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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May 20. 2017

518 광주에 관한 가설들

518 광주를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자들이 만들어낸 무기들은 시대를 따라 변해왔다. 


처음에는 그게 "빨갱이들의 폭동"이었던 기억이 난다. 해방 이후에 많이 겪었던 일이기도 하고,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니까 빨갱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잘 이어지기도 하고.. 


내 윗세대 분들은 광주에 대해서 저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나누자면 "자발적인 봉기"를 나쁘게 표현한 거라고나 할까. 


이 대목에서 광주를 해외에서 표현할 때, uprising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광주는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일베 얼치기들 생각이 나서 살짝 웃어주자. 그거.. "봉기"라는 말도 있어.  


그런데 그게 어느 순간부터는 간첩들의 조직적인 활동에 속아 넘어간 광주 시민들이 일으킨 반란이 된다. 1980년이라는 시점에 빨갱이들이 자발적으로 봉기할 정도로 많았다는 사실도 불편했었나 보다. 차라리 스스로 봉기하는 빨갱이라고 하기보다는 간첩들의 선동에 속아 넘어간 우매한 민중으로 만드는 게 더 마음이 편했을까?


그렇게 간첩 선동설을 만들고 보니 김대중은 그 선동의 핵심에 있는 주동자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된다. 실제로 김대중은 이 혐의로 사형선고까지 받기도 했다. 근데 그런 선동질이나 하는 간첩의 두목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어 버린다. 이거 뭔가 말이 좀 안 맞잖아. 


그래서 나온 게 북한군 침투설이다.  


숫자도 제각각이다. 몇십 명의 특수부대원이 바다를 통해 광주에 잠입해서 무기를 탈취해 무장을 하고 게릴라 전을 전개한 것이라는 얘기에서부터 어떤 멍청한 자는 수천 명의 북한군이 광주에 있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 보세요, 수천 명이면 연대급이 넘어요. 그 병력이면 게릴라가 아니라 정규전 수행하는 규모인데 그게 휴전선 부근도 아니고 저 남쪽 광주에 어떻게 나타납니까? 


그러면 또 휴전선 넘어 광주까지 땅굴이 있다고 우긴다. 세상에.. 광주까지 땅굴을 어떻게 파냐고 반문하면, 부산까지도 파는데 광주는 왜 못 파냐고 반문을 한다. 


정상인들은 이미 이 즈음해서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되긴 하는데.. 


그래도 난 북한군이 광주에 개입했다는 억지와 관련해서 조갑제 기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부산 출신이면서도 기자정신을 발휘해서 80년 광주의 현장에 직접 가서 목숨을 걸고 발로 뛰는 취재를 했고, 그 결과 북한군 개입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기사를 냈으며, 그 판단을 평생 번복하지 않았다. 


심지어 친박의 이론적, 사상적 멘토가 되어 버린 지금에 와서도 북한군 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니 얘기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글도 쓰는 사람이다. 이런 건 좀 멋지지 않은가? 


결국 북한군 개입설은 미국의 공식 자료에 의해 반박되어 버린다. 미국이 그런 일 없다는 데, 시위할 때마다 성조기 휘두르는 사람들이 북한군 개입설 얘기를 또 어떻게 꺼내.. 


그래서 최종적으로 나온 것이 바로 518 유가족 과잉 특혜설이다. 그중에서도 공무원 취업 시 가산점이 과도하게 주어진다는 루머를 퍼트린다. 천 원짜리 열 장과 관계있는 지모씨가 주로 이 중앙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 518 유공자 본인과 가족들, 자녀들, 여기에 괄호치고 양자까지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양자는 가족 아니냐.. 모두에게 공무원 취업 시 가산점을 퍼줘서 일자리를 싹쓸이하고 있다는 얘기. 


2. 거기에 병역까지 단축 혜택을 준다고 주장. 


3. 거기에 과도한 보상금까지 준다고 주장. 


이런 루머가 칼같이 반박하기가 힘든 게 사실 가산점 주고 돈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1. 맞다. 가산점 준다. 그런데 518 유공자만 주는 게 아니라 모든 국가유공자, 독립운동 유공자 본인과 가족에게 국가고시, 임용고시에 5-10% 정도의 가산점을 준다. 그러니까 518 유족들에게만 별도로 주는 제도 같은 건 없고, 그냥 국가 유공자 항목에 518 유공자를 포함시켜 준 것이다. 이것도 억울해? 


2. 병역단축 혜택 따위는 하나도 없다. 그냥 군대 가서 박박 기며 고생할 젊은이들을 어떻게 유혹해 보려는 개수작이다. 그냥 통째로 거짓말. 


3. 과도한 보상금?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순직했다고 치자. 그러면 호프만 방식으로 남은 생애를 계산해서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것도 보상위원회에서 복잡한 선정 절차를 거쳐 준다. 법에 의해서 주는 거라는 얘기다. 무슨 떼돈을 퍼주는 게 아니다. 국가 유공자로 분류되면 당연히 줄 돈을 주는 거고, 그 이외에 무슨 특별 보상금 따위는 없다. 그걸로 집 사고 차 살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가.. 이런 혜택을 보는 518 유가족들이 몇이나 될까? 


국가기관에 취직한 모든 사람들 중에 국가 유공자로 분류되어 가산점 혜택을 본 사람이 3만 명이 넘는다. 32,751명. 


그중에 518 가족이 391명. 


518로 죽은 사람이 수백 명 (난 사실 이 공식 숫자도 못 믿겠다.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수천 명이라고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도.. 공식 숫자는 공식이라서 힘을 가진다.)이 넘고 부상자, 기타 피해자들을 합치면 그 숫자는 상당하다. 거기에 가족까지 다 산정하면 수천수만 명이 넘을 것이다. 


그중에 391명이라고. 


국가유공자 3만 명 중에 518 유공자 391명. 


이게 그렇게 억울해? 이게 그렇게 아까워? 국가가 멀쩡한 국민을 죽여 놓고 겨우 그거 보상하는 게 아까워? 


어차피 그 숫자로는 싹쓸이 근처에도 가지 못하지만, 또 다른 규정도 있다. 싹쓸이 자체를 막기 위해 이렇게 가산점을 받는 국가 유공자들이 대거 공무원에 진출하게 될까 봐, 가산점 혜택을 받는 사람은 합격자의 30%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까지 그어 놨다. 우리나라 그렇게 허술한 나라 아니다.


결국 공무원 일자리를 518 유공자들이 싹쓸이해 간다는 주장은 뭐 그냥 공무원 자리에 목을 매는 공시생 젊은이들을 화나게 만들려는 의도 이외에는 뭐 하나 제대로 된 주장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용의 유인물이 엄청나게 뿌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왜? 효과가 있으니까.


이런 루머가 퍼지고 힘을 받는 이유는 알겠다. 가뜩이나 심한 취업난에 어떻게든 공무원 한 번 해 보겠다고 그 높은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몇 년씩 닭장 같은 고시원에서 수도승처럼 살고 있는 공시생들에게 518 유가족들이 공무원 시험을 싹쓸이해 먹기 때문에 니들에게는 자리가 없어..라는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거 거짓말이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다. 


자 이제 518 유가족 가산점 싹쓸이 루머가 힘을 잃으면 그다음에는 무슨 루머가 올 차례일까? 


518 광주는 제3세계 노동자들이 들어와 한국을 접수하려고 일으킨 침략 전쟁이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다. 


어.. 그럴싸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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