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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10. 2017

타일러의 타이름

티브이를 거의 보질 않기 때문에 이 내용이 언제 방송된 것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비정상 회담"이라는 것이 어떤 프로그램인지는 SNS 상에서 하도 널리 회자되기에 어지간히는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몇 번 보기도 했다.

방송 중에 이런 대화가 나왔다고 한다. 이 짤방(짤방이라는 말을 아직도 쓰나?)의 내용을 보자마자 내 머리는 아주 익숙한 "이중사고"의 모드로 전환되고 말았다.


이중사고 모드란 머리 속의 회로가 두 가지로 작동하는 상태를 말하는데 그 하나는 "논리적으로 합리적인 사고방식"이고, 또 하나는 "이 사회의 다수가 채택하는 사고방식"이다. 왜 이 두 가지 사고방식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이중사고"의 형태로 가동하는 걸까?


우리 사회의 일반 대중이 흔히 가지고 있는 가치관, 소위 "중핵적인 가치관"이 어떤 분야에서는 매우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을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지 오래다. 전통적인 문제도 있고, 고통스러운 현실의 문제도 있다. 사회 구조적 모순이 유발한 고질적인 부조리가 장기간 작동하다 보면 이런 비합리성이 사회 전반에 내재되기도 한다. 그닥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니까.


어떤 사안에서 분명히 A가 옳은 답이지만, 이 사회의 구성원들 다수는 B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대중을 상대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옵션이 가능하다.


하나는 A를 주장하며 대중에 가치관에 맞서 대항하는 것이다. 옳은 일이지만 무척 피곤하고 어떤 경우에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입지가 위험해지기도 한다. 실제로 나는 몇 번이나 이런 옵션을 택해 대중과 부딪힌 적이 있다. 무척 힘든 일이었고, 그닥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물론 보람도 있었지만, 상처가 남는다.


또 하나는 입을 닫아 버리는 것이다. 모든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낼 수는 없다는 현실적인 핑계를 대며 회피하는 기동이다. 어차피 입을 닫아 버렸으니 별다른 결과도 없지만 가슴속에는 뭔가 옳지 않은 선택을 했다는 죄책감이 남는다. 이런 경우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끝으로, 정말 비겁하고 사악하게도, A가 맞다는 걸 알면서도 B라고 얘기를 해 버린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고 현실적인 성과가 나온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이 남는다. 많은 사람들, 많은 글쟁이들, 많은 지식인들이 이 길을 택한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다들 그런다. 그런 사람들이 살아남고 유명해지고 돈을 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니까 이런 사악한 거짓말쟁이들의 말을 들은 대중들은 B가 아니라 A 가 맞다는 사실을 깨달을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리고 사회는 진보하지 못한다. 한참을 더 미몽에 머물게 된다.


항상 이런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사안을 접하게 되면 머리는 두 가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중사고"의 실체다.


남자가 결혼할 여자에게 반려견과 결혼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하는 것, 이것은 우리 사회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남녀는 동등한 존재라는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개수작"이다. 내가 당사자인 여성이었다면, 어디서 이딴 수작을 부리는 거냐고 분노했을 것이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는 것은 두 성인의 만남이며, 두 성인의 인생을 통합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는 철저한 양보와 타협이 필요하며, 어느 한쪽이 "강아지야 나야, 선택해!" 이런 소리는 해서는 안된다. 이건 결혼하지 말자는 소리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강아지는 이미 가족이고, 남자는 이제 가족이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이다. 가족 중의 하나를 버리라는 선택이 얼마나 폭력적인 강요인지 모른다면 그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다.


타일러의 말은 이 지점을 매우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건 남자냐, 강아지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남자가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 선택지가 없는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게 강아지 문제건 고양이 문제건 상관없다.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 넘어간다면, 타일러의 표현대로 이 문제는 나중에 직장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로 발전하고, 여성은 결국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이건 거부해야 하는 제안일뿐더러, 오히려 이런 선택을 요구하는 남성을 비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게 A 답안이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여성에게 반려동물을 포기하라는 요구는 우리 사회에서 꽤 흔하게 존재한다. 반려동물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근거 없는 믿음도 널리 퍼져 있다. 아니 그 이전에 여성에게 직업을 포기하라는 요구도 흔하게 나오는 사회인데, 반려견쯤이야 집안의 청결을 이유로라도 나오곤 한다. 웃기는 것은 동일한 요구가 남성을 상대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자가 강아지를 기르는데 여자가 결혼하기 전에 처분하라고 요구한다? 뭐 이 정도는 있을지 모르겠다. 강아지를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남자에게 결혼을 위해 직장을 포기하라는 요구를 하는 부부는 정말로 없다.


아니 애초에 남성의 취향이나 의사를 무시하고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벌어지지 않는다. 양성평등이나 페미니즘을 얘기하기 이전에 대등한 두 성인의 결합으로, 결혼하는 두 사람이 서로 평등한 존재라는 점만을 가정해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우리 사회의 남녀 사이에서는 너무 흔하게 벌어진다.


결국 여성을 상대로 하는 "강아지야, 결혼이야, 선택해!"라는 요구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상황이고 이 여성이 선택을 강요받는 별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뒤, 강아지가 좋은지 남자가 좋은지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지를 따지는 바보짓이 정상이라는 결론이 답안 B가 된다.


나는 이미 이 글에서 답안 A가 합리적이라고 말을 해 버렸다. 그리고 B가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일반 대중들에게서 반론을 받거나 욕을 먹거나 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서 우호적이었던 독자를 잃게 될 것이고, 물뚝심송 박성호, 알고 보니 메갈 지지자, 이런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다.


A냐, B냐, 침묵이냐..


그냥 침묵이나 할 걸 그랬나..


근데 모든 거 떠나서..


저 전현무라는 사람은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는 거야? 강아지와 아기에게 들어가는 애정이 분산되기 때문에 강아지가 안된다고? 그럼 둘째 아이가 생기면 아이 하나는 버려야겠네? 바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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