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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08. 2017

바지락의 추억


나 어렸던 시절, 아버님께서는 5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평생 재직하신 소방관을 정년퇴직하신 뒤, 간척지 논을 분양받아 농사를 지으러 내려가셨다. 결국 서울집에 남은 누님과 나는 자취 비슷하게 살면서 학교를 다니고 방학만 되면 시골집에 내려가 농사일도 돕고 시골생활을 만끽하면서 살게 되었었는데, 그 시절 생겼던 일이다. 


그게 80년대였으니 벌써 꽤 오래된 일인 듯하다. 당시만 해도 서해안의 대부분의 해안선은 간첩의 침투를 막기 위해 철조망이 쳐 있었고, 일반인들은 함부로 해안선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 결과 갯벌에는 조개들이 거의 무한정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시골집에서 가까운 서해안 바닷가에 이화리라는 동네가 있었다. 그 동네에 가끔씩 마을에서 허가를 받아 해안 경비하는 군인들에게 신고를 하고 단체로 바지락을 캐러 들어가곤 했었는데, 하루는 어머님이 거기에 합류하시겠다고 나서신 것이었다.


그거 가서 캐봐야 바지락이나 한 바가지 주워 오겠지~ 하면서 비웃으시던 아버님의 기대와는 달리, 좀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아침에 물때 시간 맞춰 주민등록증 챙겨서 나가신 어머님이 마을에서 함께 갔던 동네 아저씨 경운기를 타고 돌아오셨는데..


십 킬로는 넘게 들어가는 양파자루로 바지락을 열 자루가 넘게 잡아오신 거였다. 아니 도대체 무슨 조개를 이렇게나 많이 주어 오셨어요? 하는 우리들의 질문에 어머님께서 하신 말씀은..


“이화리 갯벌은 개흙보다 바지락이 더 많어.”


공사할 때 시멘트 거르는 커다란 체를 동네 아저씨가 가지고 가서, 개흙을 삽으로 퍼 체에 얹고 바닷물에 설렁설렁 저으면 고운 개흙은 빠져나가고 바지락만 남는 거다. 그러고 나면 그냥 퍼담으면 그게 전부 살찐 바지락이니 양파자루 열자로 쯤이야 두어 시간이면 오케이. 조개를 주어 오신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퍼담아 오신 거였다. 함께 갔던 동네 아주머니들 모두 일인당 백 킬로 정도씩 잡아오신 거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이 엄청나고 거대한 양의 바지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놔두면 썩을 거고 삶아 먹자니 한도 없고..


이웃집의 의견을 물어 물어 내린 결론은 이 바지락을 싱싱할 때 몽땅 가마솥에 삶아서 까서 살만 골라낸 뒤 싸릿발에 말려서 담아두고 미역국이나 된장찌개 끓일 때 한주먹씩 넣어서 먹으면 되는 거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난 막중한 임무를 띠고 가마솥 올린 아궁이에 불을 때기 시작했다. 백 킬로가 넘는 바지락 삶기 대작전. 한 솥에 기껏 넣어봐야 삼 킬로(기억에 혼돈인지, 고증에 문제가 발생했다. 가마솥이라면 3킬로 보다는 훨씬 더 많이 들어갈 듯.) 정도 들어가니까.. 삼사십 번은 족히 삶아야 된다는 거다.


처음에는 행복했다. 한번 물을 팔팔 끓여서 바지락을 넣고 조금 더 불을 때면 바지락들이 입을 다 쩍쩍 벌린다. 그러면 아부지께서 체로 건져서 온 가족이 달려들어 껍질을 까고 그 사이에 나는 또 불을 때서 바지락을 삶는 거다. 분업체계가 생성되고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총동원 체제가 만들어졌다.


알다시피 싱싱한 바지락을 맑은 물에 삶으면, 그 살이 맛이 기가 막히다. 한도 없이 까먹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까먹다가 목이 메면 바지락 삶은 물을 한 대접 들이키면 시원하기 이를 데가 없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바지락만 삶다가 나중에는 국물 맛을 위해 파도 썰어 넣고 마늘도 썰어 넣고 할수록 국물은 그 맛이 더해진다.


아마 바지락을 일 킬로는 넘게 까먹은 것 같았다. 국물도 1리터는 넘게 마신 듯했다.


그러다가 슬슬 미각의 한도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점점 바지락 국물의 시원함이 아니꼬움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바지락 삶는 냄새조차 맡기 싫어진다. 그래도 참고 계속 바지락을 가마솥에 삶는다. 이젠 가마솥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바지락 삶는 냄새는 푹 삭은 홍어 냄새 비슷하게 느껴진다. 막 구역질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직도 옆에는 빠그락 빠그락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바지락이 오십 킬로는 넘게 쌓여 있었다.


이젠 슬슬 공포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마 저거 다 삶다 보면 내 후각은 맛이 가고, 난 아궁이에다가 토하고 말 거야.. 싶은 생각이 든다.


싸릿발에 널려 있는 바지락 무데기가 마치 근접해서는 안 되는 똥덩어리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악전고투 끝에 바지락 백 킬로를 다 삶아서 까서 발에 널어놓고 가족들이 모여 앉았다. 그리고 아부지께서 한 말씀하신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당분간 해산물은 먹지 말도록 하자. 


그렇게 감당하기 힘든 바지락의 추억은 막을 내렸다. 그리고도 일 년이 넘는 동안 우리는 밥상에 올라오는 국과 찌개에 들어 있는 바지락은 다 골라 버리다가 어머니한테 혼나곤 하는 일상을 살아야만 했다.


요즘은 서해안 어딜 가도 이렇게 바지락이 흔한 곳은 없을 것이다. 지난 시절의 얘기일 뿐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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