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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09. 2024

불꽃은 한순간에 온 생을 산다

지난 주말,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2024 서울 세계불꽃축제'가 열려 찬란한 불꽃들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불꽃축제의 주제는 <Light Up Your Dream>.  


다채로운 불꽃처럼 자신의 꿈을 밝혀보자며 모두 함께 밤하늘 높이 꿈과 희망의 불꽃을 쏘아 올렸다.


불꽃놀이를 바라보던 중, 명멸하는 불꽃에서 문득 우리네 생애가 겹쳐졌다.


누군들 저마다 저처럼 빛나던 청춘의 황금 시기가 없었으랴.


그리고... 우여곡절의 긴 세월 지난듯싶건만 지내놓고 보니 잠시 순간.


어느새 후딱 노년에 이르러, 숨결 가다듬어 고르며 본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고종명의 바람대로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히 선종할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폭죽은 하늘로 쏘아 올려진 잠시 후 화려하게 피어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곤 가뭇없이 어둠 속으로 묻히고 만다.


까만 우단 드리운 밤하늘에 찬연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올랐다가 한순간의 절정을 선보인 뒤 덧없이 사라지는 불꽃.


긴 꼬리를 끌며 높직이서 색색의 국화 송이로 연소하는 동안 황홀한 공중 곡예를 펼쳐 보이면서.


그 짧디 짧은 순간에 불꽃은 전 생애를 산다.


수천의 빛 알갱이가 구형으로 퍼져나가며 활짝 개화, 최고 정점의 극치를 접한 사람들은 연신 감탄사를 보낸다.


그 조차 찰나의 순간 지나면 명멸하던 불꽃은 작은 점 되어 이윽고 허공 중에 스러져 버린다.


삼빡한 최후, 가뭇없는 소멸이자 후회없는 종언이다.


더러는 휘슬 소리와 동시에 맥없이 연기 내뿜으며 한줄기 꼬리로 사라지기도 한다.


공중에서 순간 명멸하다가 흩어지는 불... 꽃... 꽃송이들.....


허공의 불꽃처럼 산산이 부서지며 소멸되어 가는 것들을 생각한다.


인생도 한순간의 불꽃놀이에 지나지 않는다.


불꽃놀이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에겐 지워질 수 없는 흔적, 자취, 역사가 남는다는 것.


존재하는 동안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는 각자의 소관사다.


나이 들수록 기억해야 할 파블로 카잘스의 말이 있다.


"일에 열중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살아간다면


사람들의 나이가 반드시 늙어 가는 것만을 뜻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비록 93세이지만 사물에 대하여 전보다 더욱 흥미를 느끼기에 나에게 인생은 더욱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유행가 가사에도 우리는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엊그제 올레길 걸으며 제지기오름 치맛자락에 둥지를 튼 어떤 유리집을 한참 바라봤다.


앞창을 널따란 통유리로 틔웠으나 어쩐지 그늘로 숨어든 은거지처럼 보였다.


그 집은 코미디계의 황제라 불렸던 고 이주일 씨 집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을 사람들 얘기니 진위 여부야 어떠하든 그건 상관없다.


가망 없다는 폐암 투병 중이던 때, 마지막 삶을 정리하기 위해 제주에 내려와 지내던 집.


그래 그런지 어엿하게 남향받이로 지어진 반듯한 직사각형 건물이건만 무척 침침해 보였다.


오래 비워둔 집이 풍기는 냉기일 수도 있고 물론 숲 그늘 탓일 수도 있겠지만.


못생겨서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희극계를 평정한 사람이 그다.


어린 시절은 그때대로 북쪽에 사는 아버지로 인해 사연도 곡절도 많았다는 그.


젊어서 유랑극단을 전전하며 고생했던 세월 또한 길었으니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험했으랴.


다 큰 자식을 가슴에 묻는 참척의 고통까지 겪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의 삶을 산 그다.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상황, 죽을 날 받아놓아 코에 산소호흡기 달고도 금연 캠페인을 펼쳤던 사람이다.


누군들 인생 노정이 언제나 꽃길만이랴.


향기로운 숲 오솔길만 이어지랴.


탄탄대로 잘 닦인 페이브먼트만 걸으랴.


가도 가도 그늘 한 점 없이 황막한 사막길, 모난 자갈 투성이길, 인적 없어 괴괴한 외딴길도 있다.


경사 급해 숨찬 길, 거칠게 할켜대는 가시밭길, 진저리 나도록 지루한 길,


아슬아슬 오금 저린 벼랑길, 질척대며 빠지는 뻘밭길도 기다린다.


정신없이 추락하는 내리막길, 지척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길, 갈등 속에 선택해야 하는 양 갈래길 만인가.


모래바람 사정없이 몰아치는 사막길, 해풍 무섭게 몰아치는 방파제 길도 살다 보면 한 번씩 걷게 된다.


그러다 겨우 옛일 이야기하며 웃을만하면 끝나버리는 단막 연극이다.


게다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치게 마련인 생로병사의 질곡에서 예외는 없는 법.


세상에 태어나 한바탕 울고 웃다가 너나없이 늙고 병들어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사다.


연예인 중에 가장 세금을 많이 냈다고 알려졌지만 아무리 돈이 많은들 그마저도 병마와 싸우는 데야 무슨 소용?


루가 복음서에도 나와 있듯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한번 다녀가는 세상,


여행이 될지, 고행이 될지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자 행동하기 나름이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고 한다.


소소한 일상사에서 감사를 찾는 일.


그렇다.


걸을 수 있는 건강 허락해 주셔서 감사.


태양 바라볼 수 있는 시력 허락해 주셔서 감사.


치자꽃 향기 맡을 수 있는 후각 허락해 주셔서 감사.


새소리 들을 수 있는 청력 허락해 주셔서 감사.


스치는 바람 느낄 수 있는 감각 허락해 주셔서 감사​.


감사에는 메아리 효과가 있다.


감사는 하면 할수록 감사할 일이 자꾸 생긴다.


너무 삶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 부르시면, 언제든 툭툭 털고 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까지 두루 감사하다.


밤새 편히 잠들게 해 주시고 아침에 잠 깨어 태양을 마주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 하루를 시작한다.


자주 잊긴 하지만 잠들기 전의 감사는 영혼의 청소가 된다는 점 단디 기억하게 되길.


금아 선생의 <이 순간>이란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순간 내가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허무도 어찌하지 못할 사실"이라는 글귀를 좋아한다.


쓰긴 쓰되 쓰잘데기 없는 군소리 허튼소리 되도록 절제를 해야 되는데.


딸내미가 한국에 있는 가족과의 소통 창구로 사용하는 카톡방 문 앞에 걸어둔 고사성어는 이렇다.


默而成之.


묵묵한 가운데 이룰 뿐.


웅변보다 침묵이 귀한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 도리 하나만은 꼭 깨우치고 싶으나 일상사 미주알고주알 이처럼 떠벌리고 사는 자신.


아흐~ 안타깝게도 세상 소풍 마치기 전까지 터득하기엔 그 경지 아득하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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