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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4. 2024

상강 날 천성산 폭포

한로(寒露)와 입동(立冬) 사이에 든 상강(霜降)은 서리가 내린다는 날이다.

"한밤중에 된서리가 팔방에 두루 내리니, 숙연히 천지가 깨끗해지네"라고 옛 시인이 읊은 대로 첫 한파주의보가 내린 상강 날.

쪽빛 하늘 창창하기 그지없다.

산행을 즐기는 아들이 폭포가 볼만했노라며 안내한 천성산이다.

경남 양산 통도사 건너편에 자리했다.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을 품은 영남알프스가 마주 보인다.

폭포라면 꽝꽝 얼어붙어 장관 이뤘던 지리산 불일폭포만 할까, 빙폭 아니라면 대체로 물줄기 빈약한 철인데...

친구들과 산행 중에 만나봤다는 홍룡폭포를 기억 더듬으며 찾아올라 갔다.

입에 우뚝 선 가홍정(駕虹亭)은 양산인 李宰榮이 1918년에 자신의 소유지(엄청난 대지주!!!?)였던 홍룡폭포 아래다 세운 정자.

경치가 빼어나 소금강산으로도 불렸다더니 솔바람 소리 계류 소리에 이어 깎아 세운 듯한 기암괴석이 나타났다.

산자수명한 골이면 응당 자리 잡았을 사찰, 일주문에 천성산 룡사(千聖山虹龍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용 중에서 청룡도 황룡도 아니고 홍룡, 절 이름에 무지개 虹 자가 들어갔으니 무슨 연유인고?

다리 건너자 좁고 길쭘한 산비탈에 청청한 대밭 주렴 되어 가린 채 대웅전, 무설전, 종각이 서로 이마 맞댈 듯 모여 앉았다.

꼭 있어야 할 전각만 배치됐고 그것도 아주 조촐하게, 오랜만에 접하는 단출하니 정갈한 분위기다.

관음상을 모신 대웅전 천정 가득 연등 고요히 달려있고 그 아래 가부좌 자세로 참선에 든 젊은 여인 실루엣이 진중하다.  

무설전 한켠에 모여있는 화분 중 '감사, 해군사관학교 합격' 리번을 매단 양란 세월없이  활짝 벙그러졌으며 천리향 꽃망울 곧 피어나 사방 향그러이 적시겠다.



암반 위에 살푼 얹힌 자그만 산신각 끼고 산길 오르니 드디어 양산 8경의 하나인 홍룡폭포가 장대한 모습 드러냈다.

협곡 끝 절벽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수 힘찼으며 주변에 어린 방울방울 물보라가 무지개로 드리워졌다.

일곱 빛깔 은근스레 아롱거리는 무지개가 폭포 주위에 상시 떠있어 무지개 虹 자가 들어간 홍룡폭포였구나.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서 관음전 기도먹고 살다가 무지개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대로 폭포 줄기 승천하는 용 기세를 닮았다.

그런가 하면 폭포 하단에서 불상(佛像)이 선연히 어른거리기도 하였다.


수량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날따라 등신대 부처상이 역력하게 보여 퍽 신기했다.


마치 현몽하듯 우릴 환대해 주신 자비로운 부처님 상에 두 손 모두었다.


신심 깊은 불자라면 폭포수 향해 연신 합장배례 올리며 아마도 그 자리를 쉬 떠날 수 없었으리라.


반대편 길로 하산하며 올려다보니 높이 14m인 제1폭과 10m인 제2폭으로 이루어진 홍룡폭포가 홍예교 사이로 더욱 멋스러웠다.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런 겨울폭포 구경인데 아들은 수량 풍부해 폭포 우렁찬 여름철에 다시 와보자고 한다.

시간 흔전만전인 나야 좋지만 한창 일할 때인 사람 번거롭게 해선 안되니 무심한 듯 그저 사찰 안내 현판 글에만 시선 뒀다.

안내문에 따르면 원효대사께서 당나라에 있는 태화사가 장마로 인한 산사태로 매몰될 것을 예견하고 '해동 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擲板救衆)'이라 쓴 현판을 중국으로 날려 보냈다고.

공중에 뜬 신기한 판을 보러 승려들이 밖으로 몰려나온 순간 산사태가 나서 절은 무너지고 대중은 위기를 모면했다고.

그 인연으로 천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에 와서 원효의 제자 되어 <화엄경> 강설을 듣고 모두 득도했다.

하여 천성산(千聖山) 이름을 얻었으며 당시 대가람에 암자도 무수히 세웠다고 전해진다.

​사찰 건립신화는 차치하고라도 홍룡사는 우선 부산에서 가까운 데다 절에 이르는 도로 사정도 괜찮은 편.


무엇보다 산중이지만 걷는 거리가 짧아서  산책 삼아 걸을만한 위치라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을 듯.


사철 어느 때라도 철철이 나름의 매력 가득한 곳인데 나로선 초행길이었다.




부산 살 적에 얼음골, 배내골, 석남사, 운문사를 자주 들락거렸고 해마다 가을이면 신불평원 억새 군락지를 찾곤 했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 천성산 정상부 방공포 부대 대대장이던 이모부는 원효암 범종 불사 때 대민봉사 차원에서 헬리콥터로 종을 운송해 준 인연이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꼭꼭 숨겨둔 보석처럼 감춰져 있었던가, 천성산 홍룡사는 이름조차 듣기도 금시초문이고 발걸음 하기도 처음이다.


까닭인즉 군부대 주둔지이자 당시만 해도 지뢰매설지역으로 묶여있었던 까닭에 임도 개방을 하지 않아 천성산은 산행 예외지였

으니까.

지리산이며 태백산은 물론 영남알프스 걸핏하면 올랐으면서 등잔밑이 어둡다는 말대로 이처럼 가까운 천성산이건만 낯설 밖에는.


산도 그러하거니와 전국 사찰순례를 수도 없이 다녔건만 통도사 맞은 편인 홍룡사조차 초행이다.

부산과 연 맺은 그때로부터 어언 몇십 년 세월 흘러 흘러 2020년 가을.

사통팔달로 시원하게 열린 부산외곽 순환 고속도로 덕에 금세 양산에 닿을 수 있었다.

예전엔 도로 개설 등 공익사업을 시행하려면 토지수용부터 해야 되고 그에 따른 농지 보상이니 영업손실 배상까지 조정해야 하므로 골머리 아파했다.

그때와 달리 토목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고가다리를 건설하거나 터널을 뚫어 길을 직통으로 연결해 버린다.

이 방식에도 걸림돌은 있었으니, 천성산을 관통하는 원효터널 공사 당시 꽤나 시끄러웠다.


한 여승을 비롯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포클레인 앞에 아예 들눕기도 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천성산(922m) 산정의 드넓은 초원과 산지습지에 끈끈이주걱, 도롱뇽 같은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기 때문이라는데 결국은 금쪽같은 세금낭비만 진탕 하고 뚫긴 뚫렸다.

이게 걸리지 않으면 저게 걸리고 이것저것 걸리적거리는 게 천지삐까리인 세상사다.

남은 세월 저 시원스러운 폭포수처럼 매사 장애 없이 일로 직진, 온 세상이 연화세계 정토(淨土) 되길 꿈꾸며 모두 모두가 만사형통하는 나날이길 바라본다.







가홍정(駕虹亭)은 양산인 李宰榮이 1918년에 자신의 소유지(!!!)였던 홍룡폭포 아래다 세운 정자로 계곡 초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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