에게 패해 전락해 버린 월왕 구천은 부차의 밑에 들어가 묘지기 일을 하는 치욕을 감당하면서도 매일 쓸개를 씹으며 재기를 노린 뒤에 결국 다시 일어나 오왕 부차를 죽이고 오국을 합병하기에 이른다.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 이전에 승리와 패배의 이후에 다가오는 상황의 역전을 설명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언제나 패자는 긴장하고 노력하며 재기를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과정을 거쳐 역전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 역전의 기반에는 언제나 승리의 함정에 빠져버린 승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 승리 뒤에는 언제나 자만과 방심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당연하게도 승리와 성공에는 본인의 노력은 필수이며 오히려 그 이외의 사회 제반 조건이 모두 힘을 합쳐 도와준, 외적인 요인이 훨씬 더 많이 작용했음을 알아햐 한다. 하지만 많은 승자들이 그 큰 성공이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 지기라도 한 것처럼 착각하고 긴장과 겸양의 끈을 놓아 버린다. 


정치도 그렇고 사업도 그렇고 인생이 모두 그렇다. 승리와 성공을 반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언제나 이 승리 뒤에 찾아오는 함정을 피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상황, 정권을 맡은 사람들과 대통령 본인은 오히려 승리의 함정을 지혜롭게 피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오히려 그의 지지자들이 그 짧은 시간 내에 이미 승리의 함정 속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걸어 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언론과 미디어를 대상으로 보여주는 집단적인 적개심, 대통령 호칭 문제를 둘러싼 소란스러움, 승리를 자축하는 것을 넘어 패배자들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행태, 기고만장과 오만방자가 넘쳐흐른다. 물론 얼마나 갈망하던 승리였기에 그러는가 하는 이해와 관용도 가능하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 보는 정치적 승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도에 지나쳐서는 곤란하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이와 거의 비슷한 현상을 나는 이미 오래전에 본 적이 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시도가 있었을 때 사람들은 똑같이 촛불을 들어 헌재를 압박하고 그 힘을 몰아 탄핵 심판을 좌절시켜 버렸다. 그 이후 소위 "왕의 귀환"을 축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러한 승리의 함정에 빠진 모습을 그대로 발견할 수 있었고, 그때의 노사모 내 일부 회원들의 모습은 노사모 내부에서도 지탄의 대상이 될 정도였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때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행태는 곧 일반 유권자 대중의 혐오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고 허니문 기간이 끝난 뒤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 뻔한 일이다. 즉 지지자들이 정권을 견인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고 있는 정권에 지지자들이 부담을 주는 앞뒤가 바뀐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러지 말아야 한다. 가장 크게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승리의 함정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승리자들을 몰락의 구렁텅이로 다시 처박은 가장 무서운 존재가 바로 이 승리의 함정이기도 하다.


누군가 한 이야기를 인용하며 결론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정권은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있는데, 지지자들이 왕정을 원하고 있다. 이래서야 되겠는가?


홍보 : <시대열전>에서 이 글을 영상으로 제작해 주셨습니다.


https://youtu.be/s0jsMiyNj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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