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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Sep 19. 2017

도박은 나쁜 짓인가?

텍사스 홀덤 스토리 (2)

도박이라는 것...


아마 우리 사회의 성인 남자라면 이 도박에 대한 주제로 술자리에서 한두 시간 떠들지 못할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다들 한 가닥씩 하는 얘깃거리다. 그러니 도박이 어떻고 도박 중독이 어떻고 도박의 폐해가 어떻고 하는 도박의 나쁜 점에 대해서 줄줄이 읊을 사람은 도처에 널려 있다. 


하지만 그 반대로 뭔가 멋져 보이는 타짜들의 세계, 사기도박 - 그 속고 속이는 정글의 미학, 뭐 이런 소재들은 어차피 일반인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쉽사리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매력적인 스토리들인 것도 사실이다. 


분명히 부도덕하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도박,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도박에 대한 관심을 끊지 못하고,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도박이라는 것이 꾸준히 전해져 내려오게 된 것일까?


도박은 기본적으로 돈을 걸고 하는 경기의 일종이다. 그것도 상당히 운과 확률에 의존하는 경기이다. 법적으로도 이 "운과 확률"이 도박을 정의하는 기본적인 개념 중 하나이다. 바로 거기에서 도박이 주는 폐해와 매력이 동시에 출발한다고 본다면 틀린 소리는 아닐 것이다. 


도박 중독자들의 경우, 이 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서 스스로 무너져간다. 특히나 돈을 땄을 때 보다 바로 코앞에서 아쉽게 돈을 놓칠 때 더 자극을 받으면서 쾌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거의 잡았던 행운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 차를 날리고 집을 날리고 회사를 날리고 모든 재산을 날리고 패가망신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운은 그 사람을 절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도박중독에 빠진 사람들이 크게 한탕을 해서 잃었던 돈을 회복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를 못했다. 우연찮게 거액의 돈을 딴 사람들은 대부분 곧바로 그 돈을 몽땅 허비하게 되고 다시 인생 막장의 길로 굴러 떨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이 말이 맞다. 


누구나 이런 얘길 듣고 자라게 된다. 도박에 빠지면 네 인생은 끝장이다. 도박을 멀리해라. 심지어 엄격한 가정교육을 하는 집에서는 가족이나 친척끼리 즐기는 화투놀이조차도 금기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가정에서도 명절 때나 집들이할 때, 또는 잔칫집이나 초상집에서 고스톱 한 판 안쳐본 사람 찾기 힘들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훌라나 포커 한 판 안쳐본 사람도 역시 찾기 힘들고 내기 당구 한 번 안 쳐본 사람도 별로 없다. 어떤 사람들은 영 소질이 없어 몇 판만 해 보고 안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잡기에 능한 소질을 타고난 사람들은 심심찮게 그런 종류의 친선 게임을 즐기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개중에는 심심찮게 푼돈을 따서 용돈에 보태는 사람들도 있다. 


즉, 도박은 그 본질적인 우연성이라는 것 때문에, 아주 불쾌하고 폐해가 가득한 잘못된 놀이문화의 위치를 차지함과 동시에 야누스의 다른 얼굴처럼 아주 매력적이고 빠져들기 쉬운 하나의 놀이 문화로써 계승되고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의미를 광범위하게 확장시켜 보자. 도박이 돈을 걸고 승부를 겨루는 경기라는 측면을 확대 적용시켜 본다면, 모든 종류의 프로스포츠 역시 도박에 해당된다. 심지어 주식투자도 도박에 가깝다. 내가 어떤 종목의 주식을 살 것인가, 얼마만큼의 돈을 투자해서 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에 따라 나한테 돌아오는 수익이 달라진다. 주식투자도 도박이다. 심지어 내가 작은 사업을 하나 시작한다 해도, 역시 돈을 걸고 판단과 선택을 한 뒤 수익을 얻게 되기도 하고 손실을 보기도 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도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활동을 도박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단지 우연과 확률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행위에 임하는 사람의 노력, 그 노력의 결과로 생겨난 실력,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방해, 우리 인생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깃들여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우연과 실력, 이 두 가지 요인 중에서 결과를 정하는 과정에서 우연이 강하게 작용하면 도박, 노력에 의한 실력이 더 크게 작용한다면 정상적인 행위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어떤 승부를 가리는 경기에서도 우연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아무리 순수하게 실력으로 승부를 가른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우연은 작용하기 마련이다. 


쉽게 말하자면 운칠기삼이면 도박, 운삼기칠이면 정상. 이런 거 아니겠는가 하는 말이다. 


법적으로는 재미있는 판례가 있다. 보통 일반적으로는 내기골프를 도박으로 인정해 처벌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2003년 서울 남부지법의 이정렬 판사(이 분은 몇 년 전에 모종의 사건과 관련해서 부장판사 직을 그만두고 일반인의 신분으로 돌아왔다.)는 억대 내기골프를 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피고에게 도박에 관한 부분은 무죄라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다. 그때 판결문의 취지는 골프에서의 결과는 주로 양측의 실력에 의해 결정이 되고, 사소한 우연이 깃든다 하더라도 그 영향이 작으므로, 비록 일반인들의 상식과 법 감정에 위배되기는 하지만 내기골프를 도박이라 볼 수는 없다는 판결을 내려 파문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물론 그 뒤에 다른 많은 판례에서는 기존의 입장과 동일한 "도박죄를 처벌하는 이유는 정당한 근로에 의하지 아니한 재물의 취득을 처벌함으로써 경제에 관한 건전한 도덕 법칙을 보호하는 데에 있고, 내기골프를 화투 등에 의한 도박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식의 판결들이 다수 나온 것도 사실이다.


일반인들의 법 감정은 그렇다. 억대의 돈이 걸린 내기골프가 당연히 도박이지 어떻게 도박이 아닐 수 있냐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기골프에서 걸리는 판돈의 수백 배 이상을 기업들이 걸고 벌이는 프로야구 같은 것은 아무도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똑같이 골프를 쳐도 엄청난 상금이 걸린 LPGA 경기는 도박이 아니고, 개인들이 하는 내기골프는 도박이 된다. 


이 두 가지 경우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 양쪽의 차이점을 발견하기 힘들다. 단언컨대 단지 개인과 거대 자본이라는 차이점 말고는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 


복권사업이나 경마는 더하다. 국가의 통제하에 시행되는 이 사업들은, 거의 전적으로 운에 의존한다. 복권이야 백 프로 운에 달린 일이고, 경마는 그나마 말들과 기수들에 대한 연구가 따르면서 약간의 노력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런 불공평을 사람들이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일반인들의 시각이 매우 국가주의적이고 친자본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반대한다. 기업이 해도 되는 일이라면 개인도 해도 된다. 개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 기업도 해서는 안 된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로 동일한 도덕률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나는 해서는 안되고 국가나 기업은 해도 된다는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불쾌할뿐더러 옳지도 않은 일이다. 어쨌든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아니 오히려 이제 새롭게 시작되어야 하는 논쟁일 수도 있다. 


잠시 얘기가 곁가지로 흘렀지만, 핵심은 이런 것이다. 


결론적으로 도박은 나쁜 짓이며, 그게 나쁜 짓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연성에 입각해서 돈을 거래한다는 것, 이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텍사스 홀덤은 어떨까? 


당연히 돈 걸고 하는 카드게임인데 도박이다. 텍사스 홀덤 중에서도 흔히 카지노에서 아무 테이블에나 앉아서 하는 캐시 게임, 즉 바로 돈을 걸고 서로 따먹는 게임은 의심할 여지없이 도박이다. 기본적으로 딜러가 나눠주는 카드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므로 우연에 기반한 게임이고 그 우연성 때문에 도박이 된다. 거기에 손에 든 두 장의 패가 가지는 승률 계산, 상대의 카드를 읽어내는 능력, 판돈과 내 승률을 비교해서 베팅할 액수를 정하는 기술, 앞으로 나올 카드들에 대한 확률 계산, 테이블 내의 모든 참가자들의 행동을 예측하고 분석하는 전략적 마인드, 이런 실력들이 작용한다고 해도 여전히 운에 의존해서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자. 


텍사스 홀덤 토너먼트는 어떨까? 모든 참가자가 동등한 참가비를 내고 경기에 참여한다. 그들에게는 동일한 양의 칩이 주어지고, 그 칩이 다 떨어지면 탈락된다. 그렇게 점차 줄어들어 가는 선수들 사이에서 장기적인 전략을 활용하여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된다. 그리고 그 순위에 따라 사전에 정해진 상금이 지급된다. 


이 과정은 전국적인 방송망을 통해 송출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력자들의 베팅과 블러핑(마치 순위가 높은 패를 가진 것처럼 가장하는 행위)을 보면서 감탄하고, 놀라고, 웃으면서 즐거워한다. 그 방송의 사이사이 각종 광고가 삽입되어 주최 측의 수익을 늘려준다. 


이런 종류의 게임이 과연 우리나라에서 많은 시청자를 거느리고 있는 스타크래프트 리그나 LPGA 여성 골프, 심지어 한국시리즈 프로야구나 NBA 미국 프로야구, 유럽 축구의 프리미어 리그와 다를 게 뭔지 진짜 모르겠다. 심지어 그런 경기들의 결과를 놓고 맞추면 돈을 따는 복권사업까지 행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수백에서 수천 명이 참여하는 토너먼트에서는 운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지극히 축소된다. 좋은 카드가 계속 들어올 리도 없고, 수백 판 수천 판의 게임이 진행되어야 하는 탓에 나에게 들어오는 카드의 승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장기적인 칩 관리가 중요해지며, 수많은 상대를 이겨야 하기 때문에 그때 그때 상대에 맞춘 다양한 전략이 무엇보다도 중요해진다.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체력도 중요하고, 자신을 숨기고 상대를 읽어내기 위한 모든 두뇌싸움이 동원된다. 이제 운삼기칠도 아니고 운일기구 수준까지 올라갔다. 


그렇다면 이 텍사스 홀덤 토너먼트는 도박인가? 


현재 우리 사회에는 카드를 가지고 돈을 걸고 하는 모든 게임, 말 그대로 모든 게임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이 텍사스 홀덤 토너먼트 같은 것도 개최할 수가 없다. 온라인 게임 사이트에서 간혹 텍사스 홀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돈이 아닌 무의미한 포인트를 걸고 개최하게 되어 있다. 그 포인트들을 뒤에서 거래를 하고 말고는 지엽적인 얘기니까 넘어가자. 


그런데도 역시나 몇몇 보드게임 카페들은 비공식적으로 이 홀덤 토너먼트를 개최하고 있다. 텍사스 홀덤만을 전문으로 하는 홀덤 카페도 심심찮게 눈에 뜨인다. 물론 단속대상이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참가비를 받지 않고(사실은 무슨 음료수 값이나 입장료 비슷한 형태로 받겠지만) 우승 상금도 현금이 아닌 상품권을 주고 뭐 그러는 모양이다. 그래 봤자 편법이지 기본적으로는 사행성 게임이라는 잣대에 따라 전부 단속대상이 된다. 


즉 텍사스 홀덤 토너먼트가 아무리 도박이 아니라고 우겨봐야 현행법상 불법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텍사스 홀덤은 부도덕한 경기인가? 이 질문에 대해 내가 내리는 답은 아니오라는 것이다. 그게 부도덕하다면, 골프도 프로야구도 프로축구도 아니 모든 종류의 프로스포츠도 다 부도덕하다. 난 내가, 또 나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겨보는 그런 프로 스포츠들이 부도덕한 경기라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니 그런 프로 스포츠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메커니즘으로 치러지는 홀덤 토너먼트 역시 부도덕한 경기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는 얘기일 뿐이다. 


오히려 타고난 체형이나 체력 등 육체적 기능이 부족한 사람들은 참여하기도 힘든 각종 스포츠에 비해, 오로지 두뇌를 가지고 겨루는 홀덤 토너먼트가 더 민주적인 경기일 수도 있다. 바둑이나 체스같이 말이다. 물론 이런 지적인 경기들, 흔히 말하는 두뇌 스포츠들 역시 타고난 지능이 꽤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체력이나 체질, 혹은 지능이나 집중력 등을 겨루는 똑같은 게임들이라는 얘기다. 


말이 나온 김에 바둑과도 비교해 보자. 어려서부터 바둑을 연습하고 프로에 입문한 바둑의 강자들은 각종 대회에 나가 상금을 걸고 경기를 벌인다. 그리고 승자는 그 상금을 얻게 되고, 많은 팬이 생기고, 그의 바둑 실력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다. 심지어 바둑 잘 둔다고 군대까지 면제해 준다. 한 때 세계 바둑계를 평정했던 이창호 선수는 국회의 특별한 동의 하에 군대 복무를 면제받았었다. 이런 게임이 부도덕할 수가 있을까? 


단지 하나는 검고 흰 돌을 가지고 하고, 또 다른 하나는 카드를 가지고 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 말이다. 


역으로 생각해서, 텍사스 홀덤에는 테이블 캐시 게임 같이 즉석에서 돈을 걸고 하는 도박성 게임도 있으니 부도덕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전국에 깔려있는 수많은 (물론 예전만큼 많지는 않지만) 기원에서 밤마다 행해지는 속칭 “방내기” (한 집당 얼마씩 걸고 두는 돈내기 바둑 경기)는 어째야 한단 말인가? 


즉, 최소한 텍사스 홀덤 토너먼트는 부도덕한 경기는 아니다.


그런 기본적인 결론을 가지고, 홀덤 게임 자체가 불법이 아닌 미국 사회(물론 주마다 다른 법규를 가지고 있다. 어떤 주에서는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있기도 하다.)에서는 도대체 어떤 형태로 그런 게임들이 운영되고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그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지, 이런 점들을 찾아서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나 돈을 벌고 있으며, 그 정도 돈을 벌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두뇌가 필요한지. 그리고 어떤 인간들이 그런 게임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지, 또 어떤 사람들은 큰돈은 못 벌어도 꾸준히 일정한 수준의 돈을 벌고 있는지,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이 섣불리 덤벼 들었다가 돈을 날리고 있는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사실 이게 제일 궁금한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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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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