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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무량화
Oct 13. 2024
소금호수에서 롯의 아내 생각
소금꽃 피었다.
얼음꽃 피었다.
하얗게 새하얗게.
물가마다 백설인가 했더니
석회 침전물로 호수 주변 보얗다.
물속에 서있어야 자란다는 투파.
기묘한 첨탑마다 석회화 현상 진행 중이다.
흔치 않은 낯선 풍광이 유혹한다.
크고 작은 기공이 탑을 더욱 그로테스크하게 만든다.
괴이쩍은 자태 찾아 렌즈 들이대는 사람들.
그러나 하릴없이 뭍으로 편입된 돌탑은
뿌리 잃은 생명, 골다공증 환자.
일월에 떠밀리며 푸석푸석 맥없이 이지러져 간다.
하긴 생과 멸은 본디 하나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끼고 달려온 395번 국도에서 요세미티 넘어가는 티오가 패스와
리 바이닝(Lee Vining) 분기점 언저리를 너르게 차지하고 펼쳐진 호수가 있다.
황무지 들풀 무채색으로 겸손히 엎드린 평원을 지나
나무로 반반하게 놓인 데크 끝나면 모랫벌이 나온다.
그렇게 남실거리는 맑은 호숫가에 이르자 물은 전과 다름없이 투명히 푸르다.
벌레처럼 생긴 브라인 새우도, 너저분하게 깔리다시피 한 파리떼도 여전하다.
마크 트웨인이 사해라 불렀다던 이곳 Mono Lake.
일출
일몰 시 황금빛 스민 석주가 장관이라는데.
달밤에 보면 외계에 닿은 듯 괴괴하면서도 신비감 든다는데
멀건 대낮엔 멋대로 빚어놓은 소금 기둥도 같고 먼지 낀 얼음 무더기와도 같은 투파 행렬.
호수로 향하는 모랫길과 물가에, 투파(Tufa)라 불리는 기묘한 돌탑들이 웅긋붕긋 서있다.
투파 무더기 널려있는 위치라면 당연히 전에는 호수였으나, LA에서 수자원 확보를 위해 이 호수로 흘러드는 물길을 막아 수위 낮아지며 호수도 줄어들었다.
동시에 석탑들은 성장 멈춘 채 거대한 백산호 군락지 같은 석회 덩어리로 굳어졌다.
이 돌탑은 염소, 탄소, 황산을 포함한 여러 종의 무기물질이 녹아있는 이 호수 물속에서
만 자란다.
뭍으로
밀려 나온 탑은 더 이상 자랄 수 없을뿐더러 자연스레 부식활동이 일어난다.
해서 더 이상 호수 수위가 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모노 카운티에서는 생태보호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현지 모노레익 위원회는 주정부와의 끈질긴 투쟁으로 거의 이십 년 만에 수자원인 지류를 보호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낸 이후 수면 상승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동굴 속 석순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에 의해 아래로 조금씩 자라며 종유석이 되듯,
반대로 돌이 위로 치솟아 오르며 자라나는 투파를 키우는 경이로운 호수가 모노 레익이다.
화산활동이 끊일 새 없는 옐로 스톤이 언젠가 지구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듯, 모노 레익 역시 현재 상태로는 백 년 이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 존재란다.
76만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해발 고도 1,946m에 위치한 모노레익은 서울시 면적의 1/3 규모다.
북미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인 모노레익은 지역적으로 높은 분지에 자리해 물이 흘러들어는 오나, 나가는 곳 없이 증발로만 수분이 줄어들 뿐이다.
그렇다 보니 염도가 무려 바닷물의 2.5배 이상인 강 알칼리성 수질로 물고기는 전혀 살지 못한다.
수초 역시 자라지 않지만 그럼에도 호수 인근은 새들의 천국으로 수백만 마리의 새떼가 모여든다.
비소를 먹는다는 묘한 미생물과 소금새우 및 이곳에만 서식하는 알칼리 파리가 이 호수의 터줏대감으로, 새들 먹잇감이 지천인 까닭이다.
백여 킬로 바다와 떨어진 이 호수에 캘리포니아 갈매기가 부화 장소로 삼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
물고기보다 더 취하기 쉽고 맛도 있는 데다 영양 풍부한 먹거리가 흔하다는 이유겠다.
해서 모노레익은 새들의 오아시스로도 불린다.
그럼에도 괴기함으로 지구상에서 외로이 동떨어진 지역, 음울한 오지나 마찬가지인 모노레익.
괜히 어찔 현기증 이는 건 알칼리성 물 내 때문인가, 발음 비슷한 모노레일 탄듯한 어지러움은 분위기 탓?
모노레익에서 좌측으로 진부령 못잖은 험난한 시에라 네바다 산길을 넘으면
곧장 요세미티, 세코야, 킹스 캐니언이 기다리고 가까이에는 매머드 스키장이 위치해 있다.
모노 레익의 모노는 하나 또는 단일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요세미티 지역을 중심으로 동과 서에 나누어져 살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라고 전해진다.
소금호수 그 모노 레익에서 얼핏 롯의 아내
자취
를 보았다.
짙푸른
물 위에 뜬 연회색빛이
거나 하얀빛의 소금기둥들.
소금은 바다의 눈물이라는데
어쩌다
바다도 아닌 내륙의 호숫가에 허옇게 소금기가
드러나있다
.
소금기둥들이 선 모노 레익에
닿을 때 마다
절로
떠오르는
것은 롯의 아내였다.
구약 속의 이름 없는 여인, 누구의 아내로 불리던 한 여자의 생은 소금기둥으로 허무히 마감되었다.
그녀의 남편 롯, 그는 암튼 의로운 자라 칭함 받았다
그다지 믿음이 깊은 자도 아니고 경건한 자도 아니며 삼촌 아브라함과 땅을 가를 적엔 욕심도 제법 부린 사람이었다.
성서를 읽다가 종종 빠지게 되는 함정들, 노아가 그러하고 다윗이 그러하고 롯 역시 그런 류의 사람으로 만났다.
부도덕하고 사악하기 짝이 없어 불경건한 모든 것을 연상시키는 타락한 도시 소돔성에서 살았던 그다.
롯은 이미 죄에 중독되고 익숙해져 그 속에서 편안함마저 느끼면서 죄의 대가를 가벼이 여기다시피 하며 살았다.
소돔성이 멸망하기 직전에까지도 스스로를 구원할 아무 의지가 없던 사람.
야훼께서 미혹과 죄에 갇힌 롯을 재앙과 더불어 멸하게 하지 않으시고 안전한 곳으로 불러내지 않았으면 그는 끝이었다.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창 19:17).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장 귀중한 것을 버리고 소돔으로부터 지체 없이 도망쳐
파멸로 치닫는 옛 생활을 청산해버려야 한다.
그러나 누구를 막론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손에 움켜쥔 것에 대한 집착과 애착, 그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얼마나 되랴.
아꼈던 모든 것들에 미련을 완전히 버린다는 것이 말같이 쉽지 않다.
생활의 소중한 터전이었던 곳,
하나씩 세간이며 기명을 장만하였고 텃밭도 일궈 가꾸던 곳, 바람 맑은 날 흰 빨래를 널던 곳...
세상적인 즐거움과 아끼던 인연과 물질적인 모든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놓아버린다는 것,
그 모두를 초연히 박차고 나와 가벼이 훌훌 털어버리고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늦지 않았다.
당신은 아직 뒤돌아볼 수 있다,
고향 소돔의 붉은 탑과
당신이 노래 부르던 광장과, 뛰놀던 뜨락과...
누가 이 여인을 위해 슬퍼할까?
그녀의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생각해 줄 이 누구인가?
내 마음만은 잊을 수 없다.
순간의 시선에 삶을 바친 그녀를.
오래전 러시아의 시인 안나 아흐마또바가
'순간의 시선에 삶을 바친' 롯의 아내를 이처럼 애달디 애닲게 읊었다.
롯의 아내도 금단의 열매를 딴 이브의 불순종처럼
'하지 말라'는 주문에 역으로 이끌렸던가.
사랑으로 함께 한 가족들, 남편과 자식에 칭칭 엮여있으면서도 그녀는 세속적인 그 무엇을 차마 못 잊어 결국 뒤돌아보고야 말았을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뒤돌아보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만치 그리도 아쉽고 아쉬웠던 걸까.
석양을 기다리고 싶지만 낯선 여로에 밤길 달릴 생각을 하니 나 역시 이쯤에서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사진 찍기엔 일출과 일몰 무렵이 환상적이라 하나 기록용 사진이면 충분하므로 주춤거리지 않고 우린 모노레익을 떠났다.
뒤돌아봄
없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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