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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10. 2024

안전 발판 되어주는 뿌리

이름에 '산'이 들어가 있듯 부산은 산이 많다


게다가 에워싼 산세 울끈불끈 아름차 힘이 넘친다.


800m 급인 금정산을 위시해 봉래산 황령산 백양산 승학산 구봉산 장산 배산 등등.


가까운 금정산을 올라간다.

금강공원 지나 초입에 선 소나무들은 백 년 생쯤 될까.


헌한장부처럼 저마다 늠름하다.

큰 바위 기어코 뻐개낸 홍송의 놀라운 힘 볼 적마다 대견스럽다.

그 옆으로 난 오솔길 한동안 평평하게 이어진다.

솔숲 지나 데크길 거쳐 언덕이 나타나면 그때부터 곧장 오르막.

바위투성이 길은 거칠고 험하다.

디딜 곳 여의치 않아 스틱 끝이 머뭇거린다.

살짝 긴장된다.

이때 고맙게도 도움의 손길 척 내미는 게 있다.

울퉁불퉁 메마르게 드러난 굵은 소나무 뿌리가 그렇게 척~ 엎드려 안전한 발판이 되어준다.


살아오면서 정작 난 몇 번이나 저런 역할을 해봤던가.

나를 딛고 올라가도록 누군가를 위한 디딤돌이나 버팀목 되어본 적 과연 있기나 했던가.

정상 향해 비탈길 허위허위 기어오르며 힘들어하는 이에게 격려 보내고 성원해 준 적 몇 번일까.

영혼 없는 치레성 입에 발린 멘트 말고 '진심' 담아서.

어째서 자식에게 하듯이 타인에게는 무한 자애 베풀기가 쉽지 않을까.

하는 일마다 배배 꼬여 사는 게 고달프기만 한 이웃, 등 토닥이며 진정 담은 위로의 눈길 보낸 적은?

내 몫의 역경이 아님에 안도하며 속으로 빙긋거리지는 않았던가.

건성으로 괜찮아 괜찮을 거야, 값싼 연민의 표정 지으며 오히려 내심 교만 떨진 않았을지.

그리하여 어깨 무거워 버거운 호흡 내뱉는 이에게 손 내밀기는커녕 짐짓 눈 돌려 외면하진 않았을지.

남의 불행에서 나의 행복 확인하며 우월적 자기도취에 빠져 허세 부리진 않았노라 우길 순 없겠다.


인간은, 아니 동물조차도 그럼에도 자기 분신은 더없이 소중히 여긴다. 본능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했듯 부모 된 자 누구나 자식에게만은 맹목적이 된다.

세상에 태어나 춘하추동 겪어내며 쉼 없이 소멸의 길로 향하면서 이뤄낸 최대의 작품.

그 완성품을 통해 우리는 삶의 유한성을 극복하나 사실 생명체를 고해에 던져놓고 보니 무한 미안해진다.

제 몫으로 짐 지워진 연자방아를 끊임없이 돌리며 이 모진 한 세상 살아내야 하므로 안쓰럽기만 하다.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를 받아 가며 한을 쌓는 일이라 하지 않던가.

강박적으로 그래서 모든 부모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걸 남겨주려 애면글면하는지도 모른다.

소나무 뿌리처럼 밟고 올라갈 길 만들어 주며 자녀의 미래가 좀 더 안락하길 바란다.

그러나 자녀는 그런 부모가 외려 부담스럽다.

허나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본인 역시 나이 들면 또 제 자식에게 바보 부모 된다.

저마다 타고난 자기애가 강하기에 그 외의 것에는 지극히 이기적으로 굴면서 말이다.

다만 자식에게는 도무지 안 되는 그것. 무조건적인 사랑이기 때문이다.

반면 자아를 버리고 이타행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도 적잖다.

그만한 희생정신이나 봉사를 행할 자세가 과연 내게 준비는 돼 있는가.

번지르르한 말이나 그럴싸한 이론뿐인 자신, 가을비 내리는 간 밤 차분히 점검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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