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성호 Sep 24. 2017

어느 프로 갬블러의 인생-1

텍사스 홀덤 스토리(6)


프로 갬블러라고 하면 뭔가 음험한 매력이 느껴진다. 허영만의 명작 만화 타짜에 등장하는 갬블러들은 항상 목숨을 걸고 경기에 임한다. 실제로 타짜의 스토리 작가였던 김세영 씨는 프로 갬블러 수준의 도박에 대한 이해가 있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허영만 화백 본인도 상당한 수준의 애호가인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손만 쓱 지나가면 손바닥에 카드장이 달라붙는다거나, 카드를 섞으면서 원하는 카드를 한 곳으로 몰아 원하는 사람에게 돌릴 수 있다거나, 뭐 이런 고난도 속임수에 관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는 괴이한 인물들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런 형태의 어둠 속의 도박장은 일반인들의 영역이 아니다. 물론 그런 일들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도 어디선가 할 일 없고 좀 더 자극적인 유희를 찾는 부유층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일수도 있다. 또한 조직 폭력집단과 사기꾼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두 가지 부류 모두 우리가 가까이할 대상들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정상적인 프로 갬블러의 숫자는 알아낼 방법이 없다. 무슨 협회가 있어서 등록하는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도 구분이 모호하다. 기껏 해봐야, 본업이 따로 있고 가끔 카지노에 가서 홀덤을 즐기는 사람은 아마추어, 자신의 모든 시간을 홀덤에서 얻으며 그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선수를 프로라고 구분하는 정도랄까.


대회에서도 그런 구분 없이 참가 신청을 받는다. 실질적으로 참가비만 낸다면 참가하지 못할 대회라는 것은 없다. 물론 초반에 탈락하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현재 활동하는 미국의 홀덤 프로라면 앞에서 말한 타짜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소박한 사람들이다. 속임수 따위는 할 줄 모른다. 단지 홀덤 게임의 운영에 있어 남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좀 더 치밀하게 게임을 분석하고, 장기적인 게임 운영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의 수입은 만만치 않으면서 또한 합법적이다. 세금도 무척 많이 낸다.


매스컴에 알려질 정도의 홀덤 프로라면 수십만 불의 연간 수입을 어렵지 않게 올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만 수백수천 명.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캐시 게임에서 꾸준히 재미를 보고 있는 홀덤 프로까지 합치면 수만 명. 미 전역에서 홀덤 게임에 관심을 가진 애호가들이 수백만 명을 넘는 시장을 형성하고 있으니 사실 홀덤 좋아하는 사람의 몇 프로 정도가 프로로 활동을 할 것이라는 예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중에 한 명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마이애미라는 별명을 쓰는 분이다.


미국 플로리다에 거주하면서 지역 카지노에서 주로 활동하고 비록 특 A급 거물 프로 갬블러는 아니지만, 몇 가지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면서 지역 언론에 노출된 적도 있는, 미국 사회 내의 홀덤 프로들의 실상에 대해 생생한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한 그런 분이 되시겠다.


처음 마이애미 님을 만났을 때 내가 받은 느낌은 참 선량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분께서 절대로 자신을 아저씨로 표기하지 말아달라고 요청을 했다는 점은 적어두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왜 그러냐 했더니.. 형이라 불러 달라 신다. 형이라니..


다들 잘 아실 정도로 유명해진 미국의 살인적인 치과 치료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와 치과 치료를 받는 중에 창간 때부터 애독하던 딴지일보의 딴지스들과의 만남을 원하는 상황이었고, 얼마 전에 성대하게 거행된 딴지 필진 모임에도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해서는 딴지 총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사진까지 찍어 가셨다.


그렇지만, 사진 공개는 거절하셨고 실명 공개 역시 거절하셨다. 아무래도 국내에서 환영받기 힘든 직업이라서 그런 걸까 생각했더니, 민망해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스로 홀덤 프로라고 소개하는 것조차도 조금은 민망해하는 성격의 인물이었고, 미국으로 건너가 나름대로 사업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며, 사업체를 부인에게 맡기고 홀덤에 전적으로 뛰어든 지 이년이 좀 넘어가는 그런 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홀덤에 전적으로 시간을 투입하고 있고,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 홀덤 프로라 불러도 하등의 문제는 없다.


아래는 마이애미 님을 만나 직접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들을 물어본 뒤 답변을 녹음해서 정리한 내용이다.


(이하 물뚝심송=물, 마이애미=마)


---------------


물 : 독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에 대해서 한 말씀하신다면?


마 : 젊은 여성이 하나 있어요. 이제 겨우 27살인데, 베트남 출신이죠. 대학교 때 배운 실력으로 홀덤 프로를 하고 있으면서, 연간 60만 불을 벌고 있다는 거죠.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이 머리는 더 좋은데, 왜 우리나라 사람들도 충분히 저보다 나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데 저만한 사람들이 왜 없는가 이겁니다. 


(이 여성 홀덤 프로는 베트남 혈통이며 대만 출신의 마리아 호, Maria Ho이다. 토너먼트에 출전하지 않으면서도 100불/200불 규모의 리밋 베팅 홀덤 캐시 게임에 참가해서 꾸준히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러니까 진짜 프로 갬블러다. )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젊은이들 말고, 기회를 얻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런 친구들 중에 스스로 소질이 있고, 배우려 하는 열정이 있으며,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홀덤 시장이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게 그렇게 비도덕적인 일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래서 이 홀덤의 세계에 대한 얘기를 꺼내고 싶어 진 겁니다.


물 : 어쩌다가 텍사스 홀덤 경기를 직업으로 삼게 되신 건가요?


마 : 제가 조그마한 가게를 하고 있었어요. (결코 작은 규모의 가게는 아닌 것 같던데..) 그런데 그 가게에서 일하시는 분이 있었는데, 나이가 좀 된 여자분이에요. 미국인이죠. 남편도 돈을 잘 벌고 그러는데 제 가게에 와서 일을 하더라는 거죠.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는 10년 전쯤까진 슬롯머신이 합법이라서 동네마다 그게 넘쳐난 겁니다. 그런데 이 분이 그걸 하면서 돈을 많이 잃었다는 거예요. 실수를 한 거죠. 그런데 제가 그분을 참 좋게 본 것은, 크레디트 카드를 만들어서 그걸로 돈을 빌려 슬롯머신에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갚기 위해서 남편에게 손을 안 벌리더라는 겁니다. 남편의 돈은 가정의 생활에 그대로 쓰고, 자기가 실수해서 진 빚은 자기가 우리 가게에 와서 일을 해서 갚더라는 거죠. 아주 열심히 일하는 분이었습니다.


다행인 것은 슬롯머신이 불법화되어서 다 없어지고, 이 분도 손을 뗀 뒤, 자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빚도 다 갚았어요. 한 이 년 동안 일해서 다 갚더라고요. 그러면 다 정리가 된 건데, 버릇이 또 발동한 거죠. (웃음)


(역시나 도박의 중독성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일화라고 볼 수 있다.)


조지아에 있는 사바나라는 곳에 카지노를 또 가더군요. 그분이 거길 가는 걸 알았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이고, 자기가 번 돈은 이제 자기가 써도 될 정도의 상황이니까 내버려 뒀죠. 그런데 어느 날 저보고 같이 가자고 그러더라고요.


물 : 그때까지는 카지노에도 한 번도 안 가보신 겁니까?


마 : 가보기야 가 봤죠. 사업 일로 여기저기 다른 도시에 가면, 라스베이거스에도 가게 되고, 그러면 카지노에 부부가 함께 가서, 몇백 불 정도 간단히 즐기고 그러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그분을 따라서 집사람하고 또 같이 갔는데, 그분이 텍사스 홀덤을 하시더라고요. 옆에서 구경을 하는데....


사람들이 정말 못하더라고요.


(서양사람들의 수학적 머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다. 물론 수학을 이끌어 나가는 천재들도 그들이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이다. )


아무것도 모르는 제 눈으로 봐도, 그 자리에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전부다 못하는 걸로 보였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같이 했지요. 룰도 완전히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앉아서 같이 했는데 그 자리에서 대략 300불 정도를 땄어요. 집사람은 블랙잭을 했었고요.


그리고 그다음에 또 가서 그 분하고 같이 카드를 하면서 룰을 배우고 그러다가 보니까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 게임에 소질이 있구나..


(이 표현에 대해서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소질이라기보다는 이 게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아무리 소질이 있어도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게임을 앉은자리에서 35시간까지 할 도리는 없다. 이 얘기는 뒤에 나온다.)


그렇게 게임을 배워가는데 사람들이 제가 못 알아들을 팟 오즈 같은 소리를 하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그 경기에 대해 이런저런 책을 읽고, 모르는 개념들을 배워가고, 또 스스로 부족한 점을 깨달아서 더 공부를 하고, 이렇게 점점 빠져든 거죠.


그러다가 한 이년 전부터는 사업을 모두 집사람에게 넘기고, 저는 이쪽으로 완전히 나선 겁니다. 이른바 프로가 된 거죠. 그래도 아직은 스타급 프로는 아니고, 그저 평균적으로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는 정도.. 이렇게 된 겁니다.


물 : 아마 제일 궁금한 내용일 텐데.. 평균적으로 월 얼마나 버십니까?


마 : 월평균 대략 수천 불 정도.. 이렇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정확한 액수는 공개하기가 곤란합니다. 세금 문제도 있고..


(이렇게 홀덤 게임에서 벌어들인 수익도 모두 신고하고 소득세를 내야 하는 곳이 미국 사회다. 또 그렇게 세금을 낸 대가로 보호를 받게 되기도 하고, 각종 혜택을 누리게 되는 거다. 이게 기본이다. )


년 단위로 따지면 몇만 불 이상 수입이 있는 것 같은데, 월로 치면 약간 불규칙해요. 훨씬 더 많이 버는 달이 있는가 하면, 적자가 나는 달도 있거든요. 전체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물 : 연 몇만 불이면 그렇게 많은 수입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마 : 그렇죠. 유명한 프로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죠. 제가 이름을 알만한 프로들은 대부분 수백만 불 이상의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티브이에 나와 인터뷰도 하고 게임 중계에도 나오고 하는 프로들이죠. 저야 뭐, 그냥 지역에서 즐기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수입까지 있다.. 이게 제일 큰 장점이라고 보는 겁니다.


(역시 마찬가지이다. 진짜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고 그게 발현되기 시작했다면, 수십만 불에서 수백만 불씩 벌어들이는 스타급 홀덤 프로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이애미 님은 아직 그런 수준은 아니다. 어쩌면 은퇴할 때 까지도 그런 수준에 가기 힘들 수도 있다. 실제로 카지노의 캐시 게임이나 각종 소규모 토너먼트에서 꾸준한 성과를 올리면서 이 분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홀덤 인구의 2-3% 정도는 된다고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즐기면서 수입을 올리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물 : 그 정도를 벌기 위해선 게임을 얼마나 치러야 하나요?


마 : 한 주에 한 서너 번 정도 갑니다. 한번 가서 하루 종일 하는 것은 아니고, 대여섯 시간.. 계속할 때도 있지만, 한두 시간 하고 쉬다가 또 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테이블이 나한테 잘 맞으면 좀 더하고, 잘 안 맞고 배드 빗(홀덤 용어: 예기치 못한 카드가 나오면서 승부가 뒤집히는 경우) 같은 게 자꾸 나오고 그러면 좀 덜하고 그러는 거죠.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


<알려드립니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자발적 후불제 원고료를 지불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지불 방법도 아주 쉽습니다. 


https://brunch.co.kr/@murutukus/140

매거진의 이전글 캐시 게임과 토너먼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