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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량화 Nov 03. 2024

11월은 레트로 감성으로

유리문을 밀고 들어선 순간, 아차! 싶었다.

막 감귤밭에서 온 차림이라서이다.

매무새가 이 정황상 어쩐지 결례가 될 거 같았다.

레이스 우아한 드레스까지는 아니라도 청바지에 가죽 재킷이라니.

현관 입구 벽에 걸린 거울과 양옆의 은은한 조명 앞에서 괜히 민망해진다.

유러피안 스타일의 가구와 그림과 벽지에서 풍기는 격조, 컨셉은 1900년대 경성이다.

구한말을 지나 독립운동이 전개되던 시기, 시대상을 관통한 상류층의 이색적인 풍물, 유행, 문화는 어떠했을까.

당시는 국내외적으로 항일투쟁 격렬하던 때, 경성에서 고급 살롱에 진을 치고 노닌 이들이라면?

상해와 중경을 넘나들며 무장투쟁의 일선에 선 분들일 리 없을 테니 아나키스트나 예술인, 유한계급이 된 친일세력들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느닷없이 안중근 의사 낯익은 사진이 초입에서 엄숙 모드로 이끌었다.

일층은 그러나 분위기상 여성이라면 술이 달린 파라솔을 들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를 부여잡은 채 살랑살랑 걸어들어와야 제격일 듯.

남자는 검은색 슈트를 입고 오른손을 왼편 가슴에 묻는 프리메이슨 수신호 닮은 동작이라도 하고 들어서야 할 것 같았다.


홀 안은 크리스털 샹들리에 눈부셨으며 적절히 안배시킨 복고풍 인테리어가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했다.  

수동식 전화기, 축음기, 벽시계, 테이블 램프, 턴테이블, 소품 액자, 하나하나마다 디테일하게 처처에 배치시켰다.

클래식한 분위기, 화려하지만 차분하고 조용해서 마음 안에 스며든다.

주문을 한 다음 이층으로 올라갔다.

계단 한쪽 벽면에는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한 열혈 열사와 의사들 사진이 걸려있었다.

묵직하게 기분 가라앉히는 그분들 사진이 당대를 조명하는데 더없는 배경으로, 살롱가 인테리어에 소환시킨 이 얍삽한 상업주의...

이층 역시 중세 어느 장원의 살롱이듯 길게 늘어진 붉은 우단 커튼과 차분한 벽지에 우선 홀려든다.

고가구 혹은 앤티크 소품 전시장인 양, 여백 거의 없이 빼곡하게  많은 양의 고급스런 집기류와 기명들이 눈길을 붙잡았다.

레트로 감성은 11월과 제대로 앙상블을 이룬다.

이럴 땐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들어야 하지 싶다.


경성살롱 서귀포점 :  서귀포시 이어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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