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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Oct 28. 2024
현대미술관 야외정원에서 펼친 무대
일요일인 어제, 아침부터 부슬거리며 비가 내렸다.
점심 무렵엔 소나기처럼 빗줄기 주룩주룩 쏟아지더니 저지마을에 닿을 즈음엔 안개비 오름들에 아스름 감돌았다.
오후 세시, 제주현대미술관 야외조각공원에서 무용가 홍신자 선생이 故 백남준 선생에게 바치는 공연이 펼쳐졌다.
들쭉날쭉하던 빗발이 다시 거세어진 가운데, 폭우 속에서 열린 ‘백남준 오마주’ 무대였다.
백남준 선생은 이미 1964년 뉴욕에서 활동했고 홍신자 선생은 1966년 뉴욕에 갔지만 두 사람은 콜라보 작품을 통해 긴밀히 교류 나눴다.
그들은 1993년 한국에서 몽고 텐트를 배경으로 서울 현대 갤러리에서 퍼포먼스를 가진 인연도 있다.
백남준 탄생 90주년, 여기저기서 행사가 열리기에 그녀도 이에 마음을 보태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다.
어떤 행사나 잔치든 정성껏 준비해서 손님 청하는, 판 벌린 마당에 가장 큰 부조는 일단 날씨다.
일기 화창해야 외출하고 싶은 맘이 생기지 빗발 성성하면 누구라도 밖에 나서기 저어 되기 마련이다.
궂은 날씨는 더구나 야외공연에 큰 걸림돌, 그러나 거친 비는 오히려 비장미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기대 밖, 예상 밖이었다.
마침 제주 비엔날레와 맞물려 일기불순해도 미술관을 찾아온 많은 관객이 공연장에 들러, 야외공원 에워싼 관객은 백여 명이 넘었다.
비에 흠뻑 젖은 채 지어내는 그녀의 자유로운 몸짓, 나아가 몰아의 열띤 예술혼에 모두는 홀린 듯 빠져들었다.
백남준 선생 생전에 펼친 행위예술 중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퍼포먼스로 무대를 열어, 내면에서 이는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 속을 유영하는 그녀.
삶과 죽음, 욕망의 덧없음, 결국엔 빈손 되어 시원의 자리로 돌아가 티끌로 재로 흙으로.
허어허~ 하늘 향해 터뜨리는 허망한 웃음은 어쩌면 생에 대한 조소가 아닐지.
우산을 꼭 쥐고서 숨조차 쉬지 않는 듯 조각처럼 꼼짝 않고 춤사위만을 주시하는 시선들에 깃든
경이감
.
더할 나위 없이 긴장된 분위기였고 따라서 몰입도 최고였다.
팔순의 아방가르드 무용가에게 찬탄 보내며 죄다 들 마른침 삼켰다.
홍신자 그녀는 제주 그중에서도 서귀포 바다와 숲이 빚어낸 자연이 좋아 서귀포에서 독일인 남편과 살고 있었다.
유럽에서 온 베르너 사세 선생은 한국 문화에 매료돼 한국학을 전공한 학자로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다.
'월인천강지곡'을 번역해 유럽에 알렸으며 미국 UCLA 촉탁으로 한문 고서인 '동국세시기'를 삼 년여에 걸쳐 번역했다.
'민낯이 예쁜 코리안'을 학고재에서 출간했을 정도로 한국어가 능숙하다.
또한 사세선생은 한지에 수묵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년퇴임 후 한국에 정착해 살다가 전시회장에서 그녀를 만났고 둘 다 칠십 넘은 나이에 결혼했다.
진보적인 아티스트와 보수적인 학자의 만남.
얼핏 이상한 조합 같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생활과 삶의 방식을 간섭하지 않는다.
각자 다름을 인정해 주며 사니 편안한 친구이자 훌륭한 도반이기도 하다.
이날 공연에도 사세선생은 소품을 남다른 미적 감각으로 직접 마련했다.
백남준선생의 트레이드마크인 테두리만 남은 텔레비전과 여러 개의 리모컨 묶음과 과일을 올린 제상은 그의 작품이다.
공원 내 작은 연못에 하염없이 내리면서 동그라미를 그리는 가을비 그리고 음악, 오마주 무대 배경은 완벽했다.
바이올린 현의 떨림같이 미세하지만 강렬한 예술적 감흥과 자극을 받은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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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지나니 만사 여유작작, 편안해서 좋다. 걷고 또 걸어다니며 바람 스치고 풀꽃 만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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