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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Sep 25. 2017

어느 프로 갬블러의 인생-2

텍사스 홀덤 스토리 (7)

물 : 주로 어떤 규모의 경기에 참여하십니까?


마 : 요즘 제가 주로 게임을 하는 곳은 잭슨빌 포커룸, 오렌지 파크 케넬 클럽이라는 곳이에요. 거기에서 제일 큰 규모의 게임이 작년까진 5불/10불(홀덤 게임은 스몰 블라인드, 빅 블라인드의 액수로 규모가 결정된다.)짜리 게임이 제일 컸습니다. 주로 거기에서 했는데, 최근에는 그보다 더 큰 규모의 게임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젊은 강자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거기가 어려워지더군요. 그래서 한 칸 아래 등급의 게임을 주로 하게 되었습니다.

물 : 그렇다면.. 젊은 샤크(강자들을 의미하는 홀덤 용어)들한테 밀려난다는, 약간은 서글픈 상황이 되는 건가요?

마 : 굳이 꼭 그런 건 아닌데, 중요한 것은 자기가 테이블을 지배할 수 있는 곳에서 플레이를 하는 것이죠. 테이블에 나보다 강한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테이블을 지배하기 시작하면 경기는 어려워집니다. 거기다가, 그런 강자들이 둘 이상이 있다면 승률은 급속히 떨어지게 되는 겁니다.

차라리 규모가 더 작더라도 승률이 좋은 곳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안정된 경기 운영에 도움이 되는 것이겠죠.

(홀덤 경기는 테이블의 판돈 규모에 따라 참가자들의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난다. 비록 규모가 큰 게임에서 많이 벌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액수가 클수록 쟁쟁한 프로들의 비율이 높아진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적절한 수준, 적절한 규모의 테이블을 찾아가는 것. 즉 자신의 수준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 보인다.)

물 : 경기하시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마 : 얼마 안 된 기억인데요, 한 달 정도 되었나 싶은데, 팔백 불로 게임을 하던 중인데 겨우 80불이 남은 겁니다. 그래서 아, 오늘은 안 되는 날이구나, 하고서는 이 80불이 떨어지면 그만둬야겠다 하던 중인데 바로 옆자리에 한 사람이 새로 앉더니 500불어치 칩을 사는 겁니다. 그 테이블 맥시멈이 500불이었거든요. 그런데 경기를 해 보니, 정말 정말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방식의 게임을 하더라고요. 판단도 못하고 블러핑만 자꾸 하고 그러는 겁니다. 소위 말하는 피쉬(홀덤 판에서 고수들에게 돈을 가져다 바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였던 거죠.

거기다가, 그 사람의 스타일이 저한테 정말 너무 쉽게 읽히는 겁니다. 아무리 경기를 못해도 잘 안 읽히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이 사람은 말 그대로 투명하게 속이 들여다 보였다는 겁니다. 그 사람은 정말로 재수가 없던 거죠. 하필 타고난 천적 옆에 앉게 된 거죠.

결과적으로 그 사람은 한 세 시간 만에 오천 불 이상을 잃었습니다. 맥시멈 칩을 열 번 이상 사서 다 날린 거죠. 이렇게 플레이하면 절대 안 됩니다. 이런 경우는 진짜 보기 드문 일이죠. 이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물 : 술이 취했던 거 아닌가요?

마 : 술도 전혀 안 먹은 상태였어요. 그렇게 세 시간 만에 그리 많은 돈을 다 잃고, 저는 세 시간 만에 사천팔백 불 정도를.. 딴 거죠. (웃음.. )

물 : 말 그대로 돈을 전부 강탈하신 거군요. ㅎㅎㅎ

마 : 그렇게 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강탈한 게 아니라 그냥 제게 돈을 준거죠. 저는 일찍 끝내고 가려고 했고 또 잘되어도 본전만 찾으면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옆에서 자꾸 돈을 주니까 저도 못 일어나죠. 결국 그 사람이 일어나더군요. 일어나면서 하는 얘기가..

"다시는 당신을 포커 테이블에서 보고 싶지 않다!"

그러고 가더군요. 아마 그 사람도 그런 경험은 없었을 거예요. 문제는 그 사람이 저한테 너무 잘 읽혔다는 겁니다. 결국 뒤에 가면 흥분이 되기 시작하니까 잘못된 블러핑을 막 하게 되고, 그때마다 저는 그게 블러핑이라는 것을 다 읽고 따라가서 잡고..

결국 나중에 저랑 친한 친구하고 같이 테이블에 앉아서 경기를 즐기며 대화를 하다가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 엄청난 일이 있었다는데, 혹시 그 Asian Dude(아시아 놈)가 너냐? 그래서 대답했죠. 맞다.. 나다. 그러면서 같이 웃었어요.

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캐시 게임의 도박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인 듯하다. 캐시 게임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도전할 경우 이런 꼴을 당할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있다. 토너먼트는 아무리 크게 실패를 해도 참가비를 날리는 것 이상의 피해는 없지만, 캐시 게임에서 침착성을 잃었을 경우, 승부욕으로 흥분했을 경우에는 이런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초심자들은 절대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물 : 한 게임으로 가장 많은 상금을 타신 기록은 어떻게 되시는지?

마 : 바로 앞 일화처럼 돈을 따는 것은 캐시 게임에서 있는 일이고요. 그 정도 액수를 딴 적은 여러 차례 있긴 했습니다. 그래도 액수가 큰 걸로 치자면 토너먼트 얘기가 나와야겠죠.

120명 참여하는 토너먼트에 참여해서 일등 한 적이 있습니다. 상금은 만불이었고요. 조지아 브런즈윅이라는 곳에서 개최한 토너먼트였어요. 그 주에서는 이 카지노가 허락되지 않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배를 타고 어느 정도 나가서 주 영해를 벗어나면 카지노를 열 수가 있는 거죠. 그렇게 배 타고 나가서 하는 토너먼트가 일 년 내내 열립니다. 그래도 보통은 일등 상금 이천 불 수준인데, 일 년에 두 번 정도 규모가 큰 대회가 열린다는 거죠. 그 대회에 참여했던 겁니다. 상금은 만불, 참가비는 이백오십 불 정도.

사실 그 배가 저한테 굉장히 운이 좋은 배에요. 토너먼트에 네 번 나가서 세 번 상금을 받았으니까요. 한 번은 일등, 한 번은 일등 같은 이등, 그리고 한 번은 그냥 입상한 정도. 보통 참가자의 10% 정도에게는 상금을 줍니다. 참가비의 두배 정도 받게 되죠. 입상했을 때 육백 불 정도 받았습니다.

거기서 그 배를 타고 일등 해서 상금 만불 받고, 캐시 게임 좀 해서 좀 더 따고, 그래서 토털 만 천불 정도 땄습니다.

물 : 한번 나가면 대략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마 : 배에서는 시간이 좀 제한되어 있지요. 귀항을 해야 되니까. 보통 네 시간 이내에 끝이 납니다. 120명 참가하는 규모로 보면 좀 빨리 끝나는 셈이죠. 그때 이등 했던 것도 참 재미있는 상황이었어요.

물 : 얘기해 주시죠.

마 : 아무래도 시간이 좀 부족하니까, 최종적으로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경기를 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셋이 남았는데 라스트 핸드라고 그러더군요. 즉, 이 판이 끝나면 그때까지 남아있는 칩을 세어서 순위를 결정하겠다는 거죠.

그때 제일 많은 선수가 제일 앞이었고, 칩이 제일 적은 선수가 그다음, 그리고 제가 칩이 두 번째로 있었는데 그다음 순서였어요. 중요한 점은 저하고 삼등 하고 칩을 합치면 일등보다 많았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운데 있던 칩이 제일 적은 선수가 그냥 죽으면 당연히 그대로 3등이고, 자기가 올인을 해서 이기면 일등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잖습니까?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저 또한 현재 이등이지만, 두 번째 사람이 올인했을 때, 제가 죽으면 판돈을 빼앗겨서 3등으로 떨어지는 상황이니까 죽을 수가 없죠. 저도 당연히 올인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2,3등이었던 우리 둘 중의 하나가 일등이 되고, 하나는 3등이 되는.. 그런 상황인 거죠.

근데 최초 현재 일위가 죽었어요. 그럴 수 있죠. 자기 패가 안 좋으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두 번째 사람이 당연히 올인을 해야 되는데...

그냥 죽어버리더라고요. 진짜 멍청한 결정이었던 거죠.

물 : 왜 그랬을까요? 그 정도 순위에 오를 정도면 모르고 그런 건 아닐 텐데.

마 : 나중에 물어보니까, 자기 칩이 두 번째로 많은 줄 알았다는 겁니다. 그냥 죽으면 이등이 되는 걸로 착각을 한 거죠. 그거야 당연히 딜러에게 물어보면 게임 중에라도 언제나 정확하게 카운트해 주게 되어 있는 건데..

그렇게 그 사람이 멍청하게 죽어 버리는 바람에 저는 일등이 될 기회를 놓쳐 버린 거죠.

물 : 그런데 그 사람이 올인을 했다 하더라도, 마이애미 님이 일등을 할지 삼등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지 않나요?

마 : 그건 맞는데, 물어보니까 이 사람이 손에 7 하고 3을 들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Q 하고 7을 들었어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이길 가능성은 30%도 안 되는 상황이었던 거죠. 합리적으로 행동만 했었다면, 제가 일등이 되었을 확률이 70%가 넘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일등 같은 이등을 했다고 얘길 하는 겁니다.

(상대가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추정이 깨지는 순간에 대한 일화다. 실제로 우리 현실에서 상대가 언제나 합리적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 경제학에서도 시장 참여자가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가정은 깨져 나간 지 오래이다. 합리적으로 행동하길 바라는 거, 이게 그렇게 힘든 일이다. )

물 : 그러면 가장 크게 잃었던 기억은 어떤 건가요?

마 : 아틀랜틱 시티, 뉴욕 아래 있는 거기에 갔던 첫날. 미국에서 유명한 카지노가 동부에선 아틀랜틱 시티고 서부에선 라스베가스죠. 하여간 거기 갔던 첫날, 카지노에 들어가면 밤과 낮 구분이 없어요.

거기서 게임을 하다 보니까 35시간 연속 게임을 한 거예요.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거죠. 저는 그저 한 열댓 시간 했나.. 싶었는데,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었어요.

물 : 식사는 어떻게 하시고요?

마 : 거기서 뭐 이것저것 주거든요. 커피도 주고.. 그거 먹어가며 한 거죠. 잠도 안 자고.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면서 이천오백 불 이상 잃었어요. 그렇게 잃었던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제가 경험이 많이 부족한 상태였고, 그렇게 전혀 모르는 도시에 가서 전혀 모르는 사람들하고 게임을 해 본다는 것이 처음이었어요. 그래도 잃은 돈을 복구하겠다거나 하는 생각 같은 건 없었고, 경기 자체가 재미있었던 거예요.

지금에 와서야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게임을 하라면 하겠지만, 어느 정도 잃으면 바로 멈추고 그러니까 그렇게 잃지야 않죠.

요즘에야 천불 정도 잃으면 날이 아니구나~ 하면서 그만두곤 합니다. 뭐 천불까지 잃을 일도 별로 없지만.
제가 이 게임을 하기 시작한 것은 사 년이 넘어요. 초반에 누구 따라가서 배우고, 배에 있는 카지노에 가서도 해 보고 이렇게 즐기다가 아, 이게 나한테 잘 맞는구나, 이걸 제대로 해 봐도 괜찮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년 전부터는 여기에 올인을 한 거죠. 그렇게 결정하기 까지, 공부도 참 많이 하고 경험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물 :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은 상대를 만나보신 적은 있나요?

마 : 그런 사람이 있긴 있었어요. 뭐 도저히 못 이기겠다, 이런 건 아니고 저 사람하고 한 테이블에서 게임을 하면 내가 참 불리해지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이 홀덤은 아홉 명, 열 명이 하기 때문에 아무리 강자가 있어도 그 사람이 게임하면 내가 빠지면 됩니다. 내가 레이스를 하더라도 그 사람이 따라오면 판을 안 키우면 되는 겁니다. 그렇게만 하면, 아무리 강한 상대라도 게임을 할 수는 있어요.

그래도 껄끄러운 것은 껄끄러운 거죠. 제일 껄끄러운 점은 바로, 저 사람이 내 패를 잘 읽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내 패를 잘 읽히는 것도 껄끄럽지만, 내가 그 사람을 못 읽는 것도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 보죠. 내가 꽤 강한 패를 들고 레이스를 했는데 그 사람이 올인을 했다고 쳐 보죠. 보통은 올인한다는 것은 블러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진짜 강한 패를 들었다면 올인을 안 하고 판을 키우려고 노력하는 게 정석이니까요.

그런데 저 사람은, 올인을 여러 차례 하는데 그중에 진짜 강한 패를 들고 올인하는 경우가 섞여 있더라는 겁니다. 물론 블러핑도 있지만. 이렇게 되면 점점 어려워지는 거예요.

보통 테이블에 많이 앉아있는 피시들, 돈 대주는 하수들은 블러핑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 블러핑 속에 진짜가 섞여 있더라, 이렇게 되면 이건 정석을 다 이해한 뒤에 하는 변칙 플레이를 하는 겁니다. 이건 구분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그렇게 되면 좀 더 세부적인 징후들을 다 보면서 판단을 해야 되는데,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패에 따른 가치 베팅, 밸류 벳을 해야 되는데, 그 사람은 그런 단계를 넘어서서 변칙 플레이를 하게 되는 겁니다. 거기다가 내가 읽힌다는 느낌까지 든다면 상대하기 힘들죠.

결국 그런 사람을 만나면, 테이블 내에서 제 액션을 줄이고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 : 그럴 때에는 그냥 테이블을 떠나는 게 상책이겠군요.

마 : 그게 또 그렇지 않습니다. 그 테이블에 그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 사람 말고 다른 사람들이 돈을 잘 대주는 사람들이라면 아깝지 않겠어요? (웃음) 


(이 대목에서는 좀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 살기는 정말로 팍팍하고 힘들다. 프로 갬블러와 일반인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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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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