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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Apr 02. 2017

소수임을 자각하다



삼성동 주민 박근혜 씨의 탄핵 및 형사처벌을 반대하는 집회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고 한다. 주말에는 꽤 큰 규모로 도심에서 열리는 이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세상을 빨갱이가 지배한다며, 그들의 사악한 마수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공주님 아니 박근혜 대통령님을 지켜야 한다고 울부짖는다고 한다. 난감한 주장이다.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특히 노년층 분들이 꽤 높은 비율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오프라인 집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그런 주장에 동의하는 노인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거기다가 세상을 빨갱이들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주장도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미묘한 변화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작지만 분명히 큰 변화가 담겨 있는 것이다.

저분들의 주장이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며, 확고한 다수임을 전제로 하고 주장을 폈다. 똑같이 빨갱이의 위협을 언급하더라도 자신들이 장악하고 지키고 있는 이 세상을 소수의 극렬 폭력 좌경 용공분자(용어도 당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골랐다.)들이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걸 막자고 호소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금의 레토릭은 분명히 바뀌었다. 빨갱이들이 이 세상을 지배했다고 한다.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잘렸으니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자신들이 그토록 걱정하고 우려하던 일이 이미 벌어진 거다. 자신들은 주도권을 잃었고, 세상은 좌빨들이 장악 또는 점령해서 대통령까지 자르고 깜빵에 보내게 되어 버렸다. 이 무서운 빨갱이 세상.

그 세상에서 외롭게 자신들만 남아 늙고 지친 몸을 이끌고 이 세상을 다시 구해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즉, 세상에 대한 지배권, 자신들이 한 때 가지고 있던 인식, 다수라는 인식, 주류라는 인식이 바뀐 것이다. 이제는 적들이 대세고 주류고 다수이며 우리들은 소수가 되었고 힘을 잃었고 대세가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굉장히 큰 변화다.

소수라는 자각은 사람을 크게 변화하게 만든다.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소수라는 점을 꼭 한 번은 인식을 해 봐야 한다 싶을 정도로 소수라는 인식은 새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스스로 다수에 포함된다고 느끼면 사람은 일단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지만 바로 이어서 오만하고 게으르며 세상의 변화에 별 관심을 두지 않게 되어 버리는 측면이 있다. 소수가 되면 이 모든 것이 바뀐다. 불안하고 힘들지만 뭔가 바꾸어 내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고 자신을 다잡게 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주변인들의 상태를 관찰해서 설득하거나 대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아마도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는 노인들의 심리에도 뭔가 자신을 다잡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과 함께 주위를 살펴보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건지를 알아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무려 "변화"를 위해서 말이다. 물론 그렇게 알아낸 방법이 태극기, 성조기에 이스라엘 국기에 유니온 잭까지 들고 시위를 하는 것이라면 좀 난감하긴 하지만 말이다. 한국전쟁 참전국가 모두의 국기를 다 들고 나올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수라는 인식이 사람을 나태하게 만든다면 소수라는 인식은 적극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다수는 현실에 안주하는 경향을 준다면 소수는 변화의 동력을 주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소수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이 세상이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하게 되는 것이고, 그 문제를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진보의 첫걸음 아닌가?

어떤 소수는 폭력을 동원해 세상을 바꾸려고 하기도 한다. 유사시 전화국을 점령하고 비비탄총을 개조해서 혁명을 일으키려던 사람들도 있다. 어떤 소수는 사제폭탄을 만들어 마라톤 대회 현장에 테러를 가하기도 한다. 어떤 소수는 인질을 잡고 산장에 틀어박혀 인질극을 벌이다가 모두 함께 자살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소수는 주변인들에게 자신들의 문제의식을 설명하고 대안을 설득해서 자신들의 생각이 옳았음을 세상에 입증하고 싶어 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한다. 그 설득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부지런하게 살아가고, 더 신뢰감 있는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폭력적인 소수는 세상을 망치고 불안하게 만들지만 평화적이며 설득력 있는 소수는 이 세상을 훨씬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어찌 되었거나 그 모든 행동의 시작, 변화의 시작은 내가 소수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는 점. 매우 중요하고 흥미로운 지점이기도 하다.

모두가 스스로 "나도 소수에 속하는 존재였구나.." 하는 점을 느껴 보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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